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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철학
1. 우파니샤드 철학
리그베다가 만들어진 이후 인도의 철학자들은 그 주석서를 만들기 시작하여 수백 년 동안 이에 주력하였다. 거기에서 나온 작품 가운데 최후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철학적 사고를 지대성한 것이다. 기원전 700년경부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이 작품은 우파니샤드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담겨진 대부분의 중심사상은 자이나교 및 불교의 창시자에게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힌두교의 사성적 기반이 되었다.
우파니샤드라는 말의 뜻은 ‘스승 가까이에 앉음’, 즉 ‘궁극적인 지혜에 관한 토론’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성립된 것은 인도에 문자가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성자나 스승으로부터 ‘가까이에 앉는’제자에게 신비스러운 지식이 구두로 전수되어 왔기 때문이다.따라서 우파니샤드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주로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는 철학적 노력과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종교적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우파니샤드는 우주와 인간의 마음의 본질을 그리고 양자의 상호 관계를 철학적으로 깊이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선악, 천지창조, 신,인간 등의 문제에 대해 절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의 입장에 서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부단히 논리를 전개하며 온갖 가능성을 모두 제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파니샤드는 그 후의 인도의 종교적 발전의 모든 기조(基調)를 정해 놓았다.
우파니샤드 시대에 와서 인간의 개인 존재와 우주의 여러 현상의 대비가 주목되기 시작하였다. 자연의 리듬과 주기, 다양한 기상과 그 밖의 변화는 결코 인간과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예사롭지 않은 자연의 여러 현상 속에서 자신과 함께 울고 웃으며 생활하는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현대의 합리적 지성과는 달리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자연의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인간에 비교되는 생명체의 움직임이며, 인간과 공감적 유대를 갖는 사물로 간주되었다.
우파니샤드는 “우리들은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고 자문한다. 우주의 본질에 관한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예로부터의 생각은 여전히 중요하게 남아 베다 시대의 많은 신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는 여러 가지로 상이한 세상에서도 하나의 동일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모든 신, 모든 인간 그리고 우주에 편재해 있는 모든 사물은 하나의 세계의 정령에서 발전된 것이며, 브라만(梵)이라고 불리는 그 정령은 거기에서 발전된 모든 형태의 것 속에 깃든다는 생각을 전개했다.
브라만은 우주의 본체, 즉 우주의 근본원리를 지칭한다. 브라만이란 원래 베다 성전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차 성전에 포함된 지식이나 그로부터 연유하는 신비스러운 힘, 신들이나 우주도 움직일 수 있는 주술적인 힘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존재를 만들어 내고 지배하는 최고 원리가 된 것이다. 그것은 만물의 주재자로서 만물에 깃들어 있으면서도 특정한 형태나 크기, 혹은 속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편 영원한 생명을 깨달아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기의 본원을 규명함으로써 가능하며 이러한 의미에서의 자기의 주체는 아트만(我)인 것으로 파악된다. 아트만은 ‘at', 즉 ’호흡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 호흡, 숨이라는 의미가 생기 그리고 생기가 머무는 곳으로서의 신체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다시 자기 자신을 의미라는 말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점차 단순히 나 자신이 아니라 가장 종교적ㆍ철학적인 의미에서 자기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즉 자기 존재의 바탕에 있으면서 이를 지탱하는 자기의 본질로서, 죽은 후에도 소멸되지 않는 영원불변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이 시대부터 표면화되는 윤회ㆍ전생의 관념과 결합되어 영혼적인 것이 되었다.
브라만이 모든 존재의 본질이라면 아트만은 개인 존재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브라만은 아트만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여기서 비로소 유한의 개체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라는 사실을 논리적 사고가 아닌 종교적 행법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인식했을 때, 개인의 존재는 영원한 삶을 얻고 윤회의 순환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고대의 인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유에서 인간과 우주 그리고 자연의 동일과 합일이 논의되었다. 인간의 호흡과 바람, 눈과 태양, 정액과 물 등이 이러한 관계이다. 즉 천재인 우주가 대우주라면 인간은 소우주이다. 이러한 사유방법은 그 후에도 인도사상의 바탕을 이루었으며, 탄트리즘에 이르러 더욱 결정적인 형태로 인간과 자연의 동일화가 구체화되었다.
그러면서도 우파니샤드는 고대의 신들을 계속 찬양했다. 그 때문에 인도 사람들은 다신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다양성 속에서 단일성을 발견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하나의 광대무변한 정령을 알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들은 일원론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일신교, 즉 ‘신은 오직 하나’라는 유태교 등의 개념과는 다르다. 모든 신, 모든 인간, 모든 사물은 우주에 편재하여 있는 유일한 정령이 다만 형태를 달리하여 나타났을 뿐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 의해 우주 전체는 각 개인의 ‘나(我)’, 즉 아트만과 관련지어진다.
인간이 자연과 합일한다면, 자기의 본질인 아트만은 동시에 우주 그 자체의 본질이지 않으면 안된다. 아트만은 만물에 내재하며, 우주의 모든 존재를 지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최고 원리 브라만과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기본적 의미이다.
‘브라만이 곧 아트만’임을 아는 것은 종교체험 속에서 감득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순한 형이상학적 문제가 아니라, 그 근저에는 체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범아일여는 뛰어난 신비주의적 종교실천으로써 여기에 보편적인 우주의 실재와 합일하는 자기가 발견된다.
아트만은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이지만, 그 자체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어떠한 표현으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 어떠한 모습으로 이를 정의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어로 파악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본질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브라만과 마찬가지로 아트만도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그것은 존재하고는 있으나 실제로 붙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생명의 주체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형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예화(例話)로써 설명되고 있다.
“그 벵갈 보리수(banyan)의 열매를 가져오라”하고 슈베타케투 아루네야(Svetaketu Aruneya)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가져왔습니다.”
“쪼개어 보아라.”
“쪼갰습니다.”
“거기 뭐가 보이느냐?”
“아주 작은 씨앗이 보입니다.”
“그 하나를 쪼개어 보아라.”
“쪼갰습니다.”
“이번에는 뭐가 보이느냐?”
“전혀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알겠느냐? 네가 보지 못하는 그 가장 미세한 것이 저 벵갈 보리수의 본성이란다. 큰 벵갈 보리수도 그 본성으로 되어 있단다. 본성이란 도처에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정령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만물의 자아이며 너도 또한 그 자이이니라.” 여기서 “너도 또한 그 자아이니라”라는 말, 즉 너도 우주에 편재한 브라만과 하나라는 말이 일원론의 참뜻이며 인도 종교의 기본 테마이기도 한 것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자아(브라만인 동시에 만물이 내재하는 자아)가 만물이 되었음을 아는 자라면, 일단 그 일체성을 본 자에게 무슨 슬픔, 무슨 번뇌가 있으랴?”, “마치 흐르는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서 자취를 감추어 이름과 형태를 잃어버리듯이 , 현인은 이름이나 형태에서 해방되어 모든 것을 초월한 신과 다름 없는 인간의 경지에 이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몇 차례나 환생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트만의 존재는 어쩌다 그것이 깃들게 된 신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신체는 영혼이 입는 의복과도 같은 것이어서, 의복이 낡아서 해지면 버리듯이 영혼도 낡은 신체를 버리고 새 신체를 입는 것이다.
새로운 신체를 입고, 적당한 때가 오면 그것을 버리고 또 다른 새 신체를 입는 과정, 다시 말하면 영혼의 윤회 내지 전생(轉生)은 인도사상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영혼이 입는 ‘옷’은 벌레나 동물같은 인간 이하의 생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혼이 자기를 알고 그 행위에 책임을 지며 나아가서는 더욱 고도한 상태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은 인간의 신체를 그 옷으로 삼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우주와의 합일을 안다는 최종적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가 있게 된다.
영혼의 갈 길은 카르마(業, karma)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카르마라는 인과율은 인도사상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다. 카르마에 의해 선량한 행위는 좋은 결과를 낳고 사악한 행위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선량한 생애를 보낸 자는 보다 좋은 환생을 약속받지만 악한 경우에는 그 보상으로서 인간 이하의 것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즉 환경, 지적 능력, 사회적 지위 등의 개개인의 생활조건은 그 사람 특유의 카르마, 말하자면 전생에서 행한 선악의 직접적이고도 피할 수 없는 응보이다. 이처럼 내세의 생애는 현세에서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카르마에 좌우된다.
카르마는 현상황을 인정하고 현재 상태를 필연적인 것처럼 만든다. 그것은 전통적인 존재 양식을 존중하여, 카스트 제도에 의한 엄격한 차별을 지탱하여 사회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려는데 원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론적으로는 인도 사람들의 생활에 자기의 운명을 기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어 줄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도의 윤회사상과 관련성을 지닌 또 다른 것은 다르마(法, dhar-ma)라는 개념이다. 다르마란 원래 ‘지탱하고 유지하는 것’이란 뜻으로 종교적 진리, 윤리, 관습, 의무 등의 여러 가지 뜻을 갖는 말이다. 목욕제례, 사원참배, 성지순례, 공덕을 쌓는 일 등의 각종 의례와 제사에 참여하는 것도 다르마와 관련된 것으로 죄와 공덕의 기본적인 관념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현세에 있어서 현재의 입장에 의해서 의무지워지는 각 개인의 임무를 뜻한다. 다르마를 지켜 의무가 명하는 대로의 인생을 보내면 그 사람의 카르마는 좋아진다. 카르마가 좋아지면 그 보답으로 보다 좋은 내세가 약속된다.
우주 본체와의 합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브라만, 아트만 사상과 더불어 윤회, 카르마, 의무적인 다르마의 세 가지 개념은 기원전 6세기 이전에 성립된 우파니샤드 안에 인도 종교사상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이것은 영속적인 기초가 되어 오늘날에도 인도인의 생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의 공헌은 인간에 대한 견해를 바꿔갔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초기 베다 문헌에서는 신들이 최고의 존재였다. 종교는 주로 제례, 공물을 신들에게로 운반해 간다는 성스러운 불(agni)에 동물이나 음식물을 태우는 희생과 주문 외우기에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를 만든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은 ‘지고(至高)의 본체’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므로 인간을 신의 지위에까지 끌어올렸다. 이 사고방식은 당시의 사상계에 광범하게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사제 이외의 사람들도 철학적 탐구를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은 우파니샤드에 담긴 기초 위에 서 있었으나, 브라만의 지적ㆍ종교적 지배에 도전한 이도 적지 않았다.
극도의 명상과 신비적인 정신집중으로 많은 수행자는 그 마음을 보통으로는 도저히 얻기 어려운 자유로운 상태에 둘 수 있었고, 때로는 새롭고 귀중한 통찰에 이르렀다. 우파니샤드가 말하듯이 ‘어둠에서 더욱 깊은 어둠으로’ 향해서 항상 인간과 우주의 신비를 풀려고 했다. 여기에서 인생의 의미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얻은 그들은 그 발견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 잡혔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물렀던 숲을 떠나 각지를 돌아다니며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을 향해 설교했다. 기원전 6세기에 인도는 새로운 철학사상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수행자는 제자들을 많이 얻었고, 브라만의 입장에서 보면 비정통적인 가르침이 상당수 생겨났다.
그러한 신앙 중에는 반브라만적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들 신흥종교 중에서도 끝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둘뿐이다. 이 두가지 불교와 자이나교는 브라만의 전통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중요한 종교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베다와 브라마니즘에 그 기반을 두고 있지만, 괴로움으로 가득 찬 현실 생활로부터 해방을 위한 직접적인 신과의 관계를 보다 학문적ㆍ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조감하고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제사의 의무와 규정을 행하는 행위의 무위성을 알았으며, 지고의 삶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실재 자체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파니샤드 학자들은 제례 의식에 따른 형식적인 행위주의에서 벗어나 우주와 인생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한 지식을 탐구했다.
우파니샤드 철학에 의하면 우주의 본체인 브라만과 인간 생명의 근원인 아트만과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범아일여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삶을 발견하기 위한 최고의 지식인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는 범아일여의 사상을 실현하므로써, 죽은 뒤 윤회의 속박에서 해탈하여 불멸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이와 같은 영생을 얻는 방법은 현세적인 금욕과 고행 그리고 참된 지식을 통하여 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의 존재를 부정한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베다나 브라만교의 사상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며, 철저한 자아성찰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현세에서도 해탈(jivanmukti)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불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철학은 활발히 전개되면서 당시의 브라마니즘의 형식적 교의에 많은 자극을 주었다. 나아가 불교나 자이나교 출현의 사상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바가바드기타
바가바드기타는 고대 인도의 서사시 중의 하나인 ‘마하바라타’ 가운데 나오는 한 절(節)로서, 700송 18권으로 된 것이 일반에 알려진 모습이다. 성립 연대를 확정짓기는 곤란하지만 다른 문헌과의 관계나 문체 및 어법 등으로 보아,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측된다. 원래 이의 역사성은 마하바샤(Mahabhasya)나 비문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은 크리슈나(krsna)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바가바타(Bhagavata)파(波)의 성전이었으나, 교주(敎主)를 베다에 보이는 비슈누(Visnu) 신과 동일시하므로 정통 브라만 테두리 안으로 흡수되어 점차 인도사상 일반에 영향을 끼쳤다.
바가바드기타의 내용은 성진인 쿠루 평원(Kuru-ksetra)에서의 친족끼리의 결전을 무대로 하여, 전쟁에 대해 의혹을 품은 아르주나(Arjuna)에게 그의 주인이요, 의형(義兄)인 크리슈나가 격려하고 교사(敎唆)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불교를 포함한 당시 사상계의 여러 추세를 절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교의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으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유일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bhakti)이며, 기존의 사회제도에 입각하여 각자의 본분(swa-dharma)을 사심 없이 수행할 것을 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주로 삼는 크리슈나라는 이름이 기독교의 ‘Christ'와 유사한 점과 바가바타 푸라나(Bhagavata-purana)나 그 밖의 문헌에서 전하는 출생 및 유아기의 전설, 나아가 여기서 강조하는 헌신적인 사랑의 내용으로 보아 기독교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주장이 종종 거론된다. 그러나 리그베다에서 보이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 슈베타시와타라 우파니샤드(Svetasvatara Upanisad) 제6장과 그 밖의 카타카(Kathaka) 및 문다카 우파니샤드(Mundaka Upanisad) 속에서도 보이는 유사한 구절을 참조한다면 그러한 가설의 필요성이 반드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더듬어 보면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적 기반은 상키야(Samkhya)에서, 그 실천적 원리는 요가(Yoga)에서 찾을 수 있으며, 중성적 근본 원리인 브라만(梵)에 근거를 둔 범신론적인 베단타(Vedanta)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브라마 수트라‘와 더불어 베단타의 세 체계(prasthana)로 간주되어, 샹카라(Sankara)와 라마누자(Ramanuja)를 비롯한 베단타 학파의 거장들이 이에 대한 많은 주석을 남겼다.
바가바드기타는 정의의 전쟁, 왕의 의무, 하늘의 뜻, 윤리, 종교, 철학 문제 등을 주제로 유연성 있는 철학적 교리와 열렬한 신앙을 교묘히 조화시키고 있다. 이의 실천철학의 규범은 후세까지 힌두교의 성전으로 존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도시 국가의 양상, 상인들의 조합, 직공의 생활 등 당시의 인도사회의 모습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자료의 보고이기도 하다.
‘바가바드기타’는 쿠루족(Kauravas)의 100인의 왕자와 판두족(Pand-avas)의 5왕자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형제지간이나 서로 전장에서 대결하게 된다. 이제 막 전투가 벌어지려고 할 무렵, 판바다의 셋째 왕자인 아르주나는 전차를 양 군 앞에 몰고 나간다. 동족이 서로 싸운다는 것은 하늘의 순리를 배반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자기가 타고 있던 수레의 마부의 크리슈나(비슈누신의 화신)를 향해서 자신의 번민을 호소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친족과 싸움을 벌여 서로 죽이고 어떻게 좋은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 왕권의 복락을 탐해서 동족을 죽이려고 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죄를 지으려고 결심한 것입니까?“
아르나주를 본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의기가 침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무인(武人)의 자손심에 호소하여, 주저할 이유가 결코 없음을 깨우쳐 주었다. 크리슈나는 이 싸움은 이(利)를 위한 싸움이 아니고 의(義)를 위한 싸움이며, 정의를 위한 싸움은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왕자의 의무, 하늘 뜻의 소재, 자각의 근본 등 윤리, 종교철학에 관한 문제를 설교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이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다. 정의의 전쟁에 투신하는 것은 크샤트리아족의 본연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할 의무를 생각해서도 네가 겁을 내는 것은 옳지 않다. 너 자신의 책무만을 생각하라. 왜냐하면 크샤트리아족으로서는 자신의 의무인 정의의 싸움을 하는 것보다 더한 선행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크샤트리아로서는 끝까지 싸우는 것이 자기의 본연의 의무이다. 이러한 의무관에서는 필연코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일만 있을 뿐, 일의 성패를 염려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네 할 일은 오직 행동에만 있지 결코 그 결과에 있지 않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마라. 그러나 행동 아니함에도 집착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이 말을 듣고, 이 싸움의 의의를 이해하였으나,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어두운 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최고신 비슈누 신에 의한 구제를 밝힌다. 즉 일의 성공여부에 상관 없이 사심을 버리고 결과를 신에게 맡기고 본연의 의무(swadhama)에 매진하는 것 자체가 해탈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세계의 상대적인 것, 유한한 것에 번민하지 말아야 함을 말한다.
여기에서 아르주나는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어, 드디어 모든 번민이 없어지고, 인과응보의 관념까지도 떠나게 되어, 그는 정의의 전쟁을 수행한다.
바가바드기타는 이러한 전쟁담을 통해서 ‘바가바드기타’가 정의의 소중함과 선악의 분별심으로 인한 번민을 신앙으로 승화시켜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인간에 대한 신의 은총사상이 비로소 나타난다. 이에 따라서 최고신에의 열렬한 신앙(bhakti)의 길이 열렸다. 이러한 행동의 형이상학을 인격신의 은총과 신자의 신애로 나타나는 일신교의 기초로 삼은 점에 바가바드기타의 특색이 있다. 또한 바가바드기타는 상키야ㆍ요가ㆍ베단타 등 당시의 모든 사상 조류를 절충하여 모든 사람에 친근한 것이 되고 있다.
“누구나 믿는 마음을 가지고 잎새 하나, 꽃 한 송이, 과일 한 알, 물 한줌이라도 경건한 신애로써 나에게 바치는 자를 나는 받아줄 것이다.”라고 하고, “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평등하다. 내게는 미운 것도 없고 고운 것도 없다. 그러나 나를 정성으로 믿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또한 나도 그들 안에 있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러한 최고신 앞에서는 일체의 행위가 용서를 받게 된다고 하여, “일체의 종교적 의식을 버리고, 오로지 나에게 귀의하라. 나는 너를 일체의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이니, 근심하지 말아라.”라고도 하고 있다.
이 신은 선인을 구제하기 위해서 또는 악인을 섬멸하기 위해서 각각 권화의 형식을 취해서 출생하나, 그에게 귀의하면 악인도 구제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바가바드기타의 권화사상과 해탈관이 보인다. 곧 열렬한 신앙을 가지면 최고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최고신의 본성를 알면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서 해탈하게 되며, 이러한 자는 최고신과 본질을 같이 하게 된다고 한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아르주나 왕자는 ‘나는 각오가 되었다. 이젠 아무 의혹도 없다.’고 하여 마음 속에 있던 번민이 사라져 흔쾌히 싸움터로 나가 공을 세웠다”고 하여, 최고신의 은총이 이와 같이 위대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전쟁에 참가하면서 전쟁의 비참함과 무인의 의무의 가해성을 반성하여, 자신의 의무와 인류애의 모순에 고뇌하는 왕자와, 그를 위로하여 의지해야 할 길을 가도록 한 비슈누 신의 화신인 마부 크리슈나의 대화는 2000년 동안 인도인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였다.
이 크리슈나의 철학적 교훈은 바가바드기타의 주체를 이룰 뿐 아니라 철학적 내용과 열렬한 신앙을 교묘히 조화시킨 실천 도덕의 규범을 나타낸 것으로 후세까지 힌두교도의 성전으로 존중되고 있다. 근대 인도의 국부로 숭앙받는 마하트마 간디(M.K. Gandhi)는 비극에 찬 그의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한가닥 희망도 없이 절망에 부딪쳤을 때 항상 바가바드기타의 시구에서 무한한 용기를 얻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한편 마하트마 간디의 그늘에 가려 크게 빛을 보지 못한 대중적 민족주의자이자 고전 연구자인 발강가다르 틸락(B.G. Tilak)은 바가바드기타에서 행동철학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탈락은 바가바드의 가르침은 바로 행동철학이라고 말하고, 여기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자유를 얻을 때까지 행동주의는 인도국민의 의무라고 했다.
바가바드기타는 힌두교도에게는 크리스트교의 복음서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서양고전의 세속적 전통에만 익숙해 있는 서양의 독자들은 왜 복음서와 같은 바가바드기타가 전쟁의 이야기인 마하바라타의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두 무리의 군사들이 전쟁 준비를 모두 마치고 전열을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바가바드기타의 대화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은 이 경우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는다.
그리하여 바가바드기타는 인도의 대표적인 고전으로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또한 근세의 인도사상가들에게 있어서도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3. 정통 브라만 계통의 체계
우파니샤드의 등장과 더불어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정통적인 브라만의 사상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사상가들의 개혁과 혁신운동이 일어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유사상가들에게 대항하여 정통적인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브라마나 우파니샤드적인 사조를 발전시켜 정통브라만 사상을 계승하려고 하였다. 이들을 총칭하여 우리는 ‘육파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흔히 육파철학으로 요약되는 이들 정통 힌두교 철학체계는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00년까지 약 1000년 동안에 형성되었고, 그 후 오랜 동안의 정리 기간을 걸쳐 확립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수는 매우 많았다. 그러나 브라만 정통의 여러 가지 철학적인 체계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여섯 가지의 사유체계를 인도인들 스스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선별한 것이다. 그 중 상키야(Samkhya) 학파는 요가(Yoga) 학파와, 니야야(Nyaya) 학파는 바이셰슈카(Vaisesika) 학파와, 미맘사(Mimamsa) 학파는 베단타(Vedanta) 학파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 모든 학파는 힌두교도들이 정통의 필수조건이라고 여기는 신앙의 근거와 최종 규범을 넓은 의미의 베다에 두고 있다는 점에 부합된다. 각 학파에서는 개조가 인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각 학파는 ‘수트라’라고 하는 근본경전을 갖고 있으며, 이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수트라에 대한 많은 주석서들이 나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또한 각 학파는 모두 우파니샤드에서 언급된 업과 윤회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1) 샹키아 학파
인도 전통에서는 상키야 철학이 인도 철학(darsana: 사물의 본질에 대한 견해라는 뜻으로 직관을 중요시함)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상키야 철학 초기의 이원론은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불교 그리고 바가바드기타의 공통된 기본 개념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우파니샤드의 유일한 유(有)라는 일원론과 대립한다.
상키야 학파의 개조는 거의 신화적인 인물로 고타마 붓다보다도 조금 먼저 칼필라성(Kapilavastu)에서 태어난 카필라족의 한 사람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최고의 원전은 이슈바라크리슈나(Isvarakrana, 自在319)의 상키야카리카(Samkhya-karkia, 數論319)이다.
상키야 철학은 불교와 같이 세계를 고(苦)로 보며, 이 고를 극복하는 데에 철학적 사유의 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요가의 체험에 기초한 인간의 심리현상의 관찰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상키야 학파에서는 우파니샤드의 유일(唯一)한 유(有)라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피하고, 그 대신에 두 가지 원리인 수수정신의 푸루샤(purusa)와 근본물질의 프라크리티(prakrti)를 상정하므로 이론적인 입장을 취한다.
푸루샤(神我)는 정신적 원리이며 프라크리티(自性)는 물질적 원리이다. 어느 것도 환상(maya)이 아니며 실재이다. 프라크리티, 즉 물질이란 푸루샤를 제외한 현실 세계의 전개원리로서 일체의 현상이 그로부터 발전해 나오기 때문에 미전개자 혹은 미현현(avyakta)이라고 한다. 푸루샤는 실체로서의 개아(個我)이며, 이 푸루샤는 순수한 식(識) 혹은 방관자로서 어떠한 활동을 하지 않고 프라크리티를 관조할 뿐이다. 그 자체는 순수청정, 상주불변하며, 생사, 윤회, 해탈도 푸루샤와는 무관하다. 변하는 것은 붓디이지 푸루샤가 아니기 때문이다.
푸루샤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부분과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 반면에 프라크리티는 근본적인 질료인이다. 프라크리티 자체는 어떤 원인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그로부터는 모든 것이 전개되어 나오는 세계의 질료적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키야 학파에서는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 satkaryavada)을 주장한다. 모든 결과는 원인인 물질에 이미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창조는 이미 존재하고는 있지만 미전개 상태에 있던 것이 전개되고 가시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의 전개의 결과인 일체의 피전개물도 그 원인인 물질과 같이 모두 세 종류의 요소(guna)로 구성되어 있다.
상키야 철학에서 프라크리티는 사트바(sattva, 320), 라나스(rajas, 320), 타마스(tamas, 320)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세 개의 구성 요소가 서로 완전한 평형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정지상태에 있지만, 푸루샤의 관조를 기회인으로 하여 라자스의 활동이 일어나면 프라크리티의 평형상태가 끼지고 진화의 과정은 시작된다. 이 때 프라크리티에서 최초로 생기는 것은 사트바를 그 지배적인 성품으로 하는 붓디(buddhi)이다. 붓디로부터 모든 물질적 세계가 전개되었다고 하여 위대한 것(mahat)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과거의 무수한 전생을 통하여 얻은 기억들과 정신적 성향들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붓디는 푸루샤와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푸루샤와 프라크리티의 중개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붓디로부터 라자스를 그 지배적인 성품으로 하여 아함카라(aham-kara, 321)라 불리는 개체화의 원리가 전개되어 나온다. 아함카라는 자아의식이다. 자기에 집착하는 아집을 특질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늘 자기본위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하고, 사물에 대해서도 자기 것이라는 견해를 품게 된다. 이 아함카라, 즉 자아의식은 원래 물질적인 근원적 사유기능을 자아라고 잘못 생각하여, 근원적 사유 기능과 푸루샤를 동일하게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기 중심적인 자아의식의 잘못된 생각이 우리들의 윤회를 성립시키는 근본이 되고 있다.
아함카라로부터 사트바의 힘이 지배적이 되면 아함카라는 내적감각 기관인 의근(意根, manas)과 눈, 귀, 코, 혀, 피부의 오지근(五智根, jnana-indriya) 그리고 발성, 손, 발, 배설, 생식의 오작근(五作根, karma-indriya)을 산출한다. 아함카라로부터 타마스의 힘이 지배적이 되면 아함카라는 오유(五唯, tanmatra), 즉 성(聲)ㆍ촉(觸)ㆍ색(色)ㆍ미(味)ㆍ향(香)의 본질을 이루는 미세한 물질이 방출된다. 이 오유의 배합에 의해서 오대(五大, bhuta)가 생긴다. 즉 성ㆍ촉ㆍ색ㆍ미ㆍ향의 본질로부터 공(空), 풍(風), 화(火), 수(水), 지(地)가 생긴다. 그러므로 프라크리티에서 붓디, 아함카라, 11근(根), 오유, 오대 그리고 푸루샤를 합쳐 이것을 25제(諦)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전개의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인간의 감각, 지각, 사고 등의 모든 작용은 정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속한다. 이상과 같이 순수정신인 푸루샤와 피전개물은 그 본질을 달리한다. 순수정신은 활동하지 않으며 지혜 그 자체인데 비해, 근본물질로부터 전개된 피전개물은 세 개의 구성요소, 즉 구나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적이며 활동성은 있지만 의식은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붓디 등이 순수정신과 결합되어 있으므로 마치 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선을 행하려는 의지 활동도 순수정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나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즉 활동은 구나에 속하며 순수정신은 전혀 활동하지 않지만, 순수정신은 구나와의 결합에 의해 마치 활동의 주체인 듯이 보인다.
순수정신이 근본물질과 결합하는 것은 근본물질을 관조하기 위한 것이며, 근본물질이 순수정신과 결합하는 것은 해탈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결합으로 인해서 순수정신은 본래의 순수청정성을 발휘할 수 없으며, 물질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고(苦)를 경험하고 윤회를 거듭한다.
붓디, 의근, 11근, 5유의 미세한 요소는 미세한 신체를 형성하고 사후에도 영속적으로 존속하며, 순수정신과 함께 윤회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고를 소멸시키기 위해서 이 미세신(微細身, linga)을 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미전개물과 피전개물을 순수정신으로부터 명확히 구별짓는 25원리(諦)에 대한 앎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순수정신은 본성상 해탈되어 있으므로 윤회의 주체는 아니다. 실제로는 근본물질이 스스로를 속박하거나 해탈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물질은 자성에 의해 스스로를 속박한다. 그러므로 근본물질이 순수정신의 목적이 달성되어야함을 앎으로서 해탈할 수 있다. 따라서 윤회하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행을 행하여 푸루샤의 그 본래적인 기능과 속성을 발현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2) 요가학파
요가 학파는 요가수행에 의하여 해탈에 도달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파이다. 이 학파의 근본 경전은 파탄잘리(Patanjali)의 요가수트라(Yoga-sutra)이다. 요가적인 수행의 전통은 상당히 오래되어 인더스 문명의 담당자로 소급되는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이론적 체계를 형성한 것은 400~45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요가의 역사적인 중요성은 그 철학적인 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발전된 실천의 방법, 즉 명상과 정신집중에 있는 것이다.
이 학파에는 불교의 영향도 엿보이지만 형이상학적 교리는 상키야 철학과 거의 같으며 실천과 수행의 면을 더욱 강조한다. 단지 최고신을 인정(수정된 유신론:Isvara는 요가 수행자를 도와 주는 영원히 순수한 영이라고 보고 거기에 의존하려고 함)하는 점이 다르나, 그것은 특수한 순수정신으로 규정되고 있을 따름이지 창조신은 아니다. 따라서 최고신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상키야학파의 이원론과 모순되는 존재는 아니다.
상키야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요가 철학도 우주의 궁극적 원리로서 순수정신과 근본정신을 인정하는 이원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요가 철학에서는 우리가 붓디의 상태를 푸루샤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라고 한다. 푸루샤는 본래 순수정신으로서 활동하지 않고 상주불변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대상에 따라 변하는 붓디의 비추어진 상태들과 혼동되기 때문에 푸루샤 자체가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든 것이다. 따라서 해탈을 위해서는 붓디와 푸루샤를 분명히 구별하는 분별지(viveka-jnana)가 필요하다.
요가 철학에서는 붓디와 아함카라 그리고 마나스를 포함하여 마음(citta)이라고 한다. 마음은 전생에서 경험한 흔적이나 인상 또는 업을 지는 윤회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업의 흔적을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작용이 그쳐야만 해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가 철학에 의하면 마음은 다섯 가지의 번뇌에 의해 침투되어 마음에 축적되어 있다. 이들 다섯 가지 무명(無明, avidya), 자기 의식(asmita), 탐욕(raga), 증오(dvesa), 생존욕(abhinivesa)이다. 이 중에서 무명은 가장 근본적인 번뇌이며, 다른 번뇌의 근원이다. 또한 업의 축적과 이에 상응하는 업보의 근원이다.
요가 철학은 우리의 마음이 올바른 지식(pramana), 그릇된 지식(viparyaya), 개념상의 지식(vikalpa), 수면(nidra), 기억(smrti)의 다섯 가지 작용을 한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과 이미 축적되어 있는 번뇌를 제거하기 위하여 요가철학은 8가지 단계로 된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제계(制戒, yama), 내제(內制, niyama), 좌법(坐法, asana), 조식(調息, pranayama), 제감(制感, pratyahara), 집지(執持, 옴굼), 선정(禪定, dhyana), 삼매(三昧, samadhi)이다. 이 중에서 처음의 5단계는 외적 단계이고, 나머지 3단계를 위한 준비 단계이다. 그리고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마음작용이 그친 삼매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때 푸루샤는 관조자로서 그 자체 가운데에 안주된다.
요가 철학은 무엇보다도 자아가 세속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워지는 체험을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3) 바이셰슈카학파
바이셰슈카 학파는 카나다(Kanada)라는 인물의 저서로 전해지고 있는 승론경(勝論經, Vaisesika-sutra)을 근본 경전으로 한다. 이 학파는 성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이란 추론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일종일 뿐 독립적 지식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언어 상주론을 부정하고 경험을 통하여 일어나는 순수한 지식만을 실체로 인정하고 있다.
이 학파는 실체(dravya), 성질(guna), 운동(karman), 보편(samanya), 특수(visesa), 내속(內屬, samavaya)이라는 여섯 가지 원리를 세워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의 구성을 밝히고 있다.
실체는 성질이나 행위의 근저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며, 어떤 물건들의 질료적 원인이 되는 것이다. 실체에는 지(地, prthivi), 수(水,ap), 화(火, agni), 풍(風, vayu), 공(空, akasa), 시간(時間, kala), 공간(空間, dis), 의근(意根, manas), 자아(自我, atman)의 9가지가 있다. 여기서 지ㆍ수ㆍ화ㆍ풍의 4원소는 각각 성질이 다른 미세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각 원자의 본래 성질(guna)대로 지의 원자는 향(香), 수의 원자는 미(味)와 냉(冷), 황의 원자는 색(色)과 열(熱), 풍의 원자는 가촉성(可觸性)을 갖는다. 이들 원자들은 무수하고 단순미세하여 세분할 수 없으며, 생성ㆍ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존재들이다.
반면에 이들로 구성된 복합체인 지ㆍ수ㆍ화ㆍ풍은 생성ㆍ소멸하므로 영원하지 못하다. 복합체로서의 지는 향ㆍ미ㆍ색ㆍ가촉성을 가지며, 수는 미ㆍ색ㆍ가촉성ㆍ유동성ㆍ점착성을 가진다. 화는 색과 가촉성을, 풍은 가촉성만을 가진다. 이와 같이 원자가 복합체를 형성하므로 모든 우주의 물질세계가 성립되지만, 이 결합운동을 최초로 일으키는 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이다.
공은 모든 것에 존재운동의 장소를 제공하는 유일 ㆍ 상주하며 편재한 실체이다. 그 특유의 성질은 소리이지만, 운동을 갖지 않는 실체이다. 시간은 인식주관 중에 전후ㆍ동시ㆍ지속의 관념을 성립시키는 근본의 것으로서의 실체이며 운동성과 특유의 성질은 없다. 공간은 인식주관에 전후ㆍ원근 그리고 사방의 관념을 일으키게 하는 시초의 것이다.
아트만의 존재에 대해서는 증거를 통해 밝힐 수 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비교해 볼 때, 살았다는 것은 호흡 ㆍ 생명 ㆍ 의지의 작용을 가졌다는 뜻이다. 사고기관의 운동, 욕망, 혐오, 의지, 기쁨, 슬픔 등이 아트만의 실체로서 이는 인간의 지각작용이나 삶의 본질에 아트만이 내재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마나스는 사물을 지각해서 인식을 성립하게 한다. 마나스는 물질적 실체로서 감각기관이 대상에 대립하는 경우 그 대상에 대한 인상을 지각하는 작용을 한다.
다음 원리는 보편과 특수이다. 보편은 객관적으로 사물에 내재하는 실재로서, 최고의 보편은 유성(有性, satta)이라는 성질을 갖는다. 보편이 사물의 공통성이라는 관념을 갖는데 반하여 특수는 이와 상대되는 개념이다. 즉 극한의 특수는 원자라는 개념을 갖는다.
이 학파에 의하면 베다 성전은 일단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다에 따라서 행동한다면 단지 과보(果報)로서 생천(生天)할 뿐이고, 윤회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다. 해탈을 위해서는 6가지 원리의 연구와 요가를 실제로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트만이 어둠에 가려 있는 것은 마나스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마나스를 제어하는 요가행위를 실천의 중심으로 삼았다. 요가에 의하여 전생으로부터의 남아 있는 힘을 소멸시키면 해탈이 실현된다. 그 경지에 있어서는 아트만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한 실체로 존재한다.
4) 니야야학파
다른 학파들이 우주를 하나의 전체로 이해하려는 명상적 수행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반해, 이 니야야 학파는 바이셰슈카 학파와 마찬가지로 현상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표방하였다.
논리학의 연구는 고대 인도에서도 행해졌고, 의학서인 차라카 상히타(Caraka-samhita_ '가운데에도 논리학을 설명하는 구절이 있으며, 방편심론(方便心論) 같은 불교관련 저술도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명(因明)이라고 부른다.
인도 철학의 여러 학파 가운데 논리학에 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집대성시킨 학파가 니야야 학파이다. ‘니야야’라는 말은 원래 ‘이론(理論)’, ‘정리(正理)’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부터 논리학적 연구의 일반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합리적인 이론과 현상분석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것이 니야야 학파의 목적이다.
이 학파의 창시자는 고우타마(Gautama)이며, 이 학파의 근본 경전은 니야야 수트라(Nyaya-sutra, 正理經)이다. 이것을 바트스야야나(Vatsyayana)는 상세한 주석서를 저술하여 그 취지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니야야 학파의 교설 가운데 형이상학에 관한 부분은 대체로 바이셰슈카 학파와 유사하나 약간의 다른 점도 있다. 니야야 학파에서는 인식수단 ㆍ 인식대상 ㆍ 의혹 ㆍ 동기 ㆍ 실례 ㆍ 정설 ㆍ 논증지 ㆍ 검증 ㆍ 결정 ㆍ 논의 ㆍ 논쟁 ㆍ 논결 ㆍ 그릇된 이유 ㆍ 궤변 ㆍ 그롯된 비난 ㆍ 패배의 입장 등에 대해 상세히 논하고 있다. 그 중에 형이상학과 해탈론 등을 포함하고 있으나, 넓은 의미의 지식론과 논리학을 주된 영역으로 한다. 또한 그 중에서도 니야야 학파가 특히 중시한 것은 인식수단과 논쟁의 방법이다. 따라서 니야야 학파의 인식론은 실재론적이고 실용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니야야 학파는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직접지각(直接知覺, pratyaksa), 추론(推論, anumana), 비교(比較, upamana), 증언(證言, sabda)등의 네 가지 인식수단을 들고 있다.
직접지각은 감관과 대상의 접촉에서 생기며 오류가 없는 지식이다. 이는 의심이나 오류 그리고 가설적 논파나 기억에 의해 얻은 타당치 못한 지식과 구별해야 한다. 추론은 직접지관에 근거하여 증인(證因: 예, 연기)에서 증인을 지니는 것(예, 불)을 추리하는 인식수단이다. 비교는 ㄱ과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ㄴ과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ㄱ을 아는 지식이다. 예를 들면 물소는 소와 비슷하다는 가르침을 듣고, 나중에 소와 유사한 동물을 보면 이것이 물소임을 아는 지식이다. 증언이란 말의 ‘sabda'란 ’소리‘라는 뜻이며, 니야야 학파의 인식론에서는 주로 믿을만한 사람의 말이나 증거의 의미를 이해하여 생기는 지식을 의미한다.
이들 인식수단에 의해 인식되는 인식대상은 아트만, 신체, 감각기관, 감각기관의 대상, 지각, 사고기관, 활동, 결점, 전생, 행위의 과보, 업, 해탈이다. 이 체계의 16항목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고 그릇된 지식을 제거하면, 괴로움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즉 해탈이 달성된다.
다른 인식의 방법으로서 추론이 있다. 의혹에서 동기ㆍ실례ㆍ정설 그리고 논증지(論證肢)에 이르는 내적 과정이다. 논증을 행하는 경우에는 우선 ‘의혹’이 있다. 다음은 그 의혹을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가 일어난다.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승인하는 ‘실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제시된 견해가 ‘정설’이다.
정설 중에는 충분한 증명이 부여되지 않은 것도 있으므로, 일정한 형식으로 이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논증지로서 오분작법(五分作法)이라는 논식으로 표시된다.
주장(pratijna, 宗)- 저 산에는 불이 났다.
이유(hetu, 因)- 그 곳에는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실례(udaharman, 329)- 어느 곳에건 연기가 있는 곳에는 모두 불이 있다.
예를 들면 굴뚝과 같다.
적용(upanaya, 合)-연기가 나는 굴뚝과 같이 저 산도 또한 이와 같다.
결론(nigamana, 結)-그러므로 저 산에는 불이 났다.
5) 미맘사 학파
미맘사 학파는 베다 성전 가운데 규정되어 있는 제사의례의 실행의 의의를 철학적으로 연구하여 통일적 해석을 가한 학파로 철학적인 성격은 약하다. 이 학파의 개조는 자이미니(Jaimini)이며, 근본경전은 미맘사 수트라(Mimamas-sutra)이다. 오래 전부터 베다성전의 해석학적ㆍ체계적 연구가 행해져 미맘사노경(老330)라고 불리었다. 베다 성전 가운데 제사부(祭事部, Karma-kanda)에 관한 이 학문을 제사미맘사(Karma-mimamsa) 또는 전(前)미맘사(Purva-mimarnsa)라고 부르며, 이 학문의 전통에서 미맘사 학파가 성립되었다.
한편 베다 성전의 지식부(知識部, Jnana-kanda)에 관한 미맘사는 브라마 미맘사(Brahma-mimamsa), 베단타 미맘사(Vedanta-mimamsa) 또는 후(後) 미맘사(Uttara-mimamsa)로 불리며, 베단타 학파로 이어져 전개되었다. 그래서 미맘사 학파는 베단타 학파와 자매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두 학파의 학문은 정통 브라만 철학의 총체가 되었다.
미맘사 학파는 다르마(dharma)의 연구 고찰이 그 목적이다. 그 다르마란 베다 성전에 규정되어 있는 제식의 실행이다. 인생의 목적은 해탈인데 해탈은 바로 제식의 실행인 것이다. 이러한 다르마의 정의는 다르마를 인식하는 방법이 베다 성전뿐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의 신념에 의하면 베다성전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고, 실제로 우주의 변화 ㆍ 생멸을 초월해서 영원히 실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다는 말(語)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베다의 상주ㆍ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상주론(語常主論)을 주장하여 바이셰슈카나 니야야 학파와 대립된다.
미맘사 학파에 의하면 말이라는 것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음성을 초월하여 실재하는 것이다. 음성은 무상한 것이지만 말에는 음성을 초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며, 음성과 의미가 결합될 때 말은 영구불변하게 된다고 한다. 즉 말과 의미의 결합관계는 영구 불변하며, 인식상 개인의 주관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올바른 관념내지 지식은 항구적으로 실재하는 실체이며, 선천적인 것이지 인간의 결험적이거나 후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베다의 언어내지 문장으로서 우리들 인간에게 항상 무슨 일인가를 명령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에 복종하는 것이 다르마이다. 미맘사 학파에서는 최고신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개인적 영혼(atman)을 인정한다.
미맘사 학파는 해탈에 이르는 방법으로 자아를 아는 지식과 의무적인 행위를 이해심 없이 순수하게 행하는 것을 강조한다. 즉 카르마요가(karma-yoga)의 실천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미맘사 학파는 베다의 교령(敎令) 및 제식행위에 대한 의무와 해탈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고 있다.
6) 베단타학파
베단타 학파는 후대 인도의 철학사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학파이다. 베다를 비롯해서 브라마나 우파니샤드 등 정통 인도 사상의 궁극적인 목적이자 끝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하여 ‘베단타(Vedanta)'라고 부른다.
베단타 학파와 관련된 대표적인 학자는 자이미니(Jaimini)와 바다라야나(Badarayana)이다. 자이미니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베다 성전 중에 제사부(祭事部)에 관한 것을 설하는 미맘사 학파의 개조가 되었고, 바다라야나는 지식부(知識部)에 관해 상세한 연구를 시도함으로써 베단타 학파의 개조가 되었다. 이 학파는 브라마 수트라(Brahma-sutra)의 성립에 의해 명확한 형태를 갖추고 인도 고전문화의 황금시대인 굽타왕조 시대에 사상계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바다라야나가 지은 경구들은 암송하기 좋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간결한 대신에 그 뜻이 극히 난해하고 모호하다. 그리하여 샹카라(Sankara), 라마누자(Ramanuja) 그리고 마드바(Madhva)에 의해 세 가지 서로 다른 베단타 철학이 생겨났다.
앞에서 이미 우파니샤드 철학이 후기에 이르러 상키야 철학의 이원론적으로 발전되었음을 보았다. 이에 반발하여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은 다원론적인 견해를 배척하고 다양한 현상 세계의 배후에 단 하나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실재가 있다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펼친다.여기서 궁극적인 실재이자 우파니샤드의 중심 논제인 브라만의 탐구가 베단타 학파의 주요 임무이다.
브라만(梵)은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 힘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물을 생성시킨 절대자이기도 하다. 브라만의 최초의 운동으로 허공이 생기하고, 허공에서 바람, 바람에서 불, 불에서 물, 물에서 땅이 생기한다. 이들 5원소가 창조된 경우 브라만은 이들 우너소 속에 머무르며 창조에 전념한다. 이리하여 자연 세계가 성립된다. 브라만은 내재자로서 피조물의 일체를 그 내부에서 지배한다. 현상 세계가 전개된 후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존속하다가는 다시 브라만으로 귀멸한다. 이 경우에는 창조의 경우와는 역의 순서로 모든 원소가 브라만으로 귀입한다. 모든 개아(個我, 아트만)도 브라만으로 귀입하여 완전한 휴지상태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우주의 창조 ㆍ 지속 ㆍ 귀멸은 무한히 반복된다. 이 가운데에서 개아는 처음부터 계속하여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개아는 브라만의 부분이다. 따라서 개아는 브라만과 다름과 동시에 다르지 않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 최고의 목적은 해탈이다. 해탈은 개아와 브라만의 합일이다. 제사 등의 행위를 실천하여도 아직 브라만에 대한 올바른 지혜를 얻지 못한 개아는 해탈할 수 없다. 그러나 브라만에 대한 올바른 지혜를 얻은 개아는 최후에는 만과 합일하여 해탈한다. 해탈한 개아는 브라만과 동일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별이 없어지게 된다고 한다.
가우다파다(Gaudapada)의 철저한 일원론적인 실재관을 이어받아 불이론적 베단타(Advaita Vedanta: 그의 일관된 주장은 不二一元論이다) 철학을 대성시킨 사람은 인도의 최대 철학자라고 일컫어지는 샹카라이다. 그는 불교의 나가르주나(龍樹)에 필적하는 브라만 철학의 대성자로 베단타 철학사상의 한 획을 그은 개혁자이다. 샹카라는 불교의 사상적 영향 하에 베다에 사상을 재해석하여 브라만교의 부흥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이미 쇠퇴해 가고 있던 불교계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4. 근대 인도사상
희망봉을 우회하는 인도 항로가 개척된 후 최초로 인도에 진출한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은 인도 서해안의 고아를 점령하여(1510) 이 곳을 근거지로 무역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여기에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가세하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영국의 인도 진출은 17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런던의 상인이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를 설립하고 황제의 특허와 보호를 받아 인도 무역을 독점하여 인도 경영의 주체로 발전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최초의 근거지 수라트를 개설한 후 봄베이, 마드라스, 캘커타에 식민지를 얻어 사업 근거지로 삼았다.
그 후 1858년에 세포이의 봉기가 진압되어 무굴제국의 멸망하고 인도가 영국 국왕의 직접 통치 하에 놓이기까지를 일반적으로 ‘동인도 회사 시대’라고 한다. 즉 그것은 무굴제국의 쇠퇴를 배경으로 하여 플라시 싸움을 축으로, 동인도 회사가 상권 확대로부터 식민지 확대로 크게 전환하면서 다음에 도래하는 인도제국 시대에의 기반을 확립해간 시기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인도에 있어 중세 봉건사회로부터 탈피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영국 식민지 지비에의 반발과 영국인에 의하여 도입된 유럽 문화의 영향을 촉진제로 하여 근대적인 민족주의에 눈 뜨기 시작한 시기인 것이다.
영국 정부는 행정기구 팽창에 따라 영어를 할 수 있는 하급관리를 현지에서 많이 채용할 필요가 생겼다. 정부의 법률 고문인 맥콜리(Thomas B. Macaulay)는 “우리 영국인과 우리가 지배하는 민중과의 사이에서 통역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급, 즉 혈통과 피부색은 인도인이지만 기호 ㆍ 견해 ㆍ 도덕심 ㆍ지성에 있어서는 영국인이라 할 수 있는 계급을 육성하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영국 지배자들은 또한 영어교육을 도입하여 인도의 젊은층에게 서양 문화나 과학의 우월성을 알리고 그들로써 영국 왕실에 충실한 ‘관리 부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하여 정부는 학교를 설립하고 대학을 개설하여 서양의 철학, 정치, 법률, 문학, 역사 등을 영어로 가르쳤다. 대학의 설치는 보다 폭넓은 계층에까지 개방되었다. 세포이 봉기 후 10여 년까지는 맥콜 리가 생각한 대로 영어교육은 인도인의 민족의식의 싹이 돋으면 걸러내고, 대학은 ‘관리부대’의 양성소로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인도의 젊은이들은 영어를 통해 서구의 자유사상에 눈을 뜨고, 그들 사이에서 자유, 평등, 박애, 민족자결 등의 말이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영국인들에 의해 도입된 영어를 통한 근대식 교육은 비록 대다수의 인도인들에게 혜택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 교육을 받은 소수의 인도의 지성인에게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어를 통한 근대적인 교육은 인도인들에게 합리적인 사고와 새로운 사회적 원리 및 가치관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영어교육은 서양의 합리주의사상과 정치적 자유에 눈뜬 새로운 중산 지식계급을 도시를 중심으로 생성시켜 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서양 문명의 예찬가였지만 동시에 자국의 현실로 눈을 돌려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낡은 종교적 관습이나 사회제도에 대한 엄중한 비판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각성된 지식계층으로부터 곧 영국의 지배에 의문을 품고 자유를 외치는 일단의 애국자가 나타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었다.
영어와 더불어 영국의 통치상의 편의를 위해 도입된 철도나 전신, 근대적인 우편제도, 인쇄ㆍ출판의 발달 등은 오랫동안 각 지방에 고립되어 있던 지식인들을 지리적 ㆍ 사상적으로 접근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지금까지는 서로 낯설기만 했던 인도인 사이에 언어나 지방의식의 벽을 뛰어 넘어 한 자리에 모여 영어를 통하여 인도라는 공통의 기반에 서서 그들의 고심과 공통 관심사를 함께 논의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전반에는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서구식 근대 교육을 받은 새로운 지식인들 사이에는 서양의 사상과 문물에 직접 접하므로 민족자각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과거 인도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키고 인도사회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종교적ㆍ사회적 개혁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종교 ㆍ 사회개혁운동은 캘커타를 중심으로 하는 벵갈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 람 모한 로이
인도 르네상스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람 모한 로이(Ram Mohan Roy ; 1772~1833)는 벵갈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언어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으며, 힌두교를 서양의 근대 합리주의와 합치하는 것으로 개혁하려고 1828년에 브라마 사마즈(Brahma Samaj)라고 하는 단체를 설립하였다.
그는 당시의 힌두교를 근대화하기 위해 우상숭배로 오염되지 않은 우파니샤드의 일신교적 브라흐만 사상을 신봉할 것을 주장했다. 람모한 로이는 모든 종교는 ‘우주의 창조자이자, 보지자(保持者)인 영원 불변의 존재자’를 여러 가지 형식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인종이나 종교, 카스트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열어 놓는 교회를 창립할 것을 계획하였다.
람 모한 로이의 신조의 기초가 된 것은, 모든 종교의 저변에 깔려 있는 진리는 ‘우주의 창조자이자, 주관자이며, 영원하고 신비하며 불변하는 존재’인 신의 통일성, 인격, 영성(靈性)이라고 하는 신념이었다. 그리하여 람 모한 로이는 어떤 형태의 다신론(polytheism)과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힌두교 의식에서 이러한 요소를 없애고자 하였다. 즉 힌두교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종교적 미명 하에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일체의 비인도적 악습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러한 종교적 정신부흥과 사회개혁이 표리일체를 이룬 것이 19세기 힌두 종교개혁 운동의 공통의 특징이다.
그는 힌두교의 우상숭배를 비난하는 한편, 동물 공희, 카스트 제도나 유아결혼, 사티(336)의 폐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821년에 인도인에 의한 벵갈어 신문을 최초로 발행하여 대중의 정치 ㆍ 사회 문제에 관한 각성에 힘썼으며, 동시에 영어교육의 보급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는 등 다각적인 사회개혁을 주창하였다. 특히 사티 폐지운동에 있어서는 10년에 걸친 정통 힌두와의 논쟁과 정부와의 탄원 끝에 영국 총독의 승인을 얻어 이를 금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브라마 사마즈는 후에 데벤드라나트 타고르(Devendranath Tagore)와 케샤브 찬드라 센(Keshab Chandra Sen)에 의해서 계승되어 크게 발전하였다.
2) 다야난다 사라스와티
다야난다 사라스와티(Dayananda Saravati; 1824~1883)는 브라흐만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베다를 배웠다. 그는 수도자 출신으로 베다와 힌두교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베다야말로 모든 지식의 근원이라고 하여 종교의 순화를 제창했다. 그리하여 ‘베다로 돌아가자’고 권유하면서 힌두교도의 민족 감정에 강하게 호소하였다. 그는 베다의 종교가 모든 종교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순수한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베다는 미신과 우상숭배, 화신(化身, avatar) 개념 그리고 여러 잘못된 관념에 물들지 않았고 카스트 제도가 지닌 잘못된 양상과도 무관한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베다는 하나의 신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것으로서 다신론이나 범신론 따위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또한 베다는 과거를 알 수 있는 유일하게 진실된 열쇠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상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도 예견하고 있다고 하였다.
개혁면에서는 우상숭배, 성지순례나 카스트 제도를 배척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호소했다. 한편 그의 가르침은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비난하는 성향이 강해 종교적 대립을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1875년에 설립한 아리아 사마즈(Arya Samaj)는 인도인에게 고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교육적인 면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19세기의 인도의 개혁운동에 가장 활발하게 참여한 단체는 다야난다 사라스와티가 1875년에 창립한 바로 이 아리아 사마즈였다. 이들 브라마 사마즈와 아리아 사마즈의 조류는 후에 인도 민족주의라는 흐름 속에 합류됩니다. 브라마 사마즈는 인도의 많은 지도자들의 마음을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새로운 이념에 동조하도록 하였으며, 아리아사마즈는 인도의 정통 힌두 복고주의자에게 영향을 주어 여기에 비로소 인도에 진정한 민족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그 운동에 참여한 자의 영역을 넘어서서 인도사회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3) 라마 크리슈나
라마 크리슈나(Rama Krsna)는 벵갈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칼리(Kali)여신 숭배자였으며, 그 여신이 우주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마 크리슈나는 비상한 정신집중과 신비체험에 의하여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진리를 자신 속에 체득하고 세계의 종교는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고 가르쳤다. 그는 요기(yo-gi)로서 명상도 해 보았고, 헌신자(bhakta)로서 예배도 해 보았으며, 자이나교, 불교, 이슬람교 그리고 샥티즘(Saktism)을 직접 실천해 보았다. 그리고는 모든 종교가 신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일 뿐이며 모든 피조물이 각자 형태를 달리하는 신이라고 믿었다. 그의 가르침은 그의 위대한 제자 비베카난다에 의하여 복음화되었다.
비베카난다에 의하면 그는 평소에는 모든 사람을 신으로 받들고 자신은 그들의 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신과의 합일된 의식에 들게되면 그는 전지전능한 자가 되어 곧 해탈자이자 신 자체였다고 한다. 그의 중심사상은 종교적 교의를 넘어서 종교의 본질에 들어가 절대자를 직접 실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이 이 세상 만물에 존재하고 있으며, 만물이 바로 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신의 은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러한 깨달음에 의해서 우리는 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삼매에 들어감으로써 모든 것이 정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하여 절대자 속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되었다. 그 곳에서 그는 자유자재한 종교의 진실을 알았다고 한다.
라마크리슈나는 이러한 세계에 들어가는 길로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는 신에 대한 연구나 논의로서가 아니라 신을 진실로 마음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신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순결이 필요하며 그것을 방해하는 돈과 여자는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자아의식을 없애고 진실로 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마크리슈나의 종교체험은 지극히 순수한 것이었으며, 어떤 종교적인 교의에도 구속되지 않고 종교의 순수한 본성을 체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종교체험론은 지나치게 힌두적인 요소가 많고, 다소 기독교적인 면도 있다. 그는 신비체험을 통해서 사랑과 봉사를 강조하였으나, 그에게는 근대적인 사유가 결여되어 있었다.
4) 비베카난다
비베카난다(Vivekananada;1863~1902)는 라마크리슈나의 후계자로 라마크리슈나의 정신을 풍부한 근대적인 학문을 통해서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그의 사상을 천명하였다. 그는 훌륭한 웅변가이자 베단타의 열렬한 옹호자였으며 라마크리슈나 운동을 일으켜 전세계로 전파하였다.
비베카난다는 크샤트리아의 유복한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항상 출가자의 생활을 동경하였다고 한다. 그는 1885년에 스승을 잃고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전 인도를 유랑하면서 종교의 최고 정신의 부활과 인도 국민의 곤궁을 구제하는 일이 자신의 의무임을 깨달았다. 그는 엄격한 수행을 통하여 위대한 정신력을 함양하고, 동서의 폭넓은 지식과 라마크리슈나의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독특한 견해와 경험을 갖추었다. 그는 1897년에 라마크리슈나 미션(Ramakrishna Mission)을 창립하여 활발한 포교, 교육, 구제사업을 시작하였다. 그의 인도 독립 운동에의 공헌은 열렬한 애국심을 갖고 외국지배의 압제 아래서 짓눌린 국민의 마음에 민족의 긍지와 자각을 불러일으킨 점이다.
비베카난다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종교 회의’에 힌두교의 대변인으로 참석하여 세계 종교는 모두 절대적 진리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호간에 협조해야 한다며 종교간의 일치와 협조를 주장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구미 각국을 돌며 순회강연을 하기고 하였다. 귀국 후에는 캘커타 교외에 라마크리슈나 미션의 본부를 설치하고 사회 사업과 종교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지혜와 신애 그리고 실천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체험에서 나온 견해를 밝히고 있다. 지혜와 신애와 실천이 요가의 체험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밝혀지고 있는 것이 그의 사상의 특징이다.
그는 인도의 위대한 정신을 사랑하고 실천한 사람으로 특히 불타를 숭배했으며,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의 정신에 의해서 인도의 전통적인 신비주의 사상을 합리적이고 근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던 사람이다.
5) 아우로빈도 고슈
아우로빈도 고슈(Aurobindo Ghosh;1872~1950)는 인도의 정신적인 전통을 근대적인 의미로 승화시킨 뛰어난 철학자이자 요가 실천자였으며, 애국주의적 정치 지도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캘커타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인도 독립운동에 전념하면서 문예활동과 요가수행에도 몰두하였다. 그는 벵갈 분할문제와 관련하여 반영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발 강가다르 틸락과 함께 인도 국민회의의 파격파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08년 체포되고, 그 다음 해 출옥 후에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1910년 폰디체리에 은거하며 수도원을 건설하였고, 바로다에 머무르면서 요가의 수행과 지도 그리고 저작에 전념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신성한 생활(The Life Divine)'이 있으며, 1906년에는 ’아우로빈도의 종합철학(The Integral Philosophy of sir Aurobindo-A Commemoration Symposium)'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집필되어 그의 철학세계가 종합적으로 규명되었다.
근대 인도가 낳은 최대의 사상가로 불리는 아우로빈도의 사상적 입장은 일원론적 베단타의 전통을 계승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인도의 어떠한 특정의 전통적 사상을 직접 따르지는 않고 있다. 그는 서양의 다양한 사상을 배경으로 삼아, 요가를 수행하고 인도의 전통적 사상을 흡수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였다.
그의 요가는 신비적인 기적이나 추상적인 원리에 의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체험에 의한 실천적인 요가로서 우리는 흔히 이를 ‘통일적 요가(integral yoga)'라고 한다. 그의 요가는 인간 존재의 일체의 모든 힘을 실재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음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이 실재를 자기 안에서 체험하고 이에 근거하여 자기 존재가 일체 변질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요가의 모든 힘을 종합해서 그것을 신성한 힘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우리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베단타 철학의 새로운 해석으로 출발된 아우로빈도의 철학은 베단타 철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서구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샹카라의 세계 부정적인 브라만 가현설(假現設) 대신에 브라만 전변설(轉變設)의 입장에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영적 해석을 시도하였다.
6) 마하트마 간디
인도 독립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는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는 구자라트(Gujarat) 주에서 상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래 비슈누파의 힌두교도였으나, 자이나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18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유학하면서 신약성서를 접하고 교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 곳에서 새로운 생활에 접한 간디는 오히려 인도인으로서 깊은 자각을 느꼈다. 그는 1891년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고 귀국한다. 3년 후에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인도인 회사의 고문 변호사로서 인도인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남아프리카에 머물게 되었다. 27세 때 다시 인도에 돌아와서 바네르지(Banerjea), 라나데(Ranade), 고칼레(Gokhale), 틸락(Tilak) 등을 만났는데, 특히 고칼레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다.
간디는 틸락이 죽은 뒤에 국민회의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전 인도에서 반영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전인도적 국민 운동의 선두에 서서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영국제품 불매 및 국산품 애용 운동 등의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 간디는 힌두 ㆍ 이슬람의 융합을 반대하는 힌두교도 청년의 흉탄에 맞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여전히 하나의 성자로 까지 추앙받고 있다.
간디는 1914년부터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인도 민족을 위해서 활동하였는데, 그의 활동은 진리 추구(satyagraha)에 근거하였다. ‘satya'는 ’sat (有)‘의 파행어로 ’진리‘를 뜻하며, ’agraha'는 ‘추구’, ‘파지(把持)’라는 뜻으로 실천적 인식 또는 자각을 뜻한다. 종교와 철학과 논리가 하나가 된 그의 인생활동은 바로 사트야그라하에서 나온 것이다.
사트야그라하의 내용적 항목으로는 진실(satya), 불상생(ahimsa)에서 나온 비폭력(non-violence) 또는 비협력(non-cooperation), 순결(brah-macarya), 무소유(abhava)이다.
진실이란 행위(業), 언어(口), 사상(意)에서의 참된 것을 말하며, 이는 일상적 진실 혹은 성실을 뜻하는 것이다. 진실이란 진리와도 통하는 것이다. 간디는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진리에 맞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간디에 있어서 불살생은 비폭력, 비협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간디의 사상 중에서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비폭력에 의한 무저항주의이다. 간디가 신조로 삼은 비폭력주의는 인간의 상호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그의 비폭력주의는 소극적이고 무력한 투쟁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완결하려는 휴머니즘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순결이란 자제 또는 자기정화라고 할 수 있다. 순결은 진리를 탐구하도록 올바른 행위를 부여하여 진리 추구가 실현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결의 완전한 실천은 곧 진리의 실현인 것이다. 간디는 순결의 한 방법으로 단식을 자주했다.
진리를 탐구하려는 자는 장래를 위해 아무것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을 만들고, 그 이상의 것은 만들지 않았으므로 인간이 필요한 것만 소유한다면 누구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주창한 비폭력은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를 진리의 실천가로 만든 것은 바가바드기타의 영향이었다. 이와 같이 간디는 진리라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인도의 독립과 발전을 도모하였으며, 그의 정치활동은 종교를 현실세계에 구현시키려는 바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위대한 사상가로 숭앙되고 있다.
7) 타고르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1861~1941)는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며, 탁월한 예술가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데벤드라나트 타고르의 아들로 벵갈의 훌륭한 교양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서부터 남다른 시적 재능을 발휘했으며, 베이슈나파의 ‘체이탄야’ 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1913년에는 시집 ‘기탄잘리(Gitanjali)'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21년에는 샨티니케탄(Santiniketan)에 비시바 바라티(Visva Bharati) 대학을 세워 세계 동포애와 문화교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여러 나라를 순방하면서 물질만능주의의 폐해를 강조하였고, 또한 전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일깨워 주었다.
타고르는 초청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던 중에, 과감하게도 다음의 짧은 시 한 수로 암울하던 시기의 한국인에게 커다란 희망과 광명을 던져 주었다.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of the East.
일즉이 아세아(亞細亞)의 황금시기에
빛나든 등촉(燈燭)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김 양식 譯)
타고르의 시상에 바탕이 되는 사상은 만물이 일체라는 사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세계도 절대자 브라만의 창조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현상세계의 모습은 신이 창조한 것이므로, 거기에는 아름다움의 조화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같은 생명을 가졌다. 사물은 본질적으로 상이한 것이 아니다. 단지 서로 다르게 드러나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모든 종교도 통일된 영원한 하나의 생명관 속에서 조화된다.
절대자 브라만은 비인격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창조를 이행하는 경우 최고의 인격으로 불려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브라만은 비인격자가 아니고 ‘너’라고 하는 2인칭으로 불려지는 것이며, 살아서 우리 앞에 보이는 인격신이다.
그의 시각으로는 이 세상에는 하찮은 존재란 없으며, 모든 현상은 신의 대조화 속에서 아름다운 통일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는 진리다. 진리는 미다.”라고 하였다.
통일된 조화 속에는 창조가 있다. 예술의 창조도 마찬가지이다. 타고르는 통일된 창조의 조화 속에서 미를 발견하여, 이것이 이 세계의 참된 모습이라고 하였다. 타고르는 이러한 조화된 통일창조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이 세계와 내가 완전히 하나로 합일되어야 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완성된 사람은 만법(萬法)에 귀입한다고 하였다. 이는 우파니샤드 철학의 영향이다. 우파니샤드는 타고르의 철학의 기본을 이루고 또 문학예술론의 근본이 되고 있다. 타고르는 우파니샤드를 천재적인 직관과 예지로 소화하여 자신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그는 분명히 베단타의 일원론 사상의 기조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세계를 단지 환상(maya)으로 보지는 않는다. 신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며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힘을 인식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타고르는 이러한 세계를 시의 세계로 승화시켜 기탄잘리에서는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신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타고르의 예술세계는 본질에서부터 깊은 철학과 종교의 세계의 샘을 지니고 있다.
8) 라다크리슈난
라다크리슈난(Sarvepalli Radhakrishna;1888~1975)은 남인도의 마드라스 근교의 브라만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캘커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 등의 철학과 교수와 베나레스 힌두 대학의 부총장 그리고 유네스코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독립 후 소련주재 인도대사를 거쳐 부통령과 대통령에 선임되었다. 그는 「인도철학(Indian Philosophy」을 비롯하여 수많은 저서와 편저를 남기고 있다.
그의 철학적 사상의 핵심은 힌두교의 범신론적 우주관과 성선론적 인생관 그리고 세계동포주의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도의 철학과 종교사상을 연구하여 서양에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전제 아래 종교간의 이해와 대화를 촉구하였다.
라다크리슈난은 항상 서양사상과 비교하면서 인도철학의 규명에 진력하였다. 그는 사상이나 종교의 대비를 통해서 힌두교를 세계사상의 무대에 등장시켜 세계의 일체화를 도모하였다. 라다크리슈난은 수많은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일관성 있게 종교적 독단주의와 세속적 물질주의 양극을 비판하면서 온 인류의 영적생활의 공통성과 통일성을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교리나 의식 등 종교의 외적 표현은 서로 다를지라도 내적인 종교적 체험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종교의 핵심은 영적인 체험에 있는 것이지 외적인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동서의 상호 이해를 위해서 동서사상의 비교 연구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서양사상과 인도의 전통사상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비교 철학의 연구를 촉진시켰다. 라다크리슈난은 동서사상을 비교하여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세계 의식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과제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종합적이고 분석적이며 실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