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가 붉게 달아올랐다. 산천이 붉게 물들고 붉은 함성으로 메아리쳤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한민국'을 연호한다. '대~한민국'이 자연스런 인사가 되었다. 인사를 하는 사람도 인사를 받는 사람도 '대~한민국'이다. 16강이 염원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어느새 국민들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8강, 4강을 이야기한다. 꿈이 아니길 빈다.
히딩크는 또 어떠한가. 파란눈의 이방인 히딩크가 은자의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히딩크 신드롬', '히딩크 효과' 등의 말들이 거침없이 오가는가 하면, '히딩크 인형', '히딩크 개릭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일부 네티즌들의 입에선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히딩크 귀화해라' 는 등의 비현실적인 의견까지 터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약사빠른 일부 대기업은 히딩크의 대표팀 운영 방식을 회사 경영에 도입하자고 하기도 하고, 외부 언론은 한국에서는 대통령보다 히딩크가 더 인기가 좋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가히 히딩크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히딩크! 그는 한순간에 국민의 목마른 갈증을 해결한 영웅이다. 전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영웅이다. 축구라는 종목만을 놓고 볼 때 히딩크는 영웅으로 대접받을 충분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다. 아무도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누가 감히 히딩크의 공적을 부인할 수 있는가? 반세기의 비원을 일시에 날려버린 히딩크, 전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당사자가 바로 히딩크 아니던가?
16강!
우승 후보 프랑스, 아르헨티나가 예선에서 떨어졌다. 포르투갈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러한 마당에 극동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16강에 들었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이루어야할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꿈은 자꾸 상승된다고 하지만 현실적 조건을 무시한 꿈은 추락하는 법이다. 우리의 전반적 축구 수준을 생각해볼 때 16강 이상의 성적을 요구하는 것은 자칫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16강 대한민국. 결과로 나타난 성적이 과연 진정한 우리의 성적이란 말인가? 과연 우리는 진정 8강을 이야기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더란 말인가? 아닐 수도 있다. 아니다. 이제 냉철하게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아야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월드컵 8강, 4강, 우승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실력은 아니질 않는가? 오늘 우리가 이룩한 성적에 너무 들떠 우리의 현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월드컵이 끝난 다음 진정 축구의 발전을 위한다면 냉정한 이성으로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딤돌을 놓아야 하는데, 자칫 우수한 지도자 한 사람만 있으면 한국 축구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먼 장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할 수도 있음을 염려하는 것이다. 히딩크만 있으면 된다는 웃지 못할 생각,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집착한다면 큰일이다.
물론 히딩크는 우수하다.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은 인정하지만 히딩크가 곧 우리 축구의 내일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수준은 한 단계 올라갔지만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축구 수준이 다 한 단계 올라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늘 우리가 올린 성적은 말 그대로 사상누각인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는 투자를 해야한다. 유소년 축구를 위해 과감히 투자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프로축구가 열리는 경기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만들어야 한다. 히딩크가 백신이 될지 악성 바이러스가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늘 이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축구 외적인 개인적 우상화는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히딩크의 말 한 마디를 가슴에 새기고 오늘 오늘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가자!
내침김에 콧대 높은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를 꺾고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건너 세계를 놀라게 해주자.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란 말인가? 우리의 응원이 필요하다면 전 국민이 거리로 나서 대표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우리 국민의 단결된 힘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자. 목청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고 신명으로 춤판을 열자. 광화문에서 영도다리 건너 제주도까지 붉은 색으로 붉게 물들이자. 축제가 끝나면 얼음처럼 냉정한 이성을 바탕으로 2006년 다시 열릴 또 한 번의 축제를 준비하자. 히딩크를 앞세우지 말고 진정 우리의 힘으로 세계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자. 바로 지금이 그날을 준비해야할 때다. 히딩크는 백신이 되어야 한다. 가자! 8강으로,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히딩크는 죄인이다.
은자의 나라를 쑤셔놓은 벌집으로 만들어 놓은 죄,
전국민을 뺄갱이로 만든 죄,
신성한 태극기를 모독한 죄,
전국민을 잠 못 드는 밤으로 몰아간 죄,
자동차의 흐름을 방해한 죄,
대학생들을 길거리 텐트 안에서 공부하게 만든 죄,
히씨라는 성을 우리의 고유한 성이라 착각하게 만든 죄,
국민의 목청을 터지게 만든 죄.
용서하기에는 너무 많은 죄를 지은 아주 사랑스런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