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편의 CF에 이어 얼마 전 “I LOVE YOU”로 가수 전향에 성공한 차태현. 얼마 전부터는 배우 전지현과 함께 찍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다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 차태현의 정확한 직업은 무엇인가? 탤런트? CF 배우? 프로그램 진행자(MC)? 가수? 영화배우? 어느 한 직업에도 ‘그건 아니지’라며 고개 저을 수 없는 걸 보면 그는 이 시대가 그토록 만들기 원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임에 틀림없다.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표정, 어떤 대사, 어떤 장르도 일단 그에게로 들어가면 철저히 ‘차태현식’으로 변모하여 귀염성 있고 순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는 오히려 애틋함까지 불러일으키곤 한다.
한마디로 그는 오늘날 세상의 꼬이고 꼬인 세태 속에서 때로는 건방지게 보일런지도 모를 자기 안의 정직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솔직함에서 연유한 당당함이 대사와 가사, 표정, 몸짓에 얹혀져 그를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차태현 뒤에는 큰손이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그가 ‘가장 사귀고 싶은 연예인 1위’,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1위’에 오른 것을 보면 그의 이런 솔직한 면들이 사랑스런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 공감을 얻었음은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차태현은 연예계의 ‘마이더스 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성공을 두고 “차태현 뒤에는 방송계의 큰손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소문은 사실이다. 아니, 소문을 좀 더 부풀리자면 그의 인생에는 큰 백(손)이 있다. 그것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힘. ‘커다란’ 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할 만큼 거대한 백이 그의 뒤에 있다. 바로 ‘예수’다.
그에게 이런 인생의 커다란 유산을 물려 준 사람은 바로 부모인 차재완(58세·북가좌동 충신교회) 장로, 최수민(57세) 권사 부부다. 지현이와 태현이 두 아들을 둔 차 장로와 최 권사는 모두 방송인들. 차재완 장로는 방송국 효과부 차장, 최수민 권사는 대우 받는 중견 성우다. 드라마 등 여러 프로그램에 사실성을 더해 주는 효과들이 차 장로를 통해 나오는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용의 눈물>도 그의 작품이다. 또 10년 넘게 라디오 애청자들로부터 사랑받으며 최고 청취율을 자랑했던 <아차부인, 재치부인>과 <영심이> 등의 목소리 주인공이 바로 최수민 권사다.
방송계에 큰손이 있다는 소문은 아마 이 두 부부가 단지 ‘방송인’인 데서 나온 말이 아닐까? 그러나 - 아들만큼은 아니지만 - 방송국에서, 특히 기독교계 농어촌 선교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부부는 유명 스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85년 ‘AD농어촌방송선교회’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17년째 농어촌 방송 선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기 때문.
‘AD농어촌방송선교회’에서 주로 하는 일은 멀리 농어촌 미자립교회에 있는 목사님들에게 좋은 설교 자료와 시사 정보 등을 4개의 테이프로 복사, 한 달에 한번씩 보내드리는 일. 언뜻 보면 매우 쉬운 일 같지만 매달 테이프를 만들어 1,200개의 교회에 보낸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일만을 위해 3명의 직원을 따로 두었다.
선교회를 이끌어 온 17년 세월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이들 부부가 살아온 삶을 듣고 있노라면 순간적인 생각으로 적당히 해 온, 그저 명목상의 농어촌 선교 사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소명 의식을 갖고 ‘방송’이라는 자신들의 달란트를 통해 이 일을 해 오고 있었다.
“우리 아들, 유명 연예인 되게 해 주세요”
“저희 부부는 지금은 사라진 TBC 방송국 성우실에서 만났어요. 동기가 배한성, 송도순 씨니까 참 오래 전 이야기지요. 일이 없을 때는 언제나 성우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여자, 그게 최수민 권사였어요.”
고교 시절 친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차 장로는 크리스천이었던 최수민 권사를 그렇게 만나 서울 정동교회에서 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가정을 꾸린 후 이 부부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자신들의 삶이 믿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었다. 부부의 기도를 기뻐 받으셨던 것일까? 이들은 결혼 후 큰 물질적 축복을 받게 되었고, 이 풍족하고 행복한 생활은 둘째인 태현이가 태어날 때까지 승승장구 계속된다.
그러던 1978년, 부부는 지금의 케이블 방송 같은 방송 제작을 꿈꾸면서 성경을 비디오와 카세트 테이프에 담는 비디오 제작 사업을 형제들과 함께 시작한다. 성경을 주제로 한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제작·보급·판매하는 ‘푸른 동산’이라는 프로덕션을 차린 것이다.
하지만 선교만을 생각하느라 판매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사업 시작 6년 만인 1984년에 회사를 정리하고, 부부에게 남은 것은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약 3억 원의 빚이었다. 그 후 두 아들과 함께 이사간 곳은 큰 형님의 18평짜리 아파트. 겨우 방 한 칸을 빌려 살게 되었는데, 형님 식구까지 9명이 바글바글대는 아파트는 비좁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부부는 그 와중에서도 매일 저녁 가정 예배를 거르지 않았다.
가정 예배는 이후 개포동, 상도동, 대방동으로 셋방을 전전하며 이사 다닐 때도 깨뜨릴 수 없는 불문율처럼 지켜졌다. ‘고난 중의 찬송’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부부는 이렇게 어려운 중에도 현실을 모르는(?) 기도를 드린다. ‘저희가 농어촌 선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아들이 유명한 연예인이 되게 해 주세요.’ 철이 안 든 어린 아들도 아니었고, 선교한다고 사업을 시작했다가 3억이라는 허리 휘청한 빚까지 져 놓고, 어떻게 다시 선교를 위해 아들 장래를 바칠 수 있었을까?
철모르는 기도의 이유는 이랬다. 선교를 위해 전국 농어촌에 테이프를 보내고 싶은데, 그 수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 1,000여 교회나 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 그렇다면 유명 연예인이라도 이 일에 동참해서 홍보가 되면 후원자들이 생길 텐데, 딱히 함께하겠다는 유명인도 없었다. 나름대로 많이 알려졌어도 워낙 어려운 농어촌 목회자들이고 보니, 어쩌다 그 분들이 서울 나들이라도 올라치면 후원회비를 요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쪽에서 숙식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형편이었다.
광고 대성공, 일하기 시작하신 주님
한 달 한 달, 진 빚에 대한 이자가 만만치 않아 빨간색 적자 가계부를 적으면서도 오매불망 선교 비용만 걱정했던 이 철없는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오히려 안쓰럽게 보신 것일까.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들 가계부를 직접 관리하기 시작하셨다. 그 징조는 탤런트였던 아들 태현이가 주연을 맡은 018 광고의 대성공이었다. 이들 부부가 보기에는 딱히 와 닿지 않는데도 신세대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바로 <묻지 마, 다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시리즈.
그 아들은 광고비를 통째로 신문지에 말아 부모에게 안겼고 이로 인해 부부는 사업 실패로 인해 진 모든 빚을 청산하게 된다. 하나님 마음에 쏙 든 기도로 경험한 ‘만루홈런’이었다. 신세대 최고의 스타 차태현은 그렇게 고난 중에도 찬양을 부르며 오직 주님의 일만을 생각한 이들 부부에게 주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홍보로 바쁜 아들과 어제도 새벽 3시까지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며 행복한 피곤함을 보이는 두 사람. “기도를 통해 우리는 모두 주님을 놀라게 할 만큼 ‘엽기적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늘도 AD농어촌방송선교회로 향하는 방송 선교사 차재완 장로, 최수민 권사.
이들 부부는 배우, 가수, 탤런트, MC 등 어떤 이름으로든 아들이 밟는 모든 땅이 복음의 가나안 땅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아들을 스타로 만드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아들의 가장 큰 격려자, 친구, 중보기도자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