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수필 원고 : 20200719)
< 알자리 보기 >
정영인 -
어렸을 적, 집에서 내개 맡겨진 소임 중에 하나가 매일 닭알을 챙기는 일이었다. 암탉이 낳은 알을 찾아서 모아 놓는 일이다.
이 소임을 잘 완수하려면 암탉이 알을 낳는 자리인 ‘알자리’를 잘 알아두는 일이다. 닭은 정해진 자리에 알을 낳으려는 버릇이 있다. 특히 처음으로 알을 낳아야 하는 햇닭은 알자리를 신중히 물색한다. 사람이나 다른 침입자의 손이 타지 않게 자기만의 은밀한 알자리를 신중하게 물색한다.
대개 높은 깍짓동이나 짚동가리 위나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알자리를 정한다. 특히 처음 알을 낳기 시작하는 햇닭의 알자리는 눈여겨 보아야 제 때 알을 깔축없이 꺼낼 수 있다.
대개 알을 낳으려는 암탉은 알을 낳으려 할 때 알 겯는 소리나 몸짓을 한다. 원래 ‘알 겯다’는 암탉이 발정한 때, 알을 배기 위해 수탉을 부르는 소리나 어머니는 암탉이 알을 낳으려 할 때 내는 소리도 알 겯는 소리라 했다. 골골골 소리를 내거나 궁둥이를 실룩실룩 거렸다. 또 알을 낳고서는 꼬꼬댁 하고 울기를 하나 약삭빠른 암탉은 어느 사이에 알을 낳고 알자리에서 소리 없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암탉은 위장전술도 뛰어나다. 누가 닭을 닭대가리라 놀리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임에 틀림없다. 이젠 새를 ‘새 대가리’ 라고 놀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사람처럼 부모의 보살핌을 길게 받는 까마귓과는 부모에게 생존가술을 배워 뇌가 발달하여 생각보다 인지능력이 뛰어나다 한다. 함부로 새 대가리라 놀리는 것은 그런 새를 키워낸 새의 부모까지 욕을 먹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알자리를 제 때 찾지 못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알을 꺼낸 적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불을 안 때는 방고래에다 알을 낳는 경우도 있어 그것을 찾은 재간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낳은 알을 품었다가 병아리를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아마 이런 경우를 꿩 먹고 알 먹는 경우일 것이다. 그때의 알들은 다 유정란였다. 이미 암탉의 몸속에 수탉의 씨가 들어간 부화될 수 있는 알이었다. 무정란은 열 번 죽었다 깨어도 병아리로 부화될 수가 없다. 씨 없는 수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을 찾아 모으는 담당이었지만, 내 마음대로 알을 먹을 수가 없었다. 모아 놓은 계란은 먹기도 했지만, 주로 장날마다 팔아 가용에 보태썼기 때문이다. 장날이 되면 어머니는 모아 놓은 계란을 짚으로 꾸러미를 만들어 몇 줄씩 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우리들 학용품도 사고 눈깔사탕도 되었다. 어머니는 귀신 같이 내가 계란을 축낸 것을 알아 맞추셨으니 말이다.
아마 달걀이 제일 맛있을 때는 닭의 똥구멍에서 갓 빠져 나온 따끈한 달걀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도 비리지도 않고 아주 고소하고 풍미가 있었다. 그런 알들은 사료를 먹고 낳은 달걀이 아니라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버르집어 먹은 지렁이, 구더기, 풀이나 낟알들을 먹고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먹어 축냈다간 어머니의 유도신문에 걸리면 야단 맞았다. 파수 때마다 팔아야 하는 어머니의 계란 수 계산법은 정확했기 때문이다. 혹 가다 어머니가 보너스처럼 갓 낳은 달걀을 깨 넣고 참기름에 비벼주는 밥의 맛은 천상의 맛이라는 것이다.
암탉이 골골골 알 겯는 소리를 하고, 궁둥이를 실룩거리면 90%가 알을 낳을 징조이다. 엉덩이가 커야 알을 잘 낳는다는 속설이 진짜다. 알을 잘 낳는 암탉은 궁둥이가 튼실하다. A자 형이나 사다리형이다. 씨암탉은 더욱 그렇다. 짐승 암컷은 궁둥이가 커야 새끼를 잘 낳는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며느리 자리를 고를 때 엉덩이가 크기가 필요충분조건의 하나였다. 집사람을 인사 시키러 집에 갔다. 아버지께서는 집사람의 체수와 빈약한 엉덩이를 슬쩍 보시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그러면서 입속말로 “엉덩이가 커야 애를 잘 낳는다는데…….”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참새도 알만 잘 낳더라.” 못마땅한 심사를 대신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집사람은 남매를 자연분만하지 못하고 제왕절개를 했다.
암탉은 자기 알지리가 발각되면 다른 알자리를 더욱 은밀하게 물색한다. 그때부터 암탉과 나와의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알자리를 숨기는 자와 찾는 자의 싸움이다. 알을 낳는 둥우리에다 알을 낳게 유도하려면 항상 알 한 개를 거기다 넣어두어야 한다. 나중에는 그 알은 곤달걀이 되었다.
시골에서 놔먹인 암탉의 알은 항상 꽉 차 있다. 노른자의 색이 짙고 선명하다. 더구나 기골 좋은 수탉이 데리고 다닌 암탉이 난 알은 더욱 그렇다. 그건 생명이 있는 유정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짜배기, 알토란같다 라는 말이 나온성싶다.
혹 가다 알뚝배기에다 찐 계란찜은 우리 차지가 되기 어려웠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손님의 몫이었다. 삶은 달걀도 소풍 때나 운동회 날이나 좀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계란이 이젠 흔하다 흔한 음식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라고 조그만 트럭에서 외치던 계란장사의 외침도 골목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아무리 지금 계란찜을 해먹고, 삶아 먹어도 그 당시 먹었던 계란찜 맛이 영 나지 않는다. 하기야 귀해야 귀한 맛이 될 것이다. 우리 집사람이 제일 절하는 요리가 계란프라이란다.
계란 한 개 몰래 주머니에 넣고 엿을 바꾸어 먹던 시절, 혹 가다 달걀부침이 벤또에 넣어지면 난리가 나던 그때, 암탉의 첫 알을 수탉알이라 우기던 그 시절, 달걀 한 알도 고맙게 먹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 흔한 시절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마움을 잘 모른다. 아이들도 그렇게 흔하게 키우니 고마움을 모른다.
부화기로 깬 암탉은 알을 품지 못한다고 한다. 참을성이 없어서……. 암탉이 품어서 자란 암탉만이 알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동식물이나 자식을 키우고 퍼뜨리는 일은 신의 숭고한 소명의식이기 때문 일 것이다. 산불이 났다. 까투리가 타 죽었다. 품속에 꿩병아리를 꼬옥 품은 채…….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집아 주었다. 그게 장모님의 시위 사랑의 징표였다. 하기야 씨암탉을 잡는다는 것은 그 집안의 닭의 대를 끊어 놓는 일이다. 씨암탉은 그 집안 닭들 중에서 가장 높은 대접을 받았다. 아무 암탉이나 씨암탉이 되지 못했다. 우선 알을 잘 안고 품는 암탉이어야 했다. 또 삼 치레를 알을 품고 굴리고 보살피는 모성애가 강한 닭이어야 한다. 진득하지 못하고 참을성이 없는 암탉은 씨암탉으로 자격 미달이었다. 또 족제비나 수리가 달려들면 표독하게 달려들어 쫓아내는 극성스런 닭이어야 했다. 씨암탉은 새끼 잘 배는 암소처럼 그 집안의 보물이었다. 알고기씨 같이 알도 많이 낳고 고기 맛도 좋은 닭은 어머니의 특별 사랑을 받았다. 그런 닭에겐 낟알 몇 줌이라도 더 뿌려 주셨다.
정작 씨암탉은 맛이 별로였다. 알을 깨느라고 온갖 고생과 진을 뺏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1년에 두서너 배를 품는 씨암탉이 있었다. 한여름철에 안으면 암탉의 눈이 진무를 정도였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계란 몇 줄, 참깨 몇 되 이고 장에 가신 엄마를칭얼대는 동생을 업고 눈 빠지게 기다렸다. 엄마가 내 입에다 입이 볼록하도록 큰 왕눈깔 하나 물려주면 하루 시름이 사르르 녹아 내렸다. 어머니는 알토란같은 자식 여섯 명을 남겨두고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갓 알을 낳은 알자리 같이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 그립다. 날개의 깃 속에 모든 자식 병아리를 품었던 씨암탉 같은 엄마였다.
첫댓글 건강하심을 빕니다.
사위에게 씨암탉을 주신었다는 것은
일반 닭을 다주고 마지막으로 씨암탉마져 주시었다는 어떨까요?
괜히 태풍에 곁들여 한마디 올립니다.
@@@ 씨 없는 수박 @@@
아주 오래 오래 전에, 첫 째 매형에게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딸 가진 죄인이라고 뭔 멀울 못했습니다. 그러다 숙환으로 첫 째 매형이 죽고, 재혼한 누님은 바로 아이가 들어 섰습니다. 45세에.
결국, 첫째 매형이 '씨 없는 수박'이었습니다. 특무상사로 근무하면서 방탕한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젠, 누님도 둘째 매형도 다 저 세상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