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 레시피] 덕수궁에 앉아 바라본 우리네 人生"
소년아. 아름답지 못하고 추해도 괜찮아!"
덕수궁 안 연못 /함영준
만추(晩秋)의 덕수궁은 아름다웠다. 벤치에 앉아 낙엽이 수북히 쌓인 연못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금세 차분히 가라앉았다. 푸르른 하늘, 차가운 대기의 오후 2시.
문득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머니를 화재로 잃은 주인공 소년이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 겪는 일을 다룬 이 만화영화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일본 애니메이션계 거장인 미야자키 감독은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엔 화려하고 성격이 밝은 소년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죠. 그러나 저는 그런 소년이 아니었어요. 아주 우물쭈물하고 당당하지 못한 소년 시절을 보냈죠.”
그래서 그는 예전에 자기가 그랬듯이 추한 부분을 안고 갈등을 겪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1941년생으로 올해 82세인 미야자키 감독은 원래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러나 인생 막바지에 ‘오랫동안 피해왔던 것‘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저히 은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은퇴를 번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만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23년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대원미디어
“소년의 내면엔 아름다운 것도 있겠지만 굉장히 추한 것도 있겠죠. 아름다움과 추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힘차게 넘어갈 수 있을 때, 그제야 세상의 많은 문제와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공감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추억과 그렇지 못한 추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을 때, 평정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인생은 완성돼 간다.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된 현대 심리학도 자신의 아름답지 못함, 추함을 더 이상 숨기거나 억압하지 말고 드러나 직면(直面)케 함으로써 치유의 길로 인도한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 역시 아름답지 못한 나를 꽁꽁 싸매거나 부정하지 않고 끄집어내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해방과 자유, 성장을 느낀다. “그래서 뭐? (so what?)"
지금 내가 있는 덕수궁도 마찬가지다. 강대국들의 놀이터가 된 구한말, 고종임금이 피난해온 이 궁터는 그때는 참으로 치욕스러웠지만 지금은 한류의 나라 코리아의 작지만 아름다운 궁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참으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 연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인생은 이런 것!
글 |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