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1코스 트레킹
(염하강 철책길-김포 대명리)
▶트래킹 일자 : 2022. 08. 28.(일)
▶날씨 : 아주 맑음
▶트레킹 코스 : 김포 대명포구→함상공원→
평화누리길1코스 시작점→ 덕진포→ 손돌묘→
한옥마을→덕진포 입구→덕진포 교육박물관→
외할머니 부엌→대명포구 (원점회귀)
▻트래킹 시간 : 15:50~18:00 (2시간 10분)
▶트래킹 스케치 : 이날 오전 시험 감독근무를
마치고 산행대신 김포 대명포구 생새우
구매할 겸 염하강 철책길 오후 트래킹 실시
►손돌목 돈대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지휘하에
조선 수비군은 손돌목 돈대 주변에 배치되어
미군의 공격에 맞섰다.
근대적 화포로 총으로 무장한 미군에 비해
조악한 조선군의 무장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조선군은 심지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구식
화승총과, 포탄이 작렬하지 않는 전근대식
불랑기포(佛郞機砲)였던 데 반해 미군은 기계식
격발장치 소총과 작렬하는 포탄을 발사하는
근대식 포로 무장한 군대였다.
손돌목 돈대를 최후의 거점으로 삼아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 그리고 휘하의
200여 군사는 4월 23일부터 다음날까지
48시간의 죽음을 무릅쓴 사투를 벌였으나
돈대 안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미군의
함포 사격과 돌격대의 공격으로 결국 전원이
장렬한 전사를 맞고 말았다.
광성보 전투의 전적을 보면 조선군 340명
전사에 미군은 단 3명이었다. 참혹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미군은 목숨을 건 조선군의 치열한 반격에
더 이상 진격할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록 전투에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긴 셈이었다.
►손돌목
김포 대명포구 지나 덕포진에서 바다건너 강화
광성보 용두돈대 사이 염하 (김포와 강화 사이의
해협)를 뱃사공 손돌이 왕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고 한다.
손돌목은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수많은 배들이 난파당한 곳이기도 하다.
손돌목의 손돌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로 피난가던 고종 임금을 배에 태웠던
뱃사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배에 오른 고종이 이곳을 지날 때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손돌이 자신을 죽이려고
배를 이곳으로 몰았다고 의심한 나머지
손돌을 처형하고 만다.
손돌은 죽기 전 임금이 건너갈 수 있도록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반드시 뱃길이 트인다"고 말한 후 죽음을
맞았다. 정말 바가지를 따라가니 뱃길이
열리고 고종은 무사히 강화 땅에 오를 수
있었다.
비로소 자신이 오해한 것을 안 고종은 손돌을
후하게 장사지내 주도록 했다. 이곳 덕포진
언덕 위에 손돌의 묘가 있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인터넷 강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