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 이야기
1. 인순이; (김인순) 가수
출생;1957년 4월 5일
신체;163cm, 50kg
가족;배우자 박경배
2. 인순이 '아버지' 가사
한 걸음도 다가 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은
알아 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래 왔는지
눈물이 말해 준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아버지)가 보고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 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아버지)가 보고싶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 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3. 워싱턴 국방성 공연
그녀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늘 밝고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그이 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혼혈아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 삶의 배후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지요."
사회자가 "인생의 최고 절정의 순간은 미국 카네기홀 공연이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뉴욕 카네기홀 공연 후 바로 이어서 가진 워싱턴 국방성 공연이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그 공연 전에 그는 특별히 그 자리에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많이 참여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된 자리에서, 장내에 가득한 참전 용사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내 아버지이시고 나는 여러분의 딸입니다. 나와 같은 딸을 둔 것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난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절대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난 이 말을 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나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가수 인순이 씨는 그 순간이 절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애꿎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그 사람들을 향해 용서와 사랑, 그리고 축복을 듬뿍 주었던 것입니다. 내게 해를 끼치고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선택은 단 두 가지입니다. 내가 보복하느냐, 아니면 용서하느냐입니다. 내게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을 가한 사람을 용서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하여 보복하면, 나의 감정과 상처가 낫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노예가 되어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맙니다.
모든 생각과 선택은 나의 몫이고 나의 책임입니다. 나는 부모와 유전인자와 집안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스스로 독립할 능력이 주어진 이후의 삶과 환경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불행이냐, 감사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의심이냐, 확신이냐? 축복이냐, 저주냐? 용서할 것이냐 원망할 것이냐?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날 아파트 몇 채를 남겼느냐가 우리 인생의 평가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을 만난 것이 복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당신 때문에 도움을 받았다고, 당신의 영향을 받아 오늘이 있게 되었다고 눈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 삶의 결산일 것입니다.
당신이 이 땅을 떠나더라도 당신 삶의 정신과 사역을 감사하고 축복하며, 그 일을 계속 이어갈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축복을 선택한 것입니다.
4. 인순이 "나 닮은 딸, 상처 덜 받게 미국서 출산"
▲ 인순이 씨
“나를 닮은 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놀림거리가 되거나 멸시당할 걸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혼혈 가수 인순이(46) 씨는 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살짜리 딸을 미국에서 출산한 이유에 대해 “순전히 학교 문제 때문이었다”라며 “사실 내가 받은 상처가 커서 임신 기간 내내 ‘혹시 나를 닮은 딸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지’를 수없이 되뇌었다”라고 말했다.
인순이 씨는 “난 이민 갈 생각이 없고 한국에서 뼈를 묻을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한국에서 마음 상하지 않고 자라길 바랐다”라며 “딸을 한국에서 외국인학교에 보내면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해서 미국에서 출산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또 그는 최근 미국 ‘슈퍼볼’ MVP를 거머쥔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에 대해 “지금 시대에 혼혈의 구분은 국적으로 선을 긋기보다 문화로 선을 긋는 태도가 필요하다”라며 “워드의 성공을 계기로 아직도 남아 있는 혼혈에 대한 일말의 편견이 사라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자랑스럽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예쁘게 자란 워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물론 어머니에게도”라고도 말했다.
인순이 씨는 ‘핸디 김’ 등 혼혈 연예인 1세대에 이어 윤수일, 박일준 씨와 함께 2세대 그룹을 형성했지만,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일한 2세대 혼혈 가수다.
다니엘 헤니 등 이국적 외모의 연예인들이 큰 거부감 없이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즘과 달리 과거 인순이 씨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우리 혼혈인들은 150% 노력을 해도 효과는 90%밖에 안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2등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온 게 사실”이라며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의무감이 늘 존재한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연습벌레처럼 연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방송할 때 곱슬머리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모자를 쓰거나 머플러로 묶는 식으로 나 자신을 감춰야 했다”라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한편 그는 최근 이국적 용모를 지닌 혼혈 연예인들이 대거 등장해 인기를 끄는 것과 관련,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 사람에 대한 이질감이 많이 줄어들어 혼혈 연예인에 대한 호감도 상승 분위기에 접어든 것 같다”라면서도 “하지만 호감은 여전히 다니엘 헤니나 나 같은 ‘연예인’에 국한될 뿐”이라고 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중요한 건 혼혈 사회에서는 ‘돈’에 대한 보상보다 ‘성공’모델이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라며 “그래서인지 아이들 앞에서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5. 인순이 학력
인순이의 학력은 그동안 포털사이트 등 각종 프로필에 경기도 포천고등학교의 전신인 포천 여자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기재돼 왔으나 실제 경기도 연천 청산중학교가 최종 학력인 것으로 확인됐다.
4일 현재 네이버 등 일부 포털사이트에는 인순이의 학력이 청산 중으로 수정된 상태다.
인순이의 측근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순이 씨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사실은 맞다”라며 “그러나 이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알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주로 대학 학력이 문제가 됐던 학위 위조 논란에서 인순이처럼 고등학교 졸업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