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가기 전부터 겨울철의 백미라는 눈에 시달렸 지난 주 부터
치워진 눈이 녹을라치면 또 내리고 또내리는 통에
무설재 들어오는 길은 완전 빙판 길위에 무지개떡 켜켜이 쌓이듯 쌓여버린 눈의 깊이가 장난이 아닌데
또 다시 내린 눈을 치우느라 하루에 세 번이나 치우는 불상사가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내리는 눈에 질려 저녁 무렵에는 포기를 하였건만
어느 곳은 새벽 두시까지 치웠다는 전언이고 보면
안성 산골에 내리는 눈은 웬만한 강원도 만큼이긴 하겠다.
벌써 여섯 번 째 눈을 치웠으니 이 겨울 날이 어찌 될지 참...한숨이 먼저 나온다.
덜 치워진 뒤 뜨락에 쌓인 눈을 재어보니 어림 잡아 20센티는 넘을 것 같았다,
한번씩 눈을 치우고 나면 그 노동의 대가는 피로로 이어지니 하루가 완전 지침이다.
그렇게 지쳐 빠져 헤매고 나면 그 하루는 그냥 아무 일도 못하고 머엉 때리며 지나가게 마련이고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어 돼먹지 않은 원망과 욕이 나오기 일쑤고 가을걷이 끝난 들판을 뛰어다니느라
목줄 풀린 개들만 좋아 날뛴다.
그렇게 온 몸이 고달프고 힘에 부쳐 할 즈음에 택배 기사님 아니다 LG전자 기사님께서 전화를 해왔다.
조금 후에 도착할 예정이니 길의 사정이 어떻게 되느냐고...못 들어오실 것 같다,
월요일 쯤에 받겠다고 했더니만 신선이 아니라고 마을회관까지만 오시면 코란도 4륜구동은 나갈 만큼 되니
나가서 받아오겠다며 가져 오랍신다.

사실 얼마 전에 아들이 전화를 해서는 티비를 주문해 놓았으니 받으시라는 연락을 해왔다.
이제 막 사회인이 된 아들, 아직은 대학 졸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엿한 직장인이 된 첫 월급의 세리머니다.
작년 여름에 거실에 있던 커다란 티비가 번개를 맞고 돌아가신 이후로는 안방에 있던 작은 티비를 놓고
시청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티비에 목을 매거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그다지 티비를 들여다 볼 일이 없는
쥔장들인지라 작은 티비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었다.
다만 점점 눈이 나빠지는 관계로 자막이 좀 잘 안보인다는 것 뿐이지만
그것도 대충 화면을 보면 감지되는 일이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헌데 막상 티비가 도착을 한다고 하니 신선이 좋아하기는 했고 마을회관까지 나가 스스로 찾아와서는
아예 바쁜 기사님들은 보내버리고 직접 설치를 해대면서 아주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뿌듯하다.
물론 전에도 딸내미가 티비를 사주고 떠나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려 그냥 있는 티비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우린 쓸데없는 낭비는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한 것은 그냥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아마 그때 티비를 새로 구입하였다면 작년에 번개맞고 돌아가셨을 터이니 말리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내년 여름에는 또 어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일단은 오케이,
아들이 직장인이 된 기념으로 우선 순위로 뭔가를 해주겠다는데 거절하기도 그렇고
이유야 어떨든지 간에 결론적으로는 흡족하다는 말씀이고 보면
쥔장이야 그렇다 치고 신선이 흐뭇해 하니 보기에 좋다.
그렇다고 물질로 자식들의 마음을 전달받거나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물 체제 경제 논리로 보자면
눈에 보이는 것이 우선인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린 또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될 수 있으면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자주독립적인 노후를 살고 싶은 것이 희망사항이기도 하고
자식은 내리사랑으로 부모로 부터 전해지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이므로
그 자식이 장성하여 제 할 일을 해내면 거기까지 부모가 해야 할 일의 본분을 다 했다고 보고 그저 대견해 할 뿐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각자 제 역할과 제 몫을 하면서 사회인으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다.
게다가 아들 뿐만 아니라 뒤에서 늘 묵묵히 제 할 일 다하면서 알게 모르게 부모인 쥔장들을 위하고
저도 남의 나라에서 고생을 하면서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몇 년 동안 해 준 딸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맙기 짝이 없고 대견한데 동생의 취직과 이사 기념으로 세탁기와 양복을 선사하였다니
남매간의 정이 두터워 보이고 딸내미 마음을 전달받은 아들이나 쥔장 역시
더욱 뭉클하고 푸근하며 애틋한 마음이 든다.
이제 그 아이들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으므로 한시름을 놓았다.
아직 졸업을 하지는 않은 아들이지만 졸업을 하고도 취직을 하지 못해 걱정인 부모들이 많은데 우린 정말 횡재한 것이다.
마음 끓일 일 없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서 척척 자리매김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말이다.
그 아들이 간만에 집으로 왔다. 미국에서 외조카가 다니러 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오는데
그 외조카는 2주간의 짧은 방학을 맞아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것은 물론 치과 치료를 위해서-알다시피
미국의 의료비는 장난이 아니고 치과 치료는 더더욱 이니- 다니러 와서는 가장 먼저 한 것이 치과 치료라
외조카의 얼굴은 팅팅 부어서 넘데데한 것이 마치 함지박만하다.
그런 외조카를 아들 녀석이 동행을 하여 찾아들었다.
미국에서 공부중인 남동생의 아들, 전주 이씨 가문에 둘도 없을 장손이 무설재를 찾아든다는 말을 듣고
서울에서 부터 픽업을 하여 데리고 왔다는 말이다.
훌쩍 자란 외조카를 보자니 새삼스레 울컥.이었으나 감정 조절을 하였다.
잘 자라고 있다.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에서도 치이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내는 와중에 작년에는 타의적인
커다란 교통사고를 당해 목뼈 3.4번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하였다.-군대에서도 안 받아준단다-
생명줄이 오락가락 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굳은 의지 하나로 버텨낸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뒤늦게 달려간 부모는 경악과 충격 속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 외조카 아들은 잘도 견뎌냈다.
그리고 지금 조지아텍 대학 3학년이 된다...그 조지아텍 대학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공과대학 서열 3위 다.
자랑스럽고 고맙다.
들은 소문으로는 마구잡이 유학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않다고 하는데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착실하게 묵묵히 제 갈길을 가는 외조카가 고맙다.
그럴 때 하는 말이 전주 이씨 가문에 둘도 없는 장손이여...라며 격려하는 것.
아들 녀석 역시 그 외조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제 외삼촌들과 형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관심을 제 외사촌 동생에게 쏟아붓고 있는 중이다.
들이 서 있으면 그림이 정말 좋다...왜? 핏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좌우지간 티비 이야기 하다 먼 길을 돌았다.
어느새 다 자란 아이들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우리가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애면글면 하며 아이들을 키우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자주 독립만큼은 확실히 터득을 한듯 하여
바라는 바대로 자라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티비이야기는 마감되시겠다.

이른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을 카메라에 찍힌다고 불만이지만 어쩌겠는가...외조카와의 사진을
지금 남겨놓지 않으면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하거늘....긴밤내내 많은 이야기 장성을 쌓았고 추억을 또 하나 공유했다.

만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촐한 만남의 장을 마무리 하고 이른 아침에 서둘러 아들은 돌아갔다.

그 아침에 사방팔방이 얼어붙었다.
어제 보다 기온이 내려간 탓이다.
그래도 쌓인 눈을 또 치워내며 길을 만들었다...징하게 내린 눈.
첫댓글 아이들이 자라 부모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감동에 짠~함까지 얹어져 코끝 찡~하게 할 듯 싶네요
게다가 어디에서나 알아서 본인의 몫을 곱절 이상 해내는 걸 보면 함께 보인 지인 모두가 뿌듯하겠습니다
맞는 말씀이어요.
아이들이 자라 제몫을 해낸다는 것이 뭐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역량껏 살아내는 것이요 즐거운 사회인이 되는 것이니
그렇다고 보면 이 아이들은 꽤 괜찮은 자식들이 되겠다는 말씀.
덕담의 댓글, 땡큐.
추카 추카~! 보는 내가 더 좋네요~! 안그래도 그 TV 답답해 보였는데...
피뢰침을 달아봐요~! 그집은 그게 곡 필요 할듯~! 그간 번개 맞은 전자 제품들을 생각해 보면
그게 훨 경제적일듯~!
피뢰침이야 한 두 개도 아니고 일단은 전봇대만 해도 수두룩 하니 달려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번개 맞기 좋은 곳에 자리한 덕분에
여름만 되면 번개라는 놈 때문에 겁먹게 되나니,,,암튼 아들 덕분에 눈의 피로도는 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