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는 서목사님 내외분과 파리에서 날아온 지체와 함께 생명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서로 사랑하게 하시니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대구로 오는 기차를 기다리던 중에
늘 마음에 두고 소중히 여기는 젊은 영혼을 우연히 수년 만에 만났습니다.
‘우연’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주님께서 만나게 하신 필연적인 이유를 생각하며,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오염된 영혼을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아버지 품속의 평강, 흔들리지 않는 그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본문 주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4절)
첫 번째는 예수님의 빈 무덤과 확인할 수 없는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한곳에 모여 있을 때 나타나셨다. (요20:19)
두 번째는, 도마가 자기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한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타나신 것이다. 주님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복됨을 말씀하여 주신다. (요20:26~27)
세 번째는 오늘 본문으로서 주님을 만나고서도 옛 생활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조반을 먹이시는 장면이다.
(서형섭 목사님 주해에는 이 세 번의 나타나심이 시간의 순서가 아니고, 오늘 본문이 먼저 있었던 사건으로 설명되어 있다.)
1절 : 디베랴 호수(갈릴리 바다)에서 7명의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신다.
2~3절 :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도 시몬 베드로의 주도하에 제자들은 고기 잡는 일을 계속하기로 한다. 이들은 옛 직업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그 7명은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두 제자였다.
그들은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4~7절 : 아침이 밝아올 때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예수께서 제자들을 ‘아이’라고 호칭하신다.
전문적인 어부였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는 제자들은 주님 앞에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들을 ‘얘들아(아이들아)’라고 부르신 것은 합당한 표현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신 낯선 분의 말을 따랐더니 그물은 고기로 가득 차게 된다.
그때 요한이 주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기 위해 벗었던 몸에 겉옷을 두르고 물속으로 뛰어내려 주님이 서 계신 해변으로 헤엄쳐 갔다.
8~13절 :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꽉 찬 그물을 해변으로 끌고 갔다.
고기 잡힌 배에서 해변까지의 거리는 90미터쯤 되었다.
예수께서 이미 불을 피워놓고 조반(생선과 떡)을 준비하시고, 밤새도록 수고한 제자들에게 아침을 먹여주신다.
이때, 주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함께 그물을 끌어올려 보니 153마리나 되었다.
153마리는 제법 큰 물고기임을 알 수 있다. 잔멸치 정도를 마리 수로 세지 않기 때문이다.
153은 아주 많은 숫자를 상징하며,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제자로 삼는 모든 족속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또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이끄신 자들은 다 아들에게로 나온다. 제자들은 그렇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
제자들은 예수의 명령에 따랐을 뿐 고기가 어떻게 잡혔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하나 어떻게 열매 맺는지(생명에 이르는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 예정하신 모든 자(153마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13절, 새번역)
제자들의 배부름(만족)은 그들이 수고한 일의 성과(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께서 친히 베푸신 조반(아침마다 베푸시는 생명의 양식)으로 인함이다.
14절 :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새번역)
(나의 묵상)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말하는 베드로나, 함께 가겠다고 하는 제자들의 태도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나고도 어떻게 옛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하는가?’ 하는, 분개에 가까운 의문이 들지만....
그것은 나약해 빠진 나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은혜를 받았다고 방방 뛰다가도 또 낙심하고 침잠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런 자들을 위해서 주님은 계속, 부지런히 찾아와 주신다.
빈 무덤과 확인할 수 없는 부활의 소식을 듣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 계신가 알아보거나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한곳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 속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첫 번째로 찾아와 주셔서 평강을 주셨다. (요20:19~23)
두 번째는, 도마가 자기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한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타나신 것이다. 주님은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의 복됨을 말씀하여 주신다. (요20:26~29)
세 번째는 오늘 본문으로서 주님을 만나고서도 옛 생활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조반(생명의 양식)을 먹이시는 장면이다.
(서형섭 목사님 주해에는 이 세 번의 나타나심이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고 되어 있다.)
툭하면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신실함이 없고 뻔뻔할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복음을 몰랐으니 나의 죄인 됨을 몰랐던 때이다. 그때는 나의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던 때이다. 나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때이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니, 그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나 자신이고, 유대인들의 율법 지킴만큼 지키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들을 판단하고 나선 자, 정말 생 무식한 자가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제자들을 보고 ‘야~~어찌 그럴 수 있냐?’ 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나고, 놀랐지만,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아직 모르니 옛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꽉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이다.
그렇듯이 내 삶도 성령께서 주관하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주님은 얼마나 부지런히 찾아오시는지!
아담이 죄 지었을 때부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며 찾아오신 것이, 늘 배반하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시는 것으로 이어지고, 예수님 부활 후에도 겁이 많아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툭하면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나를 찾아오시기까지 부지런히 찾아오시는 것이다.
이런 내 모양에 대해 주님 앞에 민망하고 죄스럽다는 생각을 이제는 버린다.
죄송하다고,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나는 원래(태어날 때부터) 아무 희망도 없는 존재였고, 어떤 기대의 여지도 없는 존재이니 그저 포도나무 가지처럼 주님께 붙어 있어야만 할 존재인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어 영멸에 처해져도 한 마디도 불평할 수 없는 나를 창세전에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누리고 전하는 자 되도록 하시기 위해 주님은 매일 나를 만나주신다.
그것도 새벽마다, 아침마다 말씀의 식탁을 미리 차려놓으시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시며 빵도 집어주시고, 생선도 집어 주시는 것이다.
아, 부지런히 찾아와 주셔서 빵도 먹이시고 생선도 먹이시는 주님께 부지런히 반응하는 것이 말씀 묵상의 자리이다.
이것도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게 하시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
배부르게 먹고, 예수님으로 만족한 그 이야기를 온 천하에 선포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장차 성령이 임한 제자들이 다시 물고기나 잡으러 가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뜻하신 바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묵상 기도)
주님,
두려움에 빠졌다가,
느닷없이 자기 자랑으로 설치다가,
다시 낙심하다가....
참으로 한심한 존재가 이제 눈을 뜨고
자신의 죄인 됨을 보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런 자를 찾아와 만나 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찾아오시는지!
새 언약 백성으로, 십자가로 이끌어 가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심을 알았으니 더욱 의지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