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기업의 생존’을 강조하고 나섰다. 최근 정기상여금 750% 중 450%를 기본급에 산입하고, 인사고과를 통해 나머지 성과금을 차등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임금체계 개선안을 제시한 현대차는 노동조합이 회사 제안을 수용해야 기업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18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사기획팀이 작성한 소식지 ‘함께 가는 길’에 따르면 회사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더라도 노동자들의 급여가 늘지 않도록 총액임금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총액임금을 유지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상여금이 기본급에 산입되면 통상시급이 급증하고, 그 결과 한계에 이른 고임금을 넘어서는 추가 인건비 부담까지 발생한다”며 “기업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통상임금을 확대한 뒤 갈등을 겪고 있는 업체 사례도 소개했다. 현대차는 G자동차·D조선해양·H중공업을 언급하며 “임금경쟁력 확보 없이 통상임금을 확대한 일부 기업들이 물량 급감과 고용조정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며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 "통상임금 확대, 기업 생존 위협
현대차가 언급한 3개 업체는 근로기준법에 근거해 통상임금 범위를 정하거나, 노사 자율합의를 통해 통상임금 범위를 늘린 업체들이다. 현대차는 이들 업체가 인건비 부담으로 생존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글로벌업체인 G자동차는 미국 본사 경영전략에 따라, 대형조선소인 D조선해양과 H중공업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기업의 경영실패가 맞물려 고전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현대차의 끼워 맞추기 식 주장은 또 있다. 현대차는 “수많은 기업들이 총액임금 범위 내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만도·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삼성전자·LG전자의 사례를 언급했다. 노사관계가 원활하지 않거나 노조의 힘이 약한 업체들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통상임금 협상을 거치면서 노동조건이 기존보다 후퇴했다는 점이다.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은 발레오전장은 기존 정기상여금을 성과상여금으로 전환하고 OT수당을 폐지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나머지 4개 업체는 정기상여금 중 일부만 기본급화하거나 통상임금에 산입한 뒤 기존 노동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했다.
회사별로 보면 만도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에 따른 임금보전분을 삭감하고 심야근로할증과 연차할증을 줄였다. 한라비스테온공조 역시 단체협약에 보장된 월차수당을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제 보전분과 심야근로할증을 삭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임금구조를 바꾸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LG전자도 지난해 임금을 동결하면서 연차할증을 줄이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결국 '노조 약화' 노리나
현대차는 이들 업체에 대해 “임금경쟁력 확보 없는 통상임금 확대→비용급증·고용불안→노사공멸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며 “기업 생존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의 이런 입장은 임금체계 개선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개선안에 따르면 현대차는 정기상여금 750% 중 450%를 기본급에 산입하고, 기본급에 산입되지 않은 나머지 300%를 부가급으로 전환해 설·추석·하기휴가에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본급 확대에 따른 임금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존 월 226시간에서 243시간으로 시급 산정시간 변경 △특근개선지원금 폐지 △휴일연장할증 근로기준법 수준으로 적용(기존 최고 350%에서 150%로) △연월차 할증 축소(기존 150%에서 100%로) △2교대 전환수당 조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시급 산정시간을 늘려 기본급 확대에 따른 시급인상 폭을 최소화하고,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 합의해 온 임금 항목을 줄이거나 적용범위를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현대차가 모범사례로 꼽은 5개 업체의 합의 사항을 섞어 놓은 모양새다.
현대차 임금체계 개선안에서 뇌관으로 떠오른 것은 차등성과금 지급방안이다. 인사고과에 따라 성과금을 차등해 지급함으로써 직원에 대한 회사의 평가권을 강화하고, 노사관계에 있어 노조 개입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다. 기존 임금총액을 유지하면서 회사의 입김이 세지는 만큼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올해 협상에서 차등성과금 지급방안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노조로서는 임금차별에 해당하는 차등성과급 방안 자체도 수용하기 어렵지만, 임금삭감을 의미하는 휴일연장 할증과 연월차 할증 축소방안은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