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on Myodangdo Island, Wando
묘당도이충무공유적바로가기
분류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수량/면적4,959㎡지정(등록)일1963.01.21소재지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고금면 세동84번길 86-31 (덕동리)시대조선시대소유자 (소유단체)사단법인이충무공유적 고금도충무사보존위원회 관리자 (관리단체)완도군 위치 정보 바로보기국가유산 담당부서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에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선조 31년(1598)에 이순신이 약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고, 그 해 7월에 명나라 장수 진린이 약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 있던 이곳 묘당도에 진을 치면서 두 나라의 군사가 힘을 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7개월간 이곳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군 본부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충무사가 있고, 보호하는 절의 의미를 띤 옥천사가 나란히 있다. 충무사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운장을 제사지내어 장병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관왕묘에서 유래한다. 옥천사는 현종 7년(1666)에 처음 지어졌는데, 관왕묘를 보수공사하면서 그 옆에 수호와 제사를 맡게 하기 위해 암자 하나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관왕상과 위패·각종 유물들이 바다에 던져졌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가까운 백운사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광복 후에는 관왕묘가 있던 자리에 충무사를 짓고 이충무공을 모시게 되었다.
안내판 종류종합설치년도재질알루미늄소재지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고금면 세동84번길 86-31 (덕동리)등록된 자료는 2019~2023년 및 2025년에 진행된 안내판 개선 사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상세 정보국문 설명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 지정 번호: 사적 지정 년 월 일: 1963년 1월 21일 면적: 4,959㎡ 유적은 관왕묘(關王廟) -> 탄보묘(誕報廟) -> 충무사(忠武祠)의 변천 과정을 지니고 있다. 1598년(선조 31)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이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관왕묘를 세웠다. 이후 1791년(정조 15) 탄보묘라 하였으며 사액묘우로 지정되었다. 1953년 관왕묘(탄보묘)의 옛 자리를 ‘충무사’라 개칭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적은 사당 · 동무 · 서무 · 동재 · 서재 · 관왕묘비 · 내삼문 · 중삼문 · 외삼문 · 홍살문 · 하마비 · 월송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 . 사당(祠堂)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관왕묘가 건립될 때에는 사당의 중심에 관우가 모셔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었다. 1953년 충무사라 개칭되면서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979년 충무공의 영정을 아산 현충사와 같은 규격과 모습으로 제작하여 봉안한 후 관리하고 있다. 2. 동무(東廡)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리포진 56대 첨사였으며,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순국한 이영남(李英男)을 1959년 추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완도 고금도 관왕묘비(關王廟碑) 서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비는 1713년(숙종 39) 건립되었으며, 이이명(李頤命)이 비문을 짓고, 이우항(李宇恒)이 글씨를 썼다. 관왕묘의 건립 시기와 배경 · 유지 관리 과정 등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정유 재란을 승전으로 이끌었던 이순신과 진린 장군의 행적을 담은 기록물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253cm, 너비 93cm이다. 4. 우수영 전진도첩(右水營 戰陣圖帖) 동재에 소장되어 있다. 전진도첩은 전라우수영의 군사조직과 운영실태, 어떤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본 자료는 실제 조선후기 우수영이 어떤 조직과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며,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5. 하마비(下馬碑) 충무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건립년대는 병오년에 중건하였다고만 새겨져 있어 정확히 어느 시기인지 알 수 없다. 높이는 120cm이다. 6. 월송대(月松臺) 충무사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이순신의 유해가 임시로 안장되었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영문 설명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on Myodangdo Island, Wando This is Historic Site. Myodangdo island was where Admiral Yi Sun-sin and Chen Lin from the Ming Dynasty defeated the Japanese navy togeth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8. The ceremony was held at the Gwanwangmyo Shrine in 1598 to win the battle and to wish for the wellbeing of the soldiers. In 1791, the name of the shrine changed from Gwanwangmyo to Tanbomyo by King Jeongjo. In 1953, the shrine’s name changed to Chungmusa. 1. Chungmusa Shrine Yi Sun-sin and and Chen Lin held a ceremony to honor Guan Yu, a great general from China’s past. Admiral Yi Sun-sin has been worshiped with his standard portrait of Hyeonchungsa Shrine in Asan. 2. Dongmu Shrine It is a shrine to the east of Chungmusa to worship Admiral Lee Yeong-nam who died with Admiral Yi Sun-sin in 1598. 3. Gwanwangmyo Stele in Gogeumdo, Wando This monument indicates the time and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Gwanwangmyo, how it was maintained, and other information. It also holds records of the deeds of Admirals Yi Sun-sin and Chen Lin who led the Second Japanese Invasion of Korea to victory. It is of great historic and academic value. It is tangible Cultural Property of Jeollanam-do. 4. Usuyeong Painting Album of the Naval Training The Painting Album of the Naval Training is a book of drawings that demonstrates naval training, how it operated, and which operations were conducted by Jeolla ‘Usuyeong’ (the navy in charge of the right side of the Jeolla region). 5. Hamabi The Hamabi is a stone tablet indicating that one should dismount from a horse. It is located in front of Chungmusa. It is 120cm tall. 6. Wolsongdae This place is called Wolsongdae. Admiral Yi Sun-sin died in the naval battle at Noryang in 1598. His corpse was buried here temporar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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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Historic Site Related to Yi Sun-sin on Myodangdo Island, Wando)종목면적시대위치주소좌표정보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은 대한민국전라남도완도군고금면에 있는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정유재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과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의 군사들이 힘을 합해 왜군을 물리쳤던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에 왜적의 침입을 대비하여 여수시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노량 해전, 당항포 해전, 한산도 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 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선조 31년(1598)에 이순신이 약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고, 그 해 7월에 명나라 장수 진린이 약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 있던 이곳 묘당도에 진을 치면서 두 나라의 군사가 힘을 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7개월간 이곳은 조선과 명나라의 해군 본부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충무사가 있고, 보호하는 절의 의미를 띤 옥천사가 나란히 있다. 충무사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운장을 제사지내어 장병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관왕묘에서 유래한다. 옥천사는 현종 7년(1666)에 처음 지어졌는데, 관왕묘를 보수공사하면서 그 옆에 수호와 제사를 맡게 하기 위해 암자 하나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관왕상과 위패·각종 유물들이 바다에 던져졌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가까운 백운사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광복 후에는 관왕묘가 있던 자리에 충무사를 짓고 이충무공을 모시게 되었다.
충무사(忠武祠) 본 건물은 선조 31년(1598) 명나라 수군 도독이 그들의 군신관운장을 모시며 제향을 올리고 승전을 기원하기 위해 '관왕묘'라고 처음 건립되었다. 현종7년(1666) 전라 우수사로 부임한 유비연(柳斐然)이 중수하고 관왕묘 옆에 옥천사를 지어 사당(祠堂)을 관리하고 제사(祭祀)를 모시게 하였다. 숙종 9년(1683)에는 관왕묘 서쪽에 사당을 새로 짓고 충무공 이순신을 모시도록 하면서 동무(東廡)에는 관운장과 진린, 서무(西廡)에는 이순신 세 분을 모시는 사당이 되었다.
현종때는 경칩과 상강 두차례에 걸쳐 영암, 강진, 보성, 해남 등 6개 부군현 관원들이 제수를 갖추어 제사를 모셨으며, 정조 15년(1791)정조께서 직접 탄보묘(誕報廟)[1]라는 어필 현판을 하사하고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명나라 장군 등자룡을 함께 모시게 하였다. 등자룡은 진린의 부장으로 70세 노장으로 이순신과 같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고 전사한 명나라 장수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민족정신 말살정책에 의하여 관왕상과 위패를 비롯하여 유물(투구, 서적, 벽화, 현판)일체들이 바다에 던져졌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가까운 백운사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고금도 [[유림 (유교)]이 중심이 되어 관왕묘가 있던 자리에 사당을 재건하여 현판을 충무사로 바꾸어 충무공을 정전(正殿)에 모시게 하였다. 1959년에는 이순신의 보좌관인 조방장이며 당시 가리포 첨사 이영남(李英男)을 동무(東廡)에 모시고 매년 4월 8일 충무공 탄신기념제와 11월 9일(음력} 순국제(殉國祭)를 지내고 있다.
월송대(충무공 이순신 장군 가묘 터)
이곳은 임진왜란(1592~1598)때 왜적을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임시로 안장하였던 터이다. 이순신 장군이 1598년11월 19일노량해전 때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10여 일간 안장된 후 아산으로 운구되었다. 이회(장군의 아들)가 현감역에게 보낸 편지(서간첩)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의 시신은 12월 13일 이전에 아산 본가에 도착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장군의 시신은 1599년 2월 11일 금성산에 매장되었다가, 1614년 현 위치인 어라산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