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나무가 우거진 숲 속.
그곳에 꼬불꼬불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크고 작은 버섯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있단다.
가지각색의 버섯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자신의 미모를 뽐내는데, 그중 집채만한 큰 버섯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모양은 버섯이지만, 창과 문이 달려있고, 꼭대기에는 굴뚝까지 있으니..
그게 바로 '붉은 마녀'가 사는 '숲속의 버섯집'이란다.
은은한 장작불 위에 작은 솥을 올려놓고 물을 끓인다.
막 일어난 암소의 우유 한컵, 아침이슬 두방울, 달빛을 머금은 거미줄, 그리고 저녁의 월계수 잎을 5장 준비한다.
이 모든 재료를 솥 안에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어라?!
1.
오늘도 쾌청한 날씨다. 새가 즐겁다는 듯이 지저귀고, 토끼도 조심스레 나들이 나온다.
햇볕도 찬란한데 바람마저 살랑살랑 불어오니.. 그야말로 빨래하기 딱 좋은 날씨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집만 비가 오는 건데??"
2층과 연결된 나선계단 위에 턱을 괴고 주저앉아,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15세 가량의 소녀가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주미령'. 내가 살고 있는 이 "숲속의 버섯집"의 하숙생으로, 근처 마을의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언제나 보라색의 짧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흰 셔츠에 파란넥타이와 스커트의 교복차림을 고수하는 소녀다.
살짝 처진 눈과 언제나 찡그린 얼굴. 군데군데 붙어있는 반찬고가 사람들에게 불량하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사실은 남을 잘 챙겨주는 착한 소녀다.
'숲속의 버섯집'에서 마녀견습생으로 살고 있는 난 '나선형'.
좀 괴상한 이름이지만, 사랑하는 언니가 지어줬기에 난 좋아한다.
붉은빛 도는 갈색머리는 짧은 쇼트에 억쌔서 항상 두 가닥의 머리칼이 안테나처럼 하늘을 향해 떠있다.
미령이와 같은 나이지만, 키가 작고 얼굴에 비해 눈이 커서 어려 보이는 것이 콤플렉스.
마녀인 언니의 영향으로 검은색의 옷을 좋아해, 오늘도 검은 모던 원피스를 입고 있다.
"야! 나선형! 뭘 그렇게 멍하게 있는 거야? 이것 좀 어떻게 해봐!"
앞서 미령이가 말했듯이.. 그렇다. 지금 우리 집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게 무슨 대수냐만은... 실내에 내리면 일이 커지지...
"대체 뭘했는데 이지경이야??"
"그게.. 변비약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솥에서 먹구름이 나오더니만...."
그 먹구름이 끊임없이 장대비를 쏟아내어 1층이 물에 잠긴 상황이란 말씀...
"벼.. 변비약?"
미령이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곧 폭발하오니 모두 대피해주십시오. 라는 뜻이다..
다급해진 나는 허둥지둥 변명을 했다.
"아하.. 오해마! 주문받은 약이니까. 게다가 먹구름 없애는 방법은 확실히 아는걸.."
"뭔데?"
"저기 두 번째 선반의 '웃고있는 홍당무'를 사용해서.."
쾅!!!
내 옆으로 번개가 쳤다.
보통 번개는 번쩍한 뒤 약간의 딜레이 후 천둥을 내보내,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던가..
하지만 이 번개는 번쩍과 천둥이 동시였다.
아아.. 정말이지 심장 멎는 줄 알았다고...
"흐음.. 어떤 선반?"
미령이가 약간 처진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놀란가슴을 진정시키고,
"저기.. 두 번째.. 선반..." 하며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오.. 세상에...
난데없는 번개에 재가 되어버린 선반의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설상가상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주미령이 폭발했다..
2.
'웃고있는 홍당무'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나가기로 했다.
마을은 소나무 숲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나가면 있다.
모든 마녀는 인간과 마녀간의 안전을 위하여, 인간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떨어져 살아야한다.
마녀와 인간간의 규칙이다.
마녀견습생인 나는 규칙대로 마을에서 떨어진, 이 소나무 숲의 '숲속의 버섯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행간 언니 집에 내가 눌러 사는 것이지만..
현관문이 물살과 함께 세차게 열렸다. 그리고 홍수로 모인 물이 쏴- 하고 작은 강을 이루며 빠져나가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그 강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홍수날 것 같으면 문을 열어두지 그랬냐.."
"......"
그러게 말이다.
나는 비행용 빗자루를 집었다.
"에? 뭐야.. 걸어가려고?"
종종걸음으로 벌써 저만큼 걸어가고 있는 미령이에게 투덜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이상할정도로 천천히였다.- 날 돌아봤다.
"... 너무 편한 것에 의지하면.. 건강에 해로워.."
그러곤 휙 돌아서 가던 길을 가는 것이다.
"하아??"
나는 그녀답지 않은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빗자루를 가진 채로 걸어가기로 했다.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주변 큰 도시와는 많이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남쪽의 이웃나라와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교역상들의 중간 휴식처로 자리잡게 되었다.
교역상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다양한 물건을 접할 수 있기에, 주변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여관과 시장이 발달하게 되어 지금은 꽤 번화한 마을이 되었다.
우리는 '웃고있는 홍당무'를 찾기 위해 시장으로 갔다.
"자자~ 싸요 싸요~ 인어의 귀걸이가 오늘은 특별히 쌉니다~"
"남쪽에서 올라온 고운 옷감 보세요~"
"목숨걸고 구해온 드래곤의 비늘팝니다!!"
쉬는 김에 물건의 무게 좀 줄여보려는 교역상들이 손님몰이에 바쁘다.
사람들은 온갖 신기한 물건을 볼 때마다 이게 뭐냐며 묻는가 하면, 저쪽에서는 한창 흥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엄마따라 시장구경 아이들도 남쪽나라의 교역상과 재주꾼들 -그들은 우리보다 키가 작고 귀엽게(?)생겼다.-을 보며 마냥 즐거워 보인다.
"아앗!! 오색뱀의 허물이 이렇게 싼 가격에 팔다니!!"
"꺄악!! 이 노리개(옷에 하는 장식품) 너무 귀엽다!!"
이렇게 내가 한눈 팔 때마다,
"안돼! 너 오늘 '웃고 있는 홍당무' 살 돈 밖에 없잖아!"
하며 제제를 가한다.
"근데.. 아까부터 '웃고 있는 홍당무'가 안보이는걸?"
시장을 반정도 돌았지만 여태껏 '웃고있는 홍당무'는 보이지 않았다.
야채를 파는 곳에 가면 꼭 '웃고있는 홍당무'만 없는 것이다.
"이상하네.. 지금이 한창 수확할 계절이라 많이 팔텐데.."
결국 시장을 한바퀴 다 돌 동안 '웃고 있는 홍당무'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홍당무는 찾았지만..
"웃고있질 않아.."
미령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겨우 홍당무를 파는 교역상을 만났지만, 그 홍당무는 웃는 얼굴이 아닌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다.
"왜.. 왜 안웃어요??!!!"
나는 다짜고짜 교역상에게 물었다.
'웃고있는 홍당무'는 고소하고 단맛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재료이며,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다.
그런데 이렇게 잔뜩 찡그린 홍당무는 난생처음 봤다.
교역상도 그 마음 이해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매번 찾는 농장에 '웃고있는 홍당무'를 구하러 갔는데, 글쎄 하나같이 다 이렇게 찡그리고 있지 뭐냐.. 농장 주인들도 이런 일이 드문지 당황하고 있더군.."
교역상도 이 '찡그린 홍당무'를 처음 보는 지라, 몇 개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부터 '웃고있는 홍당무'가 안 보였던거였군.."
미령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기 그 농장이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교역상과 주미령이 놀란 듯이 날 쳐다보았다.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그 먹구름을 없애려면 당장 '웃고있는 홍당무'가 필요한걸!
그리고 그 농장에 가면 혹시나 한 두개 정도 남아있을지 모르잖아!"
"웃!" 미령인 그 먹구름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 움찔하며 아무 말도 못했다.
"가르쳐 줄 순 있긴 한데.. 여기서 상당히 먼 곳이라..."
교역상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마녀인걸요!"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빗자루를 보여줬다.
그때 주미령이 다시 놀라며 날 쳐다보았다.
"나.. 날아가려고?"
"멀다잖아.. 당연히 날아야지.."
"......"
미령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너.. 설마 빗자루 타는게 싫은 거야?"
그녀가 움찔한다.
그렇군.. 그래서 아까도 빗자루를 타지 않고 걸어온거구나..
건강이 어쩌고 했던 건 급히 생각한 궁색한 변명...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야~ 우리 미령이가 나는 것을 무서워 할 줄이야.. 진작 말하지 그랬어~"
"아니 나는건 안 무서워."
미령이는 딱 잘라 부정했다.
"단지 너의 폭주하는 비행솜씨가 싫은 거야."
"......."
교역상이 알려 준대로 '웃고있는 홍당무'농장을 찾아 날아갔다.
주미령은 빗자루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나무를 붙들고 구토하기 시작했다.
내 비행솜씨가 그렇게 심한가??
나는 미령일 뒤로하고 홍당무 농장을 바라보았다.
"넓다."
과연 이 근처 지역사람들이 이 농장의 홍당무를 먹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넓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착착 정리되어 있는 밭에는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홍당무들이 있었다.
농장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집들이 7~8채 정도 모여있었다.
"보아하니 농장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어라? 속 시원해졌어??"
"시끄러!"
"너무 그러지마.. 갈 때도 빗자루 타야하는걸~"
미령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고, 나는 반대로 그 모습을 보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자! 어서 '웃고있는 홍당무'를 구해서 돌아가자!"
주미령이 부활한 듯이 외쳤다. 아니.. 자포자기 한 건가?
우리는 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조용한걸.."
미령이도 느꼈는지 중얼거렸다.
마을 근처로 들어가자 미령이가 외쳤다.
"선형아! 저기저기!!"
미령이가 가르킨 곳에 한 7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벽 뒤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얘 묻고 싶은게 있는데~"
내가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그 아이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집안으로 도망가버렸다.
나와 미령인 서로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퍽!
"꺅!"
갑자기 어깨에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 앞에 떨어진 돌이 통증의 원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너 마녀지!! 당장 우리 마을에서 나가!!!"
나는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우리 앞에 마을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세 명이 모여있었다. 손에는 돌을 든 채로..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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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샌드위치(SandWitch)-숲속의 붉은마녀- #1
벼리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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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0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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