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토 시대의 시작
1. 야마토 시대의 시작
야마토 시대는 그 기원이 약 3C부터인데, 이 무렵은 바로 야마타이국에서 여왕이 등장하는 시기부터라고 보면 됩니다. 청동기 야요이 시대에서의 소국(족장이 다스리는 작은 국가, 저는 보통 동네국가라고 합니다)을 강력한 여왕인 야마타이의 여왕 히미코(신공황후)가 통일한 이후 야마토 지방(나라현)의 호족들을 중심으로 뭉친 연합 국가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때 부터를 일본에서는 고대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죠. 야마토 정권이 일본을 통일했다는 증거는 확실하지 않아 논란이 많습니다. 특히, 야마타이국의 여왕이 과연 야마토 지방(나라현)에 있었냐는 것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일본에서는 다수설로 야마타이국의 강력함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야마타이국의 위치논쟁은 일본선사시대에서 충분히 다루었으므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나라현의 위치만 파악하세요.
우리나라에서의 정설은 초기 야마토 정권인 나라지방의 야마타이국이 있었다는 가정 하에, 이 국가는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면서 일본 열도를 통일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역시 이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반도로부터 선진 기술과 물품을 수송하기 위하여 안전한 교통로가 필요했기 때문에 야마토라는 연합 정권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합니다.
2. 고분으로보는 일본 고대사 - 우리나라 고인돌과 비교
특히 야마토 정권이 3-4C 무렵 일본을 통일했다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고분>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4C 이후 일본에서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모습의 고분(무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그 당시 일본이 강력한 나라의 지배를 동시에 받았다는 증거가 되죠. 그런데, 이 야마토 시대의 고분 특징은, 시대가 바뀌면서 고분에 묻힌 자들의 성격도 변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고인돌과 비교해서 쉽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초기 3-4C : 매장자가 신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부장품에 구리거울, 옥이 많았다. 제정일치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초기 우리나라 고인돌처럼 유력한 제정일치 사회의 군장 무덤으로 볼 수 있다.
2. 중기 5C : 매장자가 군사적 통솔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부장품에 마구, 무기 등이 보인다. 실제 정치를 하는 유력자가 묻혀있다. 전형적으로 우리나라 고인돌에서 보이는 무덤과 같다.
3. 후기 7C : 매장자가 평민으로 확대되었다. 유력농민(장원주)까지 고분을 만들어 고분수가 무지 많다. 우리나라 고인돌도 후기에 6000개 이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고인돌이 점차 지배층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과 사회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7C 이후 : 고분이 거의 없다. 일본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화장의 풍습이 생겼다는 뜻인 듯싶다. 따라서 불교가 그 사회를 점차 지배해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