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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영이와 희용이(희자 돌림이네)의 산행기 쓰라는 점잖은 압력에 망설이다가 산행기 올립니다.
산행한 날만 20일이 걸린 이번 존뮤어트레일의 전체 산행기를 쓰기에는 지면도 그렇고 몇명의 존뮤어트레일에 관심많은 친구이외에는 지겨운 얘기일 수 밖에 없어 고민끝에 가장 기억남고 고생한 마지막날 휘트니산 등정과 하산일지를 적는걸로 의무감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존뮤어트레일은 미국 요세미티에서 휘트니산정상 (4,418미터)까지 358키로미터를 식량,텐트등을 본인이 짊어지고 9개의 3.500미터이상의 패스를 넘는 쉽지않은 트레일입니다.
또한 트레일보호차원에서 인원을 제한하기에 퍼밋얻기가 힘들어서 가려는 의지가 있어도 가기 힘든 곳입니다.
이번에 나는 고교동창2명과 셋이 작년말에 신청한 게 운좋게 돼서 (3프로의 당첨확률이라함)
가게 되었습니다.준비과정이나 실제 산행에 대한 거는 관심있는 분들만 개별적으로 문의하면 답해드리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날의 일지를 공개하겠습니다.
9월6일 (목)
오늘이 드디어 JMT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 밤새 비가 오고 바람도 엄청불어
숙영지인 3,600미터 고도의 기타레이크의 추위는 체감온도가 영하로 떨어져 추워서 잠은 고사하고 저체온증을 걱정해야할 수준이다.
어제 밤 10시반쯤 날진물통에 뜨거운 물 가득 채워서 슬리핑백속에 넣으니 그나마 버틸 수 있
었다.예전에 에베레스트 타르푸출리 등정때 배운 방법인데 엄청 효과가 좋다.
그래도 바람이 거세 텐트날리는 소리가 커서 잠은 거의 못자고 새벽 3시에 물통이 식어 무지 귀찮음에도 생존(?)을 위해 다시 버너를 켜고 뜨거운 물을 만들어 넣었다.
새벽 5시쯤 되니 길을 걷는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오늘 휘트니 산을 넘고 휘트니포탈 까지 가려면 만만치 않은 거리라서 나도 좀 뭉개다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매트위 말고는 다 물에 적은 상태라 좁은 매트위에서 하나씩 배낭을 꾸렸다.
밤에 비는 그친 상태라 그나마 다행 이었다.
오늘은 누룽지 끓일 시간도 없을 듯하여 준비한 쵸코바하나를 먹고 물에 젖은 텐트를 걷고 배낭을 싸서 간편히 출발하는데도 6시30분이다.
아,체감온도는 영하인 날씨에 비에 푹 젖은 텐트를 거두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나중에 보니 손가락 끝이 약하게 동상이 걸렸다)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배낭을 꾸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조금 지나니 이건 완전 절벽에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어 놓은듯 하다.한국에서 만일 이런 절벽길을 손잡이없이 방치했으면 난리가 났을 꺼다.얘네들은 이 길을 오르는 사람들은 안전은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듯 하다.더구나 바람이 거세서 몸을 가누기도 어렵다.이젠 몸상태는 바닥이고 오로지 정신력으로 오른다.
2마일(3.2키로미터) 좀 넘는 휘트니산과 휘트니포탈가는 삼거리까지 3시간이나 걸렸다.몸 상태가 영 아니었다.그래도 꾸역꾸역 삼거리에 올라서니 한숨돌렸다는 안도감으로 그냥 휘트니포탈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여기까지 왔는데 힘들다고 휘트니산 정상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배낭을 삼거리에 두고 물병만 가지고 맨몸으로 휘트니 산 정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워낙 유명한 산이라 높아서 접근이 어려운데도 사람들이 꽤 있다.배낭을 안 짊어져서 쉽게 오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휘트니산 등산길의 특징인 절벽을 지그재그로 만든 길을 따라 가도가도 끝이 없는 듯 하다.분명히 삼거리에서 1.8마일이니까 3키로 정도의 거리인데도 너무 힘이든다.
어제 밤 비바람과 벌인 사투의 결과인듯 싶다
설산을 지나는 등 가도가도 끝이 없을 듯한 산정상도 결국은 끝이 있다.12시 다 되어 오른 휘트니산 정상은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너무 좋다.
그렇게 높고 웅장하게 보였던 모든 산들이 내 발 아래 쭉 늘어서서 내게 열병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정말 멋지다.
오늘은 이대로 여기서 계속 있으며 석양도 보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왠만큼 볼꺼 보고 사진 찍을꺼 찍고 쵸코바 하나를 먹으며 여유가 생기니 플랭카드가 생각났다.
서울에서 환송회,LA에서 환영회등 고교친구들의 관심이 고마워 감사의 의미로 만들어 가져온
플랭카드다.허지만 희석,배용이가 없어(두명은 닷새만에 배탈을 심하게 해서 레드메도우에서 내려갔고 15일간 나혼자 홀로 산행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나혼자서 그걸 들고 찍짜니 어색했지만 준비했던거니 찍어는 두자라는 마음으로 옆에 백인 청년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플랭카드를 펼치고 포즈를 취하니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다.뭔 일인가 했더니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한국말은 거의 못하지만 글은 조금 아는 교포학생이 오세미티부터 오신 분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한 모양이다.
거기 있는 사람 중에 존뮤어트래일을 한번에 완주한 사람은 나 뿐이었다.이사람 저사람 플랑카드에 적힌 뜻도 모르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못 찍어줄께 뭐가 있겠나.
그중에서는 분당에서 1년동안 살았았다는 백인 청년도 있었다.잠시 스타가 된 기분으로 땡큐를 연발하며 기분좋게 있다 보니 다시 힘이 났다.식량만 보급된다면 다시 휘트니에서 요세미티까지도 갈 수 있을 듯 싶었다.이대로 내려간다는게 아쉬울 뿐이었다.
한시간여를 정상에서 붕떠서 놀다가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니 내려갈 일이 태산이다.일단 아까 기분으로 삼거리까지는 쉽게 내려와 짐을 지니 이게 영 딴 때와 다르다.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실제로는 음식을 하나도 없이 다 먹어치웠기에 20일중에서 제일 가벼울께 틀림없는 데도 말이다.
정상에서 쵸코바 하나를 먹었으니 이제 너트 세봉 뿐이다.너트 한봉지를 까서 반을 먹으니 그거 하나를 다 못 먹겠다.속이 니글거리기에 말이다.
그래도 어쩌랴.여기는 높이가 4,000미터쯤 되니 어찌됐던 인간세상으로 복귀하려면 고도를 1,000미터 아래까지는 낮추어야한다.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시간적으로 오후 2시가 넘어서 아무리 내리막이라도 8마일,12.6키로미터를 찍어내려가기엔 지금의 몸 상태로는 무리였다.어쨌든 깍아지른 절벽을 내려오니 호수가 있고 텐트가 여럿 쳐있다.여기서 하루 더 텐트를 치고 쉬고싶은 마음이 컷다.
아마 어제 비바람과 밤새 싸우지않았다면 그냥 거기에 텐트를 치고 쉬었을 꺼다.하지만 어제 일을 생각하니 끔찍해서 다시 텐트에서 하루밤을 보내는게 너무 싫었다.잠시 망설이다가 휘트니포탈까지 내려가려는 마음을 굳혔다.그때 시각이 오후 3시40분.남은 거리는 6마일.10키로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다.지금의 몸상태로는 어둡기전에 도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마음을 다잡고 거의 뛰다시피 내려갔다.몇 팀을 계속 추월 해 내려갔다.하루종일 쵸코바2개와 너트반봉지만 먹고 거의 초인적 (?)인 속럭으로 뛰어내렸다.어제밤 비바람 속에 텐트치며
오들오들 떨며 밤을 꼬빡 지샜던 끔찍함을 다시 겪고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과 거의 흡사하면서 아마도 그보다 몇배는 커보이고 깊어보이는 돌산들과 계곡들을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한참을 내려와서 한군데 캠핑그라운드에서 동양계 청년에게 휘트니포탈까지 한시간쯤이면 도착하겠냐고하니 잘 모르겠지만 자기가 휘트니포탈에서 거기까지 올라오는데 4시간 걸렸단다.내려가자면 아무리 내리막이라도 2시간 이상은 걸리겠다는 생각에 맥이 빠졌다.그때 시각이 5시가 넘었다.
여기서 텐트를 치지 않으면 앞으로 텐트칠 장소도 마땅치 않을 듯 했다.또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무조건 휘트니 포탈까지는 오늘 내려가겠다는 생각 뿐이 안들었다.
어디서 에너지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마냥 뛰어내렸다.여기 계곡은 우리나라같으면 안전문제로 아마 입산금지지역이었을꺼다.깍아지르는 각도는 이걸 길로 만들기도 참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뛰어내리니 저멀리 포장도로가 보였다.
그 산속에서 포장도로라면 휘트니포탈밖에 더 있겠나.반가운 마음에 더욱 속력을 내서 내려가보니 역시 휘트니포탈에 도착한 것이다.
처음 만난 백인청년에게 맞냐고하니 역시 맞단다.처음 본 그청년에게 내가 요세미티 해피아일에서 여기까지 20일간 존뮤어트레일을 한번에 완성하고 지금 도착했노라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하니 그청년도 대단하다며 하이화이브를 해준다.
눈물나게 기뻣다.
그동안 서울에서 준비하는 단계부터 떠나기 한달도 안된 시점에 족저근막염으로 올지말지 무지 고민하던 생각,마누라가 눈을 부라리며 못간다는 무언의 시위를 모른 척 외면하고 실행한 존뮤어 트래일이다.거기다가 희석이와 배용이가 닷새만에 레드매도우에서 맘모스로 내려가고부터 무려 15일간 아침은 누룽지 끓여서,낮에 점심은 행동식으로 때우며 오로지 걷기만을 하고 저녁 7시 넘어서 부터는 텐트에 누워 컨디션 조절에 애쓰며 거의 수도승같은 생활을
해왔었다.
그때 시각이 오후 6시30분.정말 빨리 내려왔다.
처음 예상보다 2시간정도는 빨리 내려왔다.
휘트니포탈 스토아에 가서 유투브영상으로 봤던 치즈버거와 맥주를 시키니 식사시각은 끝났단다.6시20분에 종료한단다.딱 10분 차이였다.얘네들에게 그것도 짧은 영어로 떼를 쓰자니 어림도 없을 듯해서 그냥 IPA병맥주하나와 쵸코칩쿠키 작은 것만 들고 밖에 나와 테이블에 앉아 마시니 상상했던 분위기는 아니지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무조건 이제 다 내려왔다는 사실이 꿈만 같고 기분좋았다.
맥주를 다 마시고 여기는 호텔이나 롯지가 없기에 차로 20여분정도 내려가서 있는 론파인이라는 시골마을까지 히치하이킹도 쉽게 돼서 백인부부차를 얻어 타고 내려갔다.
정말 기쁘다.비록 기대와는 달리 모텔이 화장실,샤워실이 공동사용이지만 뭔 상관이랴.
빨리 룸을 배정받아 침대에 훌쩍 뛰어오르니 세상에 그런 행복이 없다.
그냥 한번 내보자며 신청한게 당첨되면서 유리시아트랙의 전문 가이드없이 실행해서 되겠냐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하나씩 알아가며 준비한 지난 6개월이 꿈만같고 그걸 실행해 옮기며 그것도 닷새지나서부터는 혼자 15일간 와일드의 세계에 푹 빠졌던 일이 영화같다.
어째됐던 이제 JMT,존뮤어트레일도 마무리되었다.
이번 경험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려울 때 JMT를 떠오르며 위로와 헤쳐나갈 용기가 생길 것이라는 점은 확신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더 길게 쓰시면 더 좋을 뗀데...
잘읽었어요. 강한의지로 주파한 트레일 삶의 작은 훈장으로 여기시게!
와 역시, 멋지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
아이구. 혼자서 15일을 걷다니. 정말 영화 '와일드' 한 편 찍었네. 고생했어요. 공룡 가서 다리 풀어야 하지 않나? ㅎㅎㅎ
암튼 푹 쉬고 그동안 못먹었던 한식 많이 먹고 생기를 보충하소. 설악 다녀와서 봅시다.
와우, 대단하십니다. 짱이에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고교동창들하고 간다더니 그렇게 됐구먼. 대단하다는 말밖에.... 마지막 힘든 몸으로 6 마일을 뛰어내려갈 땐 누워 편히 읽는 나까지 긴장이 되네. 첫 맥주가 얼마나 맛있었을까, 첫 샤워가 얼마나 시원했을까, 감정이입이 절로 되는 짧아 아쉬운 글.ㅎㅎ
정말 대단하십니다. 15일 동안 혼자 트레일 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마지막 하루의 기록이 이렇게 긴박하니 20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 풀면 책 한 권이 나오겠습니다. 부디 자세한 기록 남기셔서 나중에 가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시길...
형님, 짱!
모두의 격려에 감사합니다.어쩌다가 혼자서 15일간 산행하게 되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6월부터 존뮤어트레일에 신경써서 카페에 미처 못 읽은 재미난 글 들이 많네요.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희용이의 긴 5부작 유람기 포함해서.^^
이제야 차분하게 읽었습니다.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올라갔습니다. "요세미티에서 휘트니산정상 (4,418미터)까지 358키로미터를 식량,텐트등을 본인이 짊어지고 9개의 3.500미터이상의 패스를 넘는 쉽지않은(쉽지않은?!!) 트레일 ". 영하에서 젖은 텐트를 접는 뻣뻣해진 손가락의 무감각, 젖어 척척하게 피부에 닿는 의복의 오싹한 냉기, 새벽에 그나마 따뜻한 잠자리에서 나와 물을 끓여 말어 갈등, 오줌보 조이는 절벽길, 탈진 상태에서 새카맣게 멀리 보이는 목적지,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시큰 거리는 관절, 상황마다 반전하는 포기의 유혹과 성취의 환희 ... 읽는 사람에게는 상황을 상상하며 소름돋고 심장 쫄깃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자신은 아주 담담합니다. 조금 장황해도 좋을텐데 ... 히말라야나 알프스 원정 산행기를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부러움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산과 계곡 또는 호수가에 콩알 만한 텐트, 새까만 어둠 속에 콕찍은 연필점만큼 밝힌 공간 속의 한 사람, 커다란 배낭지고 고산을 넘어 360여 km를 홀로 걷는 그림 속의 컴불님이 부러웠습니다.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