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장혜령
빛은 잘 들어옵니까
이상하지.
세입자가 관리인에게, 그리고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
불 꺼진 독방의 내부는
누군가 두고 간
불펜 잉크처럼 캄캄하다는 거,
의도 없이도 흐른다는 거
처음 타본 비행기와
어깨가 기울어진 한 남자의 뒷모습
그의 휘파람을
존경한다고 교도소장은 말했다
크고 두터운 손으로, 아버지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바람은 불어옵니까
진주식당의 여자는 국수 대신
빨래를 솥에 넣었고
예수기도회의 붉은 자전거 옆에는
북경반점 오토바이가
모든 질문에
전학생의 시점으로
생각했지
경도와 위도 선상에서
초조해질 때마다
별들 사이에 있다는 건, 더 확고해졌으니까
동료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삼키는 연습을 하는
수배자처럼
배후가 없는 비밀이 몸속을 떠돌고
깡통 속엔
씹다 뱉은 성냥들이
붉게 차오르곤 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더 말할 것은 없습니까
들판 같은 책상 위로
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간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람은 불어옵니까
이상하지, 가
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
어디선가
새들의 농담이 들리고
그의 배후를 바라본 것은, 저 나무가 유일하다
시 감상(초보 시인을 위한 현대 시 창작이론과 실제 /조극래)
이 시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몇몇 단어로 유추해 보면, 배경은 교도소 면회실이다. 엄마와 딸이 아빠 면회를 왔다. 시적 화자는 딸이고 중학생 정도인 걸로 보인다.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붙잡혔고, 빨갱이 사상범으로 몰려 배후를 말하라는 심한 고초를 받고 있다. 독방에 갇힐 정도로
중간 윗선으로 여겨지는 사상범이다. 엄마와 딸은 먹고살기 위해서 삶의 터전을 여러 번 바꿨음을 알 수 있다. 자꾸 이사를 하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면
회를 왔다. 처음 타본 비행기다. 그런데 아빠마저 낯설다. 고초를 당해 어깨가 기울어진 아빠는 마치 이방인 같다.
시 내부로 들어가 보면, 엄마는 아빠 면회를 하고 있다. 사상범이기에 교도소장까지 뭔가 캘 것이 있나 싶어, 뒤쪽 시적 화자 옆에 서 있다. 엄마가
아빠에게 묻는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독방에서 견디는 고단한 수감생활묻는 말이다. 시적 화자인 나는 생각한다. 이 말은 이사를 하면서 세입자
인 엄마가 관리인에게 처음 묻던 말이다. 그 말이 독방에 갇힌 아빠에게도 처음 건네는 말이다. 이 말이 상통한다는 게 이상하다. 아빠는 독방에 갇혔
다고 한다. 시적 화자인 나는 교도소 독방을 볼 순 없다. 아마도 빛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캄캄할 것이라는 건 짐작한다. 마치 "누군가 두고 간/볼펜
잉크처럼". 이러한 캄캄한 어둠들이 누군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상통한다는 게 또 이상하게 여겨진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왔다. 모녀가 먹고살기 위해 세상을 얼마나 많이 떠돌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깨가 기울어진 한 남자의 뒷모
습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심한 고초를 당한 모습과 가정을 돌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찐하게 밴 모습이다. 어머니 마음은 아려온다. 아마 손등이 눈
물을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그때 교도소장이 "그의 휘파람을 존경한다"라고 슬쩍 한마디 건넨다. 두터운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는 몸은 가
둬도 자유로운 영혼까지 속박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 바람은 불어옵니까?" 아빠가 엄마에게 건네는 말이다. 자신이 민주화 운동을 한 효과가 사회에 어느 정도 미쳤는지 묻는 말이다. 엄마는 대
답하지 못한다. 시적 화자가 단지 사회가 얼마나 어렵고 척박하게 돌아가는지 몇몇 풍경으로 보여 줄 뿐이다. 이는 자신이 전학을 다니면서 본 세상의
풍경이다. 그만큼 자신들의 삶도 힘들지만 모든 사람의 삶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주식당의 여자는 국수 대신/빨래를 솥에 넣었고//예수 기도
회의 붉은 자전거 옆에는/북경반점 오토바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가 어디에 살든 먹고살기 힘들수록 밤하늘의 별을 자주 쳐다본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인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왜 교도소 생활을, 그것도 독방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밝힌다. "동료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삼키는 연습을 하
는/수배자처럼 // 배후가 없는 비밀이 몸속을 떠돌고/깡통 속엔/씹다 뱉은 성냥들이/붉게 차오르곤 했다.
이때 뒤에 선 교도관이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더 말할 것은 없습니까?"
"들판 같은 책상 위로/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간다"는 표현은 거칠고 험한 세상을 건너는 모녀의 고통스러운 삶을 암시하고 있다. 사식을 넣어주기 위해서 힘들게 번 지폐 봉투를 책상 위에 놓아두는 의미일 수도 있다.
시적 화자는 아직 어리다. 교도소 문을 나서면서도 생각해 본다. 면회할때 서로 묻는 안부라는 게 단 두 마디뿐이었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바
람은 불어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새들은 저렇게들 자유롭게 농담을 주고받는데, 이렇게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한 마디씩 건네고 헤어진다는 게. 그러다가 시적 화자는 나무를 바라본다.
아마도 아버지의 내부를 바라본 것은, 저 나무가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민주화 운동을 해도 여전히 세상은 힘들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을 의미한다. 또한, 누군가는 민주화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시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렇게 흠뻑 시 안으로 빠져들게 문장을 배치한 것을 보니, 시인의 시적 역량이 높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