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개인으로부터 국가, 인류 단위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삶을 바란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꿈꾸며 저마다 옳은 길을 외치는데, 여러 이념과 제도가 이에 따라 시행됐다. 지난 세기 ‘인권’을 세운 것은 큰 진보로 여겨지는데, 더 구체적으로 그것은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이다. 집단이나 집단의 우두머리에 귀속되던 삶의 결정권이 점차 확산되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다.
교회는 진작 이 해방을 이뤘다.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은 모두가 한 형제가 됨으로써. 이후 여느 운동들처럼 사회 평균대로 후퇴했지만, 본래의 가르침과 감동은 밀물처럼 되살아나 교회를 다시 깨우고 세상을 발전시켜 왔다. 밀고 당김의 결과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 선택하는 법을
배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가끔씩 사회주의자라는 의심이 던져진다. 교회의 머리에게 가해진 세상의 오해 혹은 오해를 가장한 공격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공산주의를 ‘반종교적이며 반사회적’이라고 단죄한 레오 13세 교황조차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고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세상이 무엇이라 부르든 신앙은 그것이 복음을 실천한 것이며 가장 아름다운 민주주의라는 걸
알고 있다.
세상은 종종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아름다운 이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사회가 독재로 흐르고 이어 몰락한 것으로 엄중하게 확인된다. 그리스도 신앙은 분열 대신 형제를 만드는 사랑의 길을 잘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 일을 하길 바라신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 25,40.45).
첫댓글 가난한 이웃을 먼저 돌봐야 하는것은 신앙인으로서 가장 우선해야 할 일임에도 자주 망각하며 삽니다.
신앙인으로서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의미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