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1. 본 플레이는 약간의 치트(영주 능력치 ALL+10, 후계자 능력치 ALL+5)를 사용했습니다.
(즉, 영주의 평균 능력치가 평균 15 이상을 유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2. 본 플레이는 결혼 패치(CK DV 한글패치에 잡동사니 패치 적용법 참조)를 사용했습니다.
3. 본 플레이는 몇몇 국가 타이틀(안달루시아, 아키텐, 로렌, 바이에른, 롬바르디아 등)이 추가되었습니다.
(즉, 독일과 프랑스가 초반에 산산조각 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독일, 프랑스와 교황의 대립을 지켜보던 보두앵(Baudouin)에게 암살의 위협이 찾아왔다.
라이벌이 보낸 암살자가 그의 목숨을 노렸지만 지배자의 반지(능력치 all+10)를 얻고
남다른 용력을 얻고 있었던 보두앵(Baudouin)은 큰 상처를 입으면서도 암살자를 물리칠 수 있었다.
보두앵(Baudouin)은 그 결과 병상에 누웠으나,
귀네스 지역을 지나던 기적 수행자가 그를 치료했고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어느정도 건강을 되찾은 보두앵(Baudouin)은 자신을 암살하려 한 배후를 찾았다.
답은 가까이 있었다.
보두앵(Baudouin)을 궁정에서 대놓고 모욕한 볼로뉴의 백작, 외스타슈(Eustache de Boulogne)였다.
한때는 친구로 지낸 상대였으나 적으로 돌아선 이상 그 대가를 치루게 해야 했다.
보두앵(Baudouin)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지 한달 보름 후, 외스타슈(Eustache)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프랑스와 플랑드르 궁정에서는 외스타슈(Eustache)의 죽음이 보두앵(Baudouin)의 짓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지만, 보두앵(Baudouin)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 적장자인 실베스테르(Silvester)가
보두앵(Baudouin)의 뒤를 이을만한 천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두앵(Baudouin)은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보두앵(Baudouin)은 여기서 큰 오판을 하고 말았다.
적장자에게 좀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탈리아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아풀리아 공국으로
유학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한편, 장녀인 소피(Sofie)가 성인이 되어 유학보냈던 외가 유(Eu)에서 돌아왔다.
매력있고 유능한 소피(Sofie)에게 여러 곳에서 구혼이 왔다.
그 중에서 보두앵(Baudouin)의 눈길을 끈 인물은 바세 로렌의 공작인 고타드(Gotthard d'Ardennes)였다.
16세의 젊고 유망한 청년이 마음에 든 보두앵(Baudouin)은 그를 사위감으로 결정했다.
보두앵(Baudouin)은 장녀를 결혼시키는 와중에 신성로마제국의 동향에 귀를 기울였다.
1082년 독일의 정세은 복잡했다. 교황은 교체했으나 로마 점령에 실패한 하인리히(Heinrich)는
병상에 누웠고 제국의 봉신들은 하인리히(Heinrich)의 자질에 의심을 품으며 들고 일어났다.
그나마 제국의 유일한 희망은 하인리히(Heinrich)의 장자인 디트마르(Dietmar)였다.
성인식을 앞둔 그가 국정을 잡는다면 제국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결혼을 한지 17년이 지나고, 인생이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45세의 나이에,
보두앵(Baudouin)은 쿤도(Cundo)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외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기품있고 지혜로운 부인이었던 쿤도(Cundo)는 뒤늦은 남편의 사죄를 받아들였다.
보두앵(Baudouin)이 남은 인생동안 여러 굴곡을 겪으면서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내조 덕분이었다.
1084년, 자신의 직속영주였던 플랑드르 공작 보두앵(Baudouin de Flandre)이 사망하고,
그의 손자인 아놀프(Arnolph)가 공작위를 물려받았다.
아놀프(Arnolph)는 보두앵(Baudouin)의 사위인 고타드(Gotthard) 휘하의 하인아웃(Hainaut)백이었다.
그런 어리석은 놈의 밑에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보두앵(Baudouin)은 새로운 주군을 인정하지 않고 독립을 결정했다.
그 무렵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Heinrich)는 드디어 그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제국은 분열되었고 하인리히(Heinrich)는 부르고뉴와 이탈리아의 왕으로 전락했다.
독일 왕에는 바벤베르크의 게브라흐트(Gebhard von Babenberg)가 즉위했다.
독일과 부르고뉴-이탈리아, 그리고 여러 공국, 백국들이 난립하게 된 신성로마제국.
1085년, 벽두부터 청천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장인인 헤이스팅스의 로버트(Robert Hastings)가 유(Eu)에서 쫓겨난 것이다.
잉글랜드 왕가의 혈족으로서 노르망디 공에 오른 기욤(Guillaume de Vassy)의 횡포였다.
보두앵(Baudouin)은 장인과 처남을 자신의 영지로 초청했지만
두 사람은 보두앵(Baudouin)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먼 길을 떠났다.
Fatal Error!!!
그나마 1년마다 자동 세이브를 해 둬서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음(...)
1086년, 잉글랜드로 유학을 갔던 보에몽(Bohemond)이 무사히 돌아왔다.
강인한 지휘관으로 거듭난 보에몽(Bohemond)이 이후 귀네스의 장군 자리를 맡기를
보두앵(Baudouin)은 원했다. 그리고 현재 대장군으로 있는 로저(Roger)의 장녀
요란다(Yolanda)와 짝을 맺어주었다.
그러나 보에몽(Bohemond)은 임신한 아내를 남겨두고 영지를 떠난다.
보에몽(Bohemond)은 이후 두차례나 떠나고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지만보두앵(Baudouin)은 그의 사생아가 돌아올 때마다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백국에 위협이 되는 보에몽(Bohemond)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보두앵(Baudouin)은 그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한편 무능한 하인리히(Heinrich)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디트마르(Dietmar)가
부르고뉴 왕에 즉위했다. 교회를 업신여겼던 아버지와 달리 훌륭한 신학자였던
디트마르(Dietmar)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왕국을 안정시켜 나갔다.
그 무렵 볼로뉴의 백작으로 있던 샤를(Charles de Boulogne)이 파문을 당했다.
Charles는 보두앵(Baudouin)을 암살하려 한 결과 보복을 당해 죽은
외스타슈(Eustache)의 아들이었다.
보두앵(Baudouin)이 외스타슈(Eustache)를 죽인 사실은 프랑스와 플랑드르 궁정에도 널리 퍼져있었지만,
아직 어린 샤를(Charles)은 주위 사람들의 입막음 덕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보두앵(Baudouin)을 가까운 이웃이자 아버지 대신으로 여겨왔다.
샤를(Charles)는 자신이 파문당했다는 소식에 놀랍고 두려워하며 보두앵(Baudouin)을 의지하려 했지만,
보두앵(Baudouin)에게 이것은 기회일 뿐이었다.
첫댓글 오오미 어택 돋네 'ㅂ'
역시 오토 세이브는 역설신강림의 피해를 줄일수 있습니다.오오 찬양하라
역설신 흐덜덜인데 다행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