※김희호, 여행, 24-4, 저녁은 먹어야지
※이다정, 성찰, 24-11, 스케치북을 두고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더 나은 오늘을 기대하면서요.
솨아아-
비가 어제보다 더, 우수수 내립니다. 아아, 아침 산책을 계획했던 어머님도 초연한 마음으로 티비를 보고 계십니다. 휴양림까지 왔는데, 산책 한 번 제대로 못 하게 됐습니다. “가족들끼리 무리하지 않고 오기 좋겠다. 희호가 어렵지.” 김희호 씨를 걱정하는 마음과 천둥번개치고, 비 내리는 날씨가 우리를 숙소 안에 가두었습니다.
‘어머님 아쉽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이 옷이면 젖어도 괜찮으니까, 그래도 이 옷 입은 채로 밖에 한 번 나갔다 올까요?” 제안하십니다.
“네,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님이 억지로 말씀하신 게 느껴졌습니다. “학생을 위해서 비가 와도 나서볼까?”
학생이 계획한 프로그램이라고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이 여행을 사진이든, 어떤 것이든 이렇다 할 실적을 남겨야 하는, 이다정 학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계셨습니다. 이 때문에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님이 원한다면 이리 있어도 상관없어요. 뭐 거창한 것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무리해서 무언가를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 여행이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나가지 말자. 사실 밖에 비가 많이 와서 안 나가고 싶었어요.”
작년 여름날, 친구와의 부산 여행을 떠올려 봅니다. 매번 비가 내렸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빗물에 신경 써 입은 옷이 다 젖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친구 옆에서 “비 너무 많이 오는데? 낭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빠른 길, 가는 길 찾고자 내비게이션만 보고 걷는 친구의 모습에 “친구야, 즐겨! 여행이니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지도만 보고 가지 말자,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보자.”라 말했습니다.
김희호 씨도 20대 청년입니다. ‘음, 빗길을 걷는 것도 낭만인데, 힘들어도 여행이니 즐겁기도 할 텐데. 이를 알리고, 한번 걸어보자 제안할까.’ 생각하면서도 어머님의 걱정을 아니 입을 앙다물고, 말을 아낍니다.
아침을 먹고 어머님이 설거지하기 시작합니다. 김희호 씨가 저와 함께할 때와 다르게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김희호 씨와 속닥거립니다.
“희호 씨, 설거지하실 수 있잖아요. 어머님이 다 하시게 둘 거예요?”
“엄마가 해준대.” 편히 앉아 있습니다.
‘아, 여느 친정집 놀러 온 딸의 모습이 이렇겠구나.’ 싶어 저도 더 이상 보채지 않습니다.
숙소에서 물빛 공원까지 가는 길도 버스가 마땅치 않습니다. 어머님이 우려하시기 전, 가는 방법을 한 번 더 확인하려 검색합니다. “월요일 휴무”가 눈에 띕니다.
‘아.’
물빛정원을 일요일에 가자고 정했던 이유는 월요일이 휴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요일에 어머님과 통화하는 순간에는 이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저, 어머님 의견을 따랐습니다. 왜 이 중요한 사항을 잊고 있었을까. 어머님께 이를 알립니다. 찰나, 희망 하나를 잃은 어머님의 표정을 봅니다.
비가 와 휴양림 길도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근처에는 무언가 할 거리가 없습니다. 그럼 이제 무얼 하지….
양어머니가 담당 직원 선생님과 통화 나누다 퍼뜩 떠올랐는지 말씀하십니다.
“희호가 커피 좋아하니까 카페 가자. 내가 전에 왔던 카페가 이쪽 지역에 있어요.”
카페에 꽃도 있고, 거닐기도 좋고, 작품들도 많다고 합니다. 다만, 카페 이름을 모르십니다.
어머님이 던져주신 기억으로 단서를 얻습니다. 제 휴대폰으로* 검색합니다. 몇십 분간 찾고 찾다 알아냅니다.
그리로 갑니다.
휴, 다행입니다.
다음 일정 전까지 숙소 안에 머물기로 합니다.
평소 어떻게 여행하는지 잠시 나눴습니다. “원래 저라는 사람은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즐기는 사람이다, 괜찮은 사람이다.”하며 여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전합니다. 그럼에도 저의 고민 많은 표정은 감추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이다정 학생 혼자 왔으면 안 그랬을 거야, 다정 학생이 우리 둘을 데리고 왔으니 그렇지.”라며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또 한 번 복잡해집니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여행도 정말 괜찮은데,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이건 내 여행이 아닌데, 내가 모시러 온 여행이 아닌데.’
김희호 씨가 스스로 한다는 것,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여행이니 뭐든 흘러가는 대로, 어떻든 괜찮다는 것, 그 나름대로 즐겁다는 것을 느끼시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시작부터 참 어렵습니다.
숙소를 나선 복도에 작은 전시장이 있었습니다. 단 몇 분, 짤막히 둘러봅니다. 어머님이 학생을 위해서, 뭐라도 했던 것처럼 남겨야 한다며, 사진 찍어야 한다며 전시장 앞에 김희호 씨와 나란히 섭니다. 얼결에 사진 찍습니다.
'아, 이 사진은 쓰지 말아야지.'
2024년 7월 8일 월요일, 이다정
*이다정, 성찰, 24-15, 기록
※이다정, 성찰, 24-13, 사람살이 돕고자 온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