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4]『축소지향의 일본인』를 다시 읽는 까닭은?
최근 알라딘중고서점 전주점에서 이어령 박사의 『축소지향의 일본인』(2002년 초판 1쇄, 2011년 2판 4쇄, 문학사상 펴냄)을 구입, 읽고 있다. 20년도 더 전에 읽었던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 것은, 지난 11일부터 3박4일 도쿄를 다녀와서였다. 오랫동안 갖고 있었으나, 지난해 책을 무더기로 처분할 때 버려 다시 사려니 약도 오르고 아쉬웠다. 아무튼, 이 책 역시 이박사의 『보자기문명론』이나 『가위바위보 문명론』처럼 당초에 일본어로 쓰인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고, 여러 나라의 번역본이 이어질 정도로 화제를 일으킨, 이박사의 대표적인 쾌저快著이자 명저名著이다. 한 나라의 문명과 문화의 핵심과 특징을 ‘축소지향縮小指向’이라는 한 단어로 꿰뚫어본 이박사의 혜안慧眼이 놀라움으로 번득이는 책을 새삼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예전에 읽었던 기억들이 깡그리 사라져버린 것 또한 놀라웠다.
아무튼, 일본을 두세 번 가본 적은 있으나, 효자아들 덕분에 처음 가본 도쿄는 흥미롭고 유익했다. 글이나 말로 수십 번 듣고 본 우에노공원, 도쿄 스카이타워 전망대, 남대문시장은 상대도 안될 정도로 큰 전통시장 등을 둘러보고 지하철을 처음 타봤다. 우에노공원에서 왕인박사의 기념비를 일부러 찾은 것은 한국인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시부야와 신주꾸, 카마쿠라, 후지사와, 하꼬네산과 료칸 등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본 것에 그쳤으나, 어찌 아내의 손을 잡고 아들과 하는 3인의 여행이 좋고 즐겁지 아니 하겠는가.
몇 가지 소감을 적는다. 첫째, 어디를 가나 ‘인간들’이 너무 많아 버글버글했다. 역시 머릿수는 많고 볼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지금은 완전히 적대국가敵對國家가 돼버린 것같이 남북관계가 험악하지만, 합쳐 통일이 된다면 인구가 최소 7000만명은 넘을텐데,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여행내내 줄기차게 들었다. 일본은 1억5천만이라 했던가. 북적북적한 가운데, 일본의 위기 어쩌고하는 생각은 저 멀리 가고, 우리보다 여러 모로 진작부터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지진地震의 나라라는 악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쿄타워를 세우고 초고층빌딩이 즐비한 것을 보니 또 선진국이었다. 도쿄가 전세계 메가시티(1천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 몇 번째인 줄은 모르겠으나 대단한 대도시, 우리의 지하철보다 더 복잡한 거미줄같은 철도는 환승하기가 쉽지 않았다. 셋째, 관광지에서조차 영어英語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매우 불편했다. 이제는 국제공용어가 된 영어를 쓰거나 알아듣고 말할만도 한데, 대부분 고개를 저었고, 약간씩 불친절했다.
넷째,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반려동물의 천국이 아니던가. 그런데, 공원에서도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모두 집안에서만 키우는 것일까. 다섯째, 주말인데도 관광을 하는 중국인 등 외국인이 별로 없고 내국인들이 주류인 것이 이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말이면 외국인들이 서울의 고궁古宮을 많이 찾지 않던가. 여섯째, 전주한옥마을이나 경복궁 등에는 한복을 입은 선남선녀들과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인증샷을 찍느라 바쁜데, 도쿄 주변에는 전통 기모노를 입은 여성과 의상 코스프레하는 외국인들이 거의 없었다. 다음으로, 일본도 우리나라와 베트남 같이 한자권漢字圈 나라이기에 곳곳에 지명地名 등 한자 안내판들로 돌아다니는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 며칠 있다보니 쉽게 감感잡을 수가 있어 편했다. 또 하나, 지하철 내에서 핸드폰만을 죽어라고 승객들이 많지 않았다. 많아야 20-30%, 우리의 경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90%가 코를 박고 있지 않은가. 그 대신 책을 펴든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책을 읽지 않고, 역사를 개무시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반드시.
아무튼, 이박사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얘기하자면, 현재 437쪽중 100쪽까지 읽고 있는데, 역시 예전처럼 재미났다. 간호사 아들도 각나라의 문명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같아 출국할 때 주려고 어렵게 구한 책인데, 가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자漢字 실력이 얇은 아들이 읽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은근과 끈기'로 똘똘 뭉친 친구이니 어렵고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끝까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아갈 때 주려고 미리 사놓은 것은 책이 호주 원주민 참사랑부족들의 이야기인 『무탄트 메시지』이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으로, 이 시대 우리 인간을 지칭한다. 21세기 눈부신 과학문명의 허와 실을 주제로 하는 듯해 아들에게 강추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다 죽어야할까? 무엇이 우리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일까?’를 숙고熟考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언제 읽어도 새록새록 자기의 인생이 충일充溢해짐을 느끼는 게 진정한 고전古典일 터. 200번을 읽어도 부족한 인생독본人生讀本인 『논어』처럼 말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도 고전이 되어 업그레이드해야 할 판인데, 석학 저자는 이제 지상에 없다. 2장 ‘축소 지향의 여섯 가지 모형’을 읽다보면 저자의 예리한 시선과 시각에 무릎을 칠 정도로 탄복하게 만든다. 이레코형(入籠形), 쥘부채형, 아네사마 인형형人形型, 도시락형, 노멘형能面型, 문장형紋章型. 일본에 대한 이해가 조금만 있으면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이든 무엇이든 작은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명제命題 아닌 그들만의 유전자遺傳子인 게 오직 신기하기만 하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민족성이나 문화, 문명과 저절로 비교하게 되는데, 하늘이 두쪽나도 '쪽바리'들의 문화와는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일본 SONY 등의 ‘트랜지스터 문화’가 왜 급격하게 위축돼 버렸는지 이 책을 보면 정답이 보일 것같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문명과 문화 그리고 풍속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책은 단숨에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되는 책”이라는 일본의 한 언론인 평은 의미심장하다. “축소지향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해 일본의 문화구조를 풀어가는 솜씨는 마치 마술을 보는 것같다. 처음에는 의심했으나 읽어감에 따라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근시가 안경을 썼을 때처럼 사물이 분명하게 보였다”는 또다른 언론인의 코멘트를 봐도 그렇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근시안이 안경을 썼을 때 사물이 분명하게 보이듯, 20년 전에 일본어로 펴낸 이 책을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일본이 다시 또 많이 수상해졌기 때문이다. 자위대 파병이 금지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다시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듯한 작금昨今의 일본 정치를 보라. 1930년대 후반, 그들은 민족기질인 축소지향을 그만 두고 엉뚱하게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며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렇게 철퇴를 맞았음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더러운 민족성답게 다시 축소 대신 확대와 확장을 꿈꾸고 있다. “일본놈 (다시) 일어난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마라. (뙈놈들도 마찬가지) 조선사람 조심하라”던 해방 전후의 참요讖謠를 기억하시는가. 토착왜구의 정당이 날뛰고, 고질적인 고착 밀정密偵들이 정부기관 내에서조차 판을 치는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려면, 고전이 된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