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xc9mqe4G
함돈균] 스카프-봄의 날개
풍경의 안팎은 유리창으로 나뉘어 있지만, 계절의 변화는 나가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3월 창가는 1ㆍ2월 창가와는 다르다. 책상 앞에 앉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내게도 바뀐 햇살은 외출의 욕망을 부추긴다. 그건 새싹의 기운, 연두의 욕망이다.
봄은 당신에게 어떤 사물에서부터 오는가. 내게 불현듯 연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은 거리를 오가는 여자들 스카프다. 그녀들 스카프는 파스텔 톤이며 얇다. 원을 만들어 목을 휘감았으나, 스카프는 겨울의 목도리와 달리 밀착되어 있지 않다. 스카프는 목 위에 살짝 떠 있는 듯 부풀어 있다. 목을 덮는 게 아니라, 실은 목을 아주 가볍게 `터치`하고 있을 뿐이다.
목덜미를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완강함이 느껴지는 목도리와 달리 봄의 스카프는 여자 목선을 숨기지 않는다. 투명한 실루엣은 유희적이고 낭만적인 흥취를 불러일으키며 목선을 오히려 타인 시선에 개방한다. 여자 목은 `살`이 아니라 신체의 `선`이 된다.
실크로 만들었건 리넨으로 만들었건 봄의 스카프는 `하늘`거린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봄날, 스카프는 하늘로 날아갈 듯 가볍고 위태롭다. 그래서 경쾌하기도 한 이 사물은 목에 두른 여자들의 `날개` 같다. 스카프에서 가볍게 풀려 나오는 연두의 기운은 어쩌면 날개의 무의식이 아닐까.
스카프의 날개는 낯선 여행지, 먼 원정길로 날아가려는 새의 단단한 의지 같은 것은 아니다.
스카프를 맨 여자들은 매우 문명적인 형태의 에이도스(형상)를 패션으로 완성한 이들이고, 여기에서 하늘거리는 것은 도시인의 외출처럼 귀가를 전제로 한 율동감이다. 이 율동감은 맹렬하지는 않지만, 몽상적 이미지로 도시의 거리에 파스텔 빛 유혹을 선사한다.
남자들 시선이 이 사물로 모이는 것도 이 순간이다. 그리고 이 시선의 존재에 의해 비로소 스카프의 욕망은 두 짝의 날개를 완성한다.
하지만 거꾸로 질문할 수도 있다. 스카프의 유혹이 있어 시선이 생겨나는가, 시선이 있기 때문에 스카프는 유혹을 발산하는가. `욕망`은 독립적이지 않고 늘 상호의존적이다.
어쨌든 `연애`가 시작되기 좋은 시간이 스카프의 계절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3. 7.)
스카프. *51가지 사물체험
(중략)
우리는 옷을 마치 살아 있는 사물처럼 인식한다. 바지는 걷고, 웃옷은 팔을 뻗는다. 셔츠는 달리거나 앉는다.
(중략)
옷을 사물의 평범한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옷이 보여주는 유연성, 자율적인 특성, 생물과 무생물 중간지점에서 반쯤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생명력이다.
같은 이유로 옷은 기억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옷은 몸에 대한 기억에 동화된다. 이 기억은 자세와 감각의 축적이며, 성찰이나 논리적 통제에 기대지 않으면서 서로 맞물려 확대되는 일련의 반응이다. 우리 몸은 옷과 어떤 순간을 함께 체험했고, 옷은 말없이 그 순간을 계속 떠 올리게 한다.
(중략)
어쨌든 스카프는 의복 중에서 가장 단순한 사물이다. 바느질도 하지 않는다. 재단도 하지 않는다. 그저 모나 견 또는 다른 재료로 된 직물 띠일 따름이다. 목 뒷덜미나 목 앞에, 기분에 따라
나란히 늘어뜨리거나, 교차시키거나, 묶는다. 인간의 기억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