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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5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오늘 요한복음 두 번째 묵상을 마칩니다.
창세전 언약을 말씀하시고 선재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이 땅 곧 세상의 존재물에 천착하여 살아가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와 그 생명을 주시고자 원하십니다.
어리석고 허물 많은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날 향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사오니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품안에서 거하게 하소서.
병아리가 어미닭의 날개 아래 거하듯 이 종도 우리 주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쉐키나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21:15-25
제목 : 세 번째 이르시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 나의 묵상
갈릴리로 돌아온 제자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으나 고기를 잡지 못하였다.
그들은 주님께서 오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
밤새 헛그물질만 하다가 낙심과 절망에 빠진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망을 주시고 또한 주님이 친히 차려주신 아침식탁을 함께 먹었다.
그것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 그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셨을 때였다.
누가복음 5장에서도 어부였던 베드로와 동료들이 고기 잡는 사건이 나온다.
이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였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새벽이 되어 바닷가에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육지에서 배를 조금 떨어지게 하시고 그 배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때다.
밤을 새워 헛그물질만 한 탓에 더 지치고 피곤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를 타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베드로가 그 배에 함께 동승을 했는지 아니면 배만 육지에서 떨어지도록 하고 자기는 바닷가에서 계속 그물을 씻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그 소리는 베드로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였다.
그는 모든 것이 귀찮았을 것이다.
그저 빨리 집에 가서 식사하고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다 전하신 후에 베드로더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다.
그 때 베드로의 대답이 이렇다.
(눅 5:5-6)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 일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이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눅 5: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일에 잔뼈가 굵은 베드로는 가히 고기잡이의 베테랑이었다.
그런 그가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면 고기가 없거나 아니면 고기가 그들을 피해 다녔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좀 잡아 본 사람들에게는 날이 훤히 밝은 상태에서 바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왜냐하면 그 때는 깊은 곳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고기를 잡았다.
이 때 베드로는 엄청난 기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한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원래 사람은 어떤 사람이 초자연적인 기적 행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 앞에서 경외감을 가지거나 자기 자신의 초라함을 보게 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베드로 역시 자신의 초라함과 죄인 됨을 느끼면서 자기를 떠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이제는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천명하시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시자 곧 그들이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른 것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주님을 따랐다기보다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을 보고 탐욕과 욕망의 그물질을 하기 위래서 따랐던 것이다.
마치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욕망의 그물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서도 그로부터 3년 후, 곧 공생애를 마치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때는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제자로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자들이었다.
예수님을 통하여 무수한 기적을 보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난 후에도 여전히 갈릴리에 낙향(落鄕)해서 헛그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3년 전이나 3년 후에나 그 상황을 연출하신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바다의 물고기를 지으신 창조주로서 그 물고기들의 길을 인도하시며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주께서 택하신 이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삼기 위하여 심지어 바다의 물고기 떼의 길까지 주관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씩이나 보았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세상을 향한 그들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였다.
아니 버릴 수가 없었다.
자기들이 3년 전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른 이유가 무엇인데 그 욕망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볼 때, 이제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이라면 무언가 세상의 영웅이 되어 정치적, 경제적인 왕으로서 세상을 호령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주님은 부활 이전이나 이후나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고 갈릴리로 낙향해서 지금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들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친히 아침 식탁을 차려 주시고 함께 교제를 하셨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에게 3번의 질문을 하시는데 그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아가파오, 아가페 사랑)하느냐?...
이 때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필레오, 친구의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 대답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신다.
다시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아가파오)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두 번째도 동일하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필레오)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 또한 “내 양을 치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이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필레오)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필레오)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15절에 나오는 첫 번째 질문에 나오는 ‘이 사람들보다’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버려두고 온 부모와 가족 그리고 그물과 다른 제자들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포함되는 중요한 사항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세상적인 야망이나 욕망이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한 몫 잡으려고 했던 세상의 소욕이나 욕심보다 나 예수를 더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이는 베드로만 아니라 오늘 나와 우리들에게 주시는 송곳 같은 질문이다.
만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존재물이다.
이 존재물들은 쇠락의 법칙에 의해서 언젠가는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이런 존재물들은 주님이 주신 선물로서 이용하는 것들이지 결코 향유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향유의 대상은 삼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향유의 대상인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때 부모나 친구 등 다른 제자들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단순한 한 사람 즉 개인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양들을 먹이고 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탐욕이나 욕심으로는 불가능하다.
자기를 채우고 있는 세상적인 욕망이나 야망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두 번에 걸쳐 ‘아가파오’ 곧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으로 물어보셨을 때 베드로는 그 질문에 너무나 큰 갈등과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고민 끝에 ‘필레오’ 곧 친구의 사랑으로 대답하였던 것 같다.
아가페의 사랑과 필레오의 사랑은 그 의미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주님의 사랑 안에는 ‘아가페와 필레오’의 두 가지 사랑이 모두 포함된다.
주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셨다(요 15:10).
그 사랑으로 또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이는 사랑의 완전체이다.
사랑을 단순히 아가페나 필레오로 구분할 수 없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아가페, 스톨게(어머니의 사랑), 필레오, 에로스(남녀간의 사랑)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하루 전에 이런 사랑을 언급하셨다.
(요 15: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여기서 언급된 ‘친구를’은 ‘사랑하는’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이런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임을 의미한다.
베드로를 비롯한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시고 죽으신 주님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것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나의 욕망과 탐욕을 내려놓고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 그 사랑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 말씀하신 ‘필레오’의 사랑은 결코 그 사랑의 격을 낮추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의 눈높이를 맞춰주시는 주님의 은혜이다.
주님이 맡기신 주님의 양 떼를 먹이고 치기 위하여서는 내 안에 가득 쌓여 있는 세상의 탐욕이나 야망인 내 양식이 아니라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양식을 주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양식은 그래서 복음을 통하여 영의 살이 찌는 것이며 그것은 곧 심령이 가난한 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존재물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고 오직 생명의 양식인 주님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주의 말씀 곧 복음을 오늘도 먹고 마심으로 그 나라를 현재로 누리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나이다.
나의 생명이 주께 있사오니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소서.
나를 주께 드리오니 내 안에 있는 세상을 향한 소망은 점점 사라지게 하시고 주님으로 인하여 하늘 소망으로 가득 넘치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는 한이 없사오니 당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에게 생명 주시고자 하시는 그 사랑 앞에 엎드리나이다.
이제 내가 그 가없는 사랑으로 뭇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하늘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드소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이 내게 있사오니 그 사랑으로 주님을 늘 사랑하며 증거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