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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기소리
글 : 윤석(2002년 6월 17일쓴글발췌)
여름이다. 가만있어도 땀이 나고, 후텁지근해 기온으로 봐서는 틀림없는 여름이다. 그러나 나의 여름은 아직 저 멀리 있다. 내 마음속의 여름은 지금도 유년의 농촌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보리 타작과 하지감자를 캐고 난 뒤라야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벌써 들녘엔 모가 파랗게 커가고 있지만 옛날 같으면 아직 모내기를 한창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보리바심을 하고 난 논의 모내기가 끝이 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던 곳은 토질 때문인지 보리농사를 잘 안 지었다. 그러나 빠끔한 농촌생활에서 뭐라도 소출을 증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게 보리농사 말고는 없었다. 우리가 어릴 적엔 많은 면적은 아니었지만 보리밭이 꽤나 흔했었다. 그 보리밭이 논과는 달리 많은 아름다움과 낭만을 연출하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도 간혹 보리밭을 보면 그 시절의 추억이 함께 일렁인다. 깜부기를 먹고 까매진 입을 보면서 수염이 났다며 동생과 마주보고 웃던 일, 보릿짚을 엮어 여치 집을 만들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물론 보리밭에 우글대던 미꾸라지 잡느라 신발 벗어들고 물 품어대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보리밭에 대한 추억의 사진첩엔 아름답고 그리운 그림으로 가득하다. 보리타작을 하고 난 논은 뒤늦게 키가 어른 만하게 큰 모내기하느라 허겁지겁 서둘러야 했다. 모심기 전부터 논엔 올 망대도 함께 커 그것을 캐먹느라 논바닥을 헤맸었다. 올 망대는 맛이 달착지근하고, 우윳빛 진액이 흐르던 콩알만한 까만 잡초다. 모내기를 끝내자마자 여름은 열기를 더해가고, 농업용수로 보내준 예당저수지의 풍부한 물 덕에 똘에서 헤엄치느라 하루가 짧았다.
깨끗이 닦았는데도 다이빙한다고 처박혔던 진흙이 귓바퀴에 더덕더덕 남았던 인묵이의 뒤통수가 생각난다. 하긴 어느 핸가는 가뭄이 극심해 제때 모내기를 못하고 물 전쟁을 치르던 기억도 송두리째 남아있다. 쥐오줌 만큼 흐르는 물이라도 논에 대려고 밤을 새서 품어대야 했다. 커다란 양동이 양쪽에 새끼를 매 두 사람이 퍼 올려야 했던 두레박질은 매우 고단한 일이었 다. 이보다 좀 진보된 게 두레였다. 커다란 기둥 세개를 세우고 매달아 퍼 올리는 두레는 나무판자를 이용해 만들었던 장비였다.
이보다 한 수위인 것이 수차다. 일명 물레방아다. 역시 나무로 만들어 세워놓고 올라가 발로 한 칸씩 밟아 주면 돌아가며 원심력에 위해 물이퍼 올려지던 아름다운 기계였다. 그러나 가장 진보된 수리장비는 역시 발동기였다. 발동기를 이용해 "피대"를 걸어 품어 올리는 "뽐뿌"는 그 위력이 대단했다. 쌀 한가마니 무게가 넘는 발동기를 지게로 옮기는 게 고역이었지만 농사일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재산이었다. 특히, 이 발동기는 부의 상징이 될 정도로 귀했다. 우리 동네만 해도 겨우 몇 집만 있었던 거 같다. 이게 밤새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지금 같으면 고약한 소음이었을 텐데 그 시절엔 밤의 적막 을 뚫고 운치 있게 다가 왔었다.
지금도 내 귓가엔 저 멀리 원장과 대펀에서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구성지게 토해내는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하모니를 이루던 발동기소리 말이다. 지금 같으면 모터 한 두대면 되는 일인데......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왜 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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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과 소리를 읽고 들으니 감회가 새로와 지네. 글쟁이는 역시 글을 감칠 맛나게 잘 쓰는구만.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그시절 발동기 소리가 들려 오는듯 하다..
역시 유운서기는 글쟁이여~~~~~~~~~~~
지금 화면에서 발동기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안들리는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