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리와 사회적 거리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우리의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곁에 있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이걸 '마음의 거리'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19로 생긴 변화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건강거리인 ‘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이 등장했다. TV는 어느 방송이나 자막에 '사회적 거리 2m 유지'라는 국민행동지침이 나온다.
L은 47년 전 순창 강천산 근처 팔덕초등학교에서 졸업시킨 제자다. 강원도 홍천에서 목사인 남편의 목회를 내조하면서 지역주민과 자연이랑 어울려 살고 있다. 여태껏 소식을 주고받곤 했다. 다른 제자들 소식도 전해 줘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 제자의 막둥이 딸을 결혼시키면 초대하기로 약속했다. 전화할 때면 딸 결혼 이야기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예식장이 나라 안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축복하려 벼르고 있다. 그런데 제자 남편이 보낸 부고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장모상, 순창보건의료원 장례식장’
부고를 보자마자 다음날 조문을 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 끝 무렵, 큰며느리 친정 조부님 상을 당했을 땐 코로나19로 하룻밤을 고민하다 조문을 다녀왔다. 이번엔 웬일인가? 장례식장이 가까운 순창이라 그런지 아니면 코로나19가 조금 수그러들어서일까? 확진자 수는 만 명을 치닫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려 강화된 행정명령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등급을 높였다. 벌써 제 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장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서 제식훈련처럼 앞사람과 1m 간격으로 줄을 서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조문을 가면 다른 제자들도 만나려나,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코로나19라 불리는 작은 미생물이 온 세상을 뒤집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봄꽃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내 마음은 하얀 벚꽃과 더불어 집을 나섰다. 샛노란 개나리꽃이 되었다가 다시 벚꽃으로 달렸다. 멀리 저수지 둑 밑 왕벚꽃은 온 맘을 하얗게 만들었다. 산 속 진달래꽃은 옛 시골 새색시처럼 연분홍 맘도 더해 주었다.
장례식장은 낮 시간이라 조문객이 적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는 국민행동지침을 지키느라 가족과 친·인척만 오고 있었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는 속담같이 조문보다는 제자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몇 제자들과 만났으니까 16년 만이다. 제자 남편은 첫 대면인데도 죽마고우를 만난 듯 어찌나 반가와 하는지 날 당황하게 만들었다. 손을 불쑥 내밀어 악수를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머릿속엔 사회적 거리로 꽉 차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받아주고도 불안했다.
제자남편은 맞은편 식탁에 제자는 오른쪽에 앉았다. 식당에서 ‘一(한일)’ 자형으로 앉고 그것도 옆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식사한 걸 TV방송에서 본 생각이 나 꺼림직했다. 식사만 하고 나오려 했으나 대화는 실타래가 풀어지 듯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은 잊고 타임머신을 타고 옛 팔덕 교정으로 날아가 제자의 휴대폰에 담긴 졸업사진을 봐 가며 이야기를 펼쳤다. 제자 남편도 아내의 소녀시절 이야기라 귀를 쫑긋 세우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는 게 아닌가? 전남 담양으로 시집간 S제자가 밭에서 일하다 말고 날 보러 온다고 하니, 기다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드디어 S제자가 세수만하고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 조문한 뒤에 KBS 1TV방송 ‘TV는 사랑을 싣고’ 장면이 벌어진 게다. 나에게 큰절을 받으라며 바닥에 엎드리려 했다. 말려도 기어코 하겠다는 게다. 유가족과 조문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오면서 다짐한 게 틀림없었다. 그 제자의 맘을 받으며 서서 인사를 하게 했다. 내가 순창읍내에 근무할 때 만났다며 사진까지 내밀었다. 졸업 땐 키가 크며 얼굴이 길쭉했고 웃는 모습이 예뻤다.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만우절에 어여쁜 아가씨가 교문에서 기다린다고 해서 나갔다 왔다는 나도 모르는 추억을 이야기해 한바탕 웃었다. 농사지은 깨로 짰다며 참기름 한 병을 선물로 받았다.
‘코로나19가 3월은 울게 했으나 4월은 벚꽃이 환하게 웃고 살자네요.’
지난 달 마지막 날, 지인들한테 보낸 문자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내게 먼저 이루어질 줄이야. 장례식장에서 사회적 거리 생각보다 마음의 거리가 앞선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느라 두 시간이 넘었다. 나오다 또 전화로 Y제자의 목소리까지 들었다. 내 얼굴에는 올 때 본 벚꽃같은 미소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2020.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