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석정 (叢石亭)
강원도 (북한) 통천읍에 있는 정자
동해에 돌출한 해식애(海蝕崖) 지대에
바다 속에 구릿빛으로 그을은 육각형의 현무암 돌기둥이
여러 개 총립(叢立)하여 절경을 이룬다.
높이가 100 척이 넘는 돌기둥도 있다.
고려시대에 기철(奇轍)이 총석정에 올라
동해를 굽어보며 지었다는
《총석정가》라는 가요가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2. 삼일포 (三日浦)
강원도 (북한) 고성군에 있는 호수
면적 약 0.7km2. 둘레 4.5km.
석호(潟湖)로 북서쪽에 거암이 솟아 있고,
남쪽 호안에는 기암이 많은 구릉이 있다.
신라시대에 영랑(永郞) ·술랑(述郞) ·
남석랑(南石郞) ·안상랑(安祥郞) 등 4국선(四國仙)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삼일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근처에 사선정(四仙亭) ·몽천암(夢天庵) 등이 있다.
3. 청간정 (淸澗亭)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城面) 청간리에 있는 정자.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작은 구릉 위에 있으며,
이 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아침의 해돋이광경과 낙조(落照)의 정취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의 심금을 울렸다.
1520 년(중종 15)에 간성군수(杆城郡守)
최청(崔淸)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불타 없어진 것을
40여 년 후인 1930 년경에 지방민들이 재건하였다.
4. 낙산사 (洛山寺)
강원 양양군 오봉산(五峯山)에 있는 절
3대 관음 기도 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 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671년 (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세웠으며,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의 중건(重建)을 비롯하여
최근의 산불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구함.
조선 세조(世祖)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원장(垣墻) 및 홍예문(虹霓門) 등이 있다.
이 절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보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 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如意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원통보전의 자리이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 관음상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하고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靈穴寺)에서
옮겨 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5. 경포대 (鏡浦臺)
강원도 강릉시 저동(苧洞)의 경포호 북안에 있는 누각.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28주(柱)의 팔작지붕 겹처마기와집의
누대(樓臺)로, 강릉 오죽헌(烏竹軒)에 있던 율곡(栗谷)이
10세 때에 지었다고 하는 《경포대부(鏡浦臺賦)》를
판각(板刻)하여 걸었다.
또한 숙종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특히 누대의 전자액(篆字額)은 유한지(兪漢芝),
정자액(正字額)은 이익회(李翊會),
제일강산(第一江山)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江山’ 두 자를 잃어버려 후세인이 써 넣었다고 한다.
경포대를 중심으로 8 경
녹두일출(菉荳日出) ·죽도명월(竹島明月) ·
강문어화(江門漁火) ·초당취연(草堂炊煙) ·홍장야우(紅粧夜雨)
증봉낙조(甑峯落照) ·환선취적(喚仙吹笛) 한사모종(寒寺暮鍾)
6. 삼척 죽서루 (三陟 竹西樓)
강원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각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있으며,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는데,
그 후 1403년(조선 태종 3)에 삼척부사(府使) 김효손(金孝孫)이
구기(舊基)에 의거하여 중창(重創)한 것이라고 한다.
7. 망양정 (望洋亭)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해안에 있는 정자(亭子).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望洋)해수욕장 근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조 숙종(肅宗)이 관동팔경의 그림을 보고
이 곳이 가장 낫다고 하여
친히 관동제일루 ( 關東第一樓)라는 글씨를 써보내
정자에 걸도록 했다.
주위 송림에 둘러싸인 언덕 아래로 백사장이 있고
왕 피천(王避川)이 바다로 흘러가며
멀리 망망대해가 정자에서 한 눈에 들어온다.
옛부 터 해돋이와 달구경이 유명하며,
정철(鄭徹)과 김시습(金時習) 등 유명 인사들도
이 곳에 들러 풍광을 즐겼다.
왕피천이란 의미는 임금이 이곳까지 피난을 한 곳이라고도 하며,
혹은 임금이 피서 (휴양)을 위해서 머문 곳으로 전해온다.
8. 월송정 (越松亭)
경북 울진군 평해읍(平海邑) 월송리(月松里)에 있는 정자.
신라시대의 화랑들(永 ·述 ·南石 ·安祥)이 이 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였다는 정자이다.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로, ‘月松亭’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
(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鄕人)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崔圭夏)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8경을 꼽을 경우, 월송정 대신 강원 통천군
흡곡(翕谷)에 있는 시중대(侍中臺)를 꼽는 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