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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7일(월)
* 시작 기도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주님...
사람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물질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은 육신과 물질보다 내면과 영혼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이처럼 마음이 부패하면 만물이 아무리 많아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 하루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오늘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오늘은 IMTC(인도차이나선교훈련센타)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입학식에서 기도순서를 맡았습니다.
학생들을 축복하며 이곳 선교훈련센타가 주님의 뜻을 잘 알고 배우는 곳이 되게 하옵소서.
환경이 열악할지라도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넉넉히 그런 환경을 지배할 수 있는 선생과 학생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1:20-46
제목 : 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20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1 르우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46,500명이었더라.
22 시므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3 시므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59,300명이었더라.
24 갓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5 갓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45,650명이었더라.
26 유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7 유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74,600명이었더라.
28 잇사갈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9 잇사갈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54,400명이었더라.
30 스불론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1 스불론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57,400명이었더라.
32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3 에브라임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40,500명이었더라.
34 므낫세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5 므낫세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32,200명이었더라.
36 베냐민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7 베냐민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35,400명이었더라.
38 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9 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62,700명이었더라.
40 아셀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41 아셀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41,500명이었더라.
42 납달리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43 납달리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53,400명이었더라.
44 이 계수함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603,550명이었더라.
* 나의 묵상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 중에서 싸움에 나갈 만한 20세 이상 모든 남자의 숫자를 세어 기록한 것이다.
그 총수가 603,550명이다.
이들 중 가장 숫자가 많은 지파는 유다 지파로 74,600명이며 가장 적은 지파는 므낫세 지파로 32,200명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파들 중에서 38-39절에 나오는 단 지파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 단 지파의 수는 62,700명으로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숫적으로만 본다면 유다 지파 다음으로 많은 지파였다.
그러나 단 지파는 훗날 이스라엘 12지파의 반열에서 사라진 지파가 되고 만다.
(계 7:5-8)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이 지파와 숫자들은 마지막 때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지파의 이름에 단 지파는 사라지고 없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안에 제대로 머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단 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 자기 기업을 떠나 방황하며 우상 숭배를 일삼았던 것이다(삿 18장).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단 지파는 유다와 요셉 지파 사이 곧 블레셋과 가까운 곳을 분배받았다.
그런데 이들 단 지파는 하나님께서 정복하라고 한 그 땅을 정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에 있는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곳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보다 좀 쉬운 곳을 찾기로 한 것이다.
삿 18: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삿 18:1)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말은 비록 사람 왕은 없었으나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이 왕으로써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삿 17: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이 말이 가슴을 치며 아프게 한다.
이스라엘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다.
이들 단 지파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여호수아로부터 이미 기업을 분배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정복하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의 강함을 보고 두려워하여 감히 그들을 향해 나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분배 받은 땅보다 좀 더 쉬운 땅을 찾고자 정탐꾼을 보내서 찾아보게 하였다.
땅을 돌아본 정탐꾼들은 이미 분배 받았던 땅인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와서 그 형제들에게 말하고 가나안 땅의 최북단인 라이스가 살기에 너무 평온하고 좋은 땅이어서 그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600명을 보내어 그곳을 정복하도록 하였다.
한편 이들이 라이스로 가는 도중에 에브라임에 속한 미가의 집에 들렀다.
그들은 그 집에 있는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새겨 만든 신상을 빼앗고 그 집에 개인적으로 고용된 레위사람 제사장을 빼앗아 라이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단 자손은 그곳에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그곳 이름을 단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들 단 자손은 자기들을 위하여 새긴 신상을 세웠고 하나님의 성소가 실로에 있을 때까지 미가가 만든 새긴 우상을 음란하게 섬겼다.
여호수아가 분배해 준 땅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다.
그들의 눈에 보기에 아무리 강한 가나안 원주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복하라고 하셨기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다.
그런데 그들은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오직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땅을 받지 못하고 새로운 땅을 찾고자 방황했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신앙의 방황은 곧 인생의 방황이 되며 그 결과 마지막 최종적인 144,000명의 명단에서 제외되는 수치를 당하고 만 것이다.
아무리 신앙이 좋더라도 순간순간 넘어지고 죄 가운데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속히 깨닫고 다시 돌아와야 한다.
믿는 자들이 가야 할 곳은 오직 아버지의 품이기 때문이다.
야곱은 아버지가 계시는 브엘세바를 떠나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창 28:15-16)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약속을 받고 벧엘을 출발한 야곱은 20년 동안 밧단 아람의 삼촌집에서 일을 하고 나온다.
그가 와야 할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아버지의 품인 벧엘이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이 아니라 세겜에 들어가 정착한다.
어느 날 하루는 그의 딸 디나가 세겜의 여자들을 구경하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갔던 야곱은 세겜 사람들의 정착 생활에 대한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러 살려고 하였다.
자기의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빨리 깨닫고 돌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디나의 강간당함을 통하여 야곱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집으로 가야 할 야곱이 세상의 집인 세겜으로 빠져나갈 때 하나님은 그를 살리기 위하여 징계를 하신다.
이는 고통이지만 이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마음에 새기게 된 것이다.
야곱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나님의 심판은 고통이지만 그래서 그 심판은 은혜요 선물이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스라엘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왕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삶을 살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뜻과 내 맘대로 자행자지하며 살았던 자이다.
그저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잘 되는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을 다해 믿었으나 그것은 단 지파가 드라빔이나 새긴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아버지의 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을 죽어서 가는 천국쯤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나는 이 땅에서 나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것도 내가 믿는 예수가 나를 도와서 내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입술로는 주님의 뜻을 운운하였지만, 그것은 립써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 열매로 인하여 내가 영광을 다 받았고, 좋은 성과나 열매를 내지 못하면 그것으로 곤고해 하면서 마음이 괴로워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철저히 나의 인생을 산 것이다.
그로 인하여 신앙의 방황은 단 지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계속 되었다.
전도사나 강도사 그리고 부목사로 사역을 할 때 다른 동기생들보다 사례를 많이 받는 것으로 인하여 어깨를 으쓱했던 때도 있었다.
정말이지 나라는 인간은 철저히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주장의지로 점철된 인간이었다.
주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허울 뿐, 그 포장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나, 나, 나밖에 없었다.
그런 나는 온갖 무화과 옷으로 치장하여 남들 보기에 보란 듯 하고, 하는 모든 일마다 성공해야 하며 풍요롭고 윤택하게 살아야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줄 알았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땅에 속한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세겜으로 빠져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던 야곱과 똑같은 삶을 살았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여 그동안 나의 모든 가치관을 깨트려 버렸다.
땅에 속한 존재물이 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던 나를 바꿔버린 것이다.
이제는 존재물에 내 마음을 두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살아도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이 기쁨을 놓칠 수가 없다.
오늘도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내가 묵상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의가 되지 않도록 나를 다스려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말씀으로 주님과의 교제가 내 안에 주의 영광으로 임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감사와 은혜로 하루를 사는 것 그것이 축복이요 은혜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복음을 알고 말씀묵상으로 주님과 교제하면서도 순간순간 나의 의를 드러내려고 했던 이 종을 심판하옵소서.
주의 심판은 옳습니다.
그 심판이 나를 살리오니 오늘도 겸허히 주님의 말씀 앞에 서 있나이다.
내가 온전히 주님의 품안에 거하기 원하오니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품어주옵소서.
주께서 아버지의 품에 거하여 함께 연합하신 것처럼 나 또한 주님의 품에서 말씀으로 연합하기 원하오니 이 종을 긍휼히 여기소서.
순간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세겜으로 빠질 때 그런 나를 내버려두지 마시고 주의 심판을 통하여 다시 깨닫고 속히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나를 채찍질 하소서.
그 징계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겠나이다.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복임을 아오니 새 언약 백성으로써 주님의 언약 안에 온전히 머물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원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