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우체부※
지원이네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이장님도 아니다.
지원이네 아버지도 아니고, 마을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지원이네 동네에서 가장 예쁜 약사언니도 아니다.
저 멀리 미국이라는 곳, 유명한 대학교에서 수석졸업을 한 명석이네 형 또한 큰 자랑거리라고는 했으나
지원이네 마을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또한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여섯살짜리 지원이가 인기인의 둘째가라는 건 조금 억울한
일이지만 그래도 지원이는 다른 사람 못지 않게 '우리 동네 인기 아저씨, 인기 아저씨'하며 매일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달푼씨를 괴롭히기 좋아한다.
그렇다, 지원이네 섬마을 인기인은 바로 근면하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우체부 ‘고달푼’씨인 것이다.
"지원아, 그러다가 넘어져."
편지 배달을 하러 나가는 달푼을 발견하고, 입에는 빨간색 색소막대사탕을 문 채 뛰어오는
지원이 걱정되었는지 결국 달푼은 자전거를 멈추고 말았다.
다가온 지원을 달푼이 번쩍 안아주자 지원이 기분 좋은 듯 꺄르르 거렸다.
그러더니 주먹만한 막대사탕을 입에서 힘겹게 빼며 달푼에게 말한다.
성급하게 사탕을 빼는 걸보면 무언가 달푼에게 자랑할 자랑거리라도 있는 모양이였다.
"나 키 엄청 많이 컸지!!!"
"그래, 무거워서 이제 아저씨 못 들겠다."
"아저씨도 키 좀 더 커!!!"
"그래야지."
빙그레 웃으며 달푼이 지원의 머리를 헝클어뜨려놓았다.
베시시 웃는 지원이 마냥 귀엽게만 보이는 모양이다.
지원이 달푼의 옆에 서서는 키가 자란 자신이 기특한지 방방거리며 달푼이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듯
해보였다. 키가 147cm 밖에 되지 못하는 달푼은 그저 무럭무럭 자라는 지원이를 귀엽게 바라볼
뿐이다.
"아버지, 어제 오셨니?"
"(절레절레)"
"이런, 그래서 명석이네 집에 갔어?"
"아니. 명석이네 아줌마가 싫어서 그냥 방에서 TV 봤지, 뭐."
"이구, 다 컸다. 이따가 아저씨가 지원이네 집에 들릴테니깐 깔끔하게 청소하고 있어."
'진짜?'라는 입모양을 해보이더니 지원이는 신이 났는지 집으로 가기위해 내리막길을 한 걸음에
달려 내려갔다.
빨간색 원피스가 나풀거리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지만, 곧 잘 가는 지원이를 보고
달푼씨는 희미한 미소만 얼굴에 그릴 뿐이였다.
147cm 38kg이라는 외소한 체격의 달푼씨. 몸은 비록 외소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넓은 사람이였다.
웃을 때 눈이 가늘게 휘며,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달푼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지레 짐작하곤 했다.
웃음이 참 선한 사람이였다.
바닷바람을 가로지르며 달푼씨가 부지런하게 페달을 밟는다.
.
.
전에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허리가 잔뜩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걷고 계시는데
홀로 걷는 할머니가 외로워보여 달푼이 말동무가 되어드리려 한 것이다.
할머니께는 할아버지도, 자식들도 없었기 때문에 늘 외롭게 지내셔야만 했다.
아이들도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 할머니는 한쪽 눈이 백내장에 걸려서 일 것이다.
인정 많기로 소문난 동네사람들이여도 늘 이 할머니 곁에 가기는 무서워했다.
약간의 치매기가 있으신 이유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참 불쌍한 할머니였다.
달푼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할머니께 말동무가 되드리기 위해 옆으로 다가갔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할머니는 굽은 등에 손을 얹으시곤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씀하셨다.
달푼은 하마터면 지팡이에 맞을 뻔 했지만, 물러서서는 할머니께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할머니 저 나쁜 사람 아니예요."
"그럼 누구야!!!!"
"우체부, 전 저희 동네 우체부 고달푼이잖아요."
베시시 웃으며 그가 말했다.
할머니는 우체부라는 말에 반색을 하며 달푼의 손을 꼬옥 잡으시더니.
"우리 아들한테 편지가 왔는감? 서울간 우리 아들이 편지를 보냈는감?"
"예…? 아, 아니요. 그냥 할머니한테 친구가 되어드리고 싶어서요!!"
"그래, 그럴리 없지. 참. 동무? 이름이 뭐유."
"고달푼이요."
"아니, 이름이 뭐냐니깐!!!"
"고달푼이요."
"떽!!!!"
달푼의 이름이 워낙 독특해 이름마저도 할머니께 말씀드리는게 참 어려웠다.
어쨌든 달푼씨는 지난번 만난 할머니께 아주 큰 이벤트를 계획해 두고 있다. 점심시간에 틈틈히
준비해서 가져다 드릴 작정이다.
편지를 배달하는 달푼씨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우리 집에서 떡을 했는데, 이것 좀 가져가요."
"아, 아니요. 집에서 드셔야지요. 전 괜찮아요!! 아침밥을 많이 먹었거든요."
"에이~ 내가 다 아는데. 이것 좀 가져가서 잡수시구려."
그렇게 편지를 다 돌리고 나면 언제나 달푼씨의 손에는 떡이며, 반찬이며 하다 못해 어린 아이들이 준
막대사탕까지 한 웅큼이 들려있었다.
우체국 안으로 들어온 달푼씨가 받은 먹을거리를 내려놓고, 종이를 찾자 석현이 종이를 내밀며
봉지를 들여다본다.
시루떡이 있는 걸 보고는 반색했다.
"이야, 능력도 좋다. 나 이것 좀 먹어도 되냐."
"응, 먹어. 다른 분들이랑 같이 먹어."
"다른 분은 무슨 주지도 않는 거. 사먹으라 그래."
"야, 김석현."
그 순간 석현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자리에 앉은 달푼은 종이에 무엇을 쓰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연필을 바르게 잡고, 예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아하니 편지 같기도 하고….
달푼에게는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에 뭘하고 있는가 훔쳐보려했던 석현은 결국 병진의 손에
귀가 붙들려 저 멀리로 가고 있었다.
"뭐가, 어쩌고 저째. 지들 사 먹어!"
"잘 못 들으셨겠죠!!!!"
저 멀리서 울려퍼지는 석현의 고함소리에 달푼은 또한번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다시금 진지하게 몰두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전에 할머니께서 아들 이름이 ‘김 갑돌’이라고 하시는 소리를
들어 일단 자기가 평소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을 빼곡 채우기로 했다.
편지를 받고 기뻐하실 할머니를 생각하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께 쓰냐. 근데 갑돌은 뭐냐."
어느새 나타난 석현이 시루떡을 한 입 베어물며 말했다. 달푼은 그저 웃으며 편지를 마저 쓸 뿐이였다.
그제서야 석현은 달푼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았다.
달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특한 자식."
이라고 말하던 석현은 둘째 아들은 없냐하며 달푼에게 물었다.
달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외국에 나간 딸 하나가 있다고 말했다.
그 순간 오케바리하며 석현이
"임 예진씨, 임 예진씨. 일로 와봐요. 좋은 일은 같이 하자구요."
그렇게 달푼은 아들,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뚱뚱한 예진씨는 딸이 되어 열심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예진씨는 성격이 워낙 깐깐하고, 뚝뚝해서 이런 일을 쉽게 하려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석현의 말이라면
껌벅 죽는 바람에 서둘러 펜을 잡았다.
2시가 되어 달푼이 예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며 편지봉투 두 개를 들고 나온다.
우표도 붙이고, 주소를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대한 똑같이 드리고 싶은 달푼의 마음인 것이다.
일단 가기전에 주스 한 병이라도 사가자 마음 먹고, 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오렌지주스 한 병 주세요."
"좀 기댕겨보소. 어, 달푼이 아니여!"
"예. 달푼이여요."
"그럼 돈을 받아서 쓰나. 이거 그냥 가져가소."
"아닙니다. 얼마지요?"
"아니여, 전에 내가 술 취했을 때 우리집까지 데려다줬다면서. 난 그 날 외박했으면 마누라한테
끝장 볼 뻔 했다니깐. 갈 때까지 갔으. 그러니깐 이건 공짜다!! 공짜 좋아해도 대머리 안 되니깐
거참 공짜 좀 좋아해보소."
"……"
당황한 달푼은 극구 돈을 내려고 했지만, 슈퍼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돈도 내지 못한 채
오렌지주스 한 병을 들고 슈퍼에서 나왔다.
'많이 파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은 채….
두근두근, 마치 정말 진짜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처럼 달푼은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할머니!! 할머니!!"
그는 단걸음에 대문을 박차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빨래를 널고 계셨다.
시큰둥하니 빨래만 널고 계시던 할머니는
달푼을 보고서는 한 쪽 눈을 찌푸리다가 반색을 하시며 달푼에게로 다가가신다.
요며칠 보지 못했던 말동무가 다시 온 것이니, TV도 없는 집에서 사시는 할머니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아들이랑 외국에 나간 딸분한테 편지가 왔어요!!!"
"편, 편지?"
"네. 여기 좀 앉아보세요. 제가 읽어드릴께요."
.
.
"어머니께.
어머니 잘 살고 계시는 지요, 저 장남 갑돌입니다."
.
.
"외국에 나가사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곧 한국에도 한번 갈터이니 꼭 만수무강하셔야 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있으셔야해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2006. 7. 19일 水. 엄마의 막내딸 갑순올림"
한참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읽던 달푼이 다 읽고서는 빙그레 웃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황해서 할머니 곁에 다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렇게 많이 우시면 어떡해요. 도대체 얼마나 우신거예요."
휴지를 내밀며 달푼은 할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할머니를 다독여드렸다.
편지를 읽느라고, 얼굴을 가리시고까지 펑펑 울고 계시는 줄 몰랐던 것이다.
한참을 우시던 할머니께서 그제서야 달푼씨의 손을 잡아주신다.
"고마워, 고마워."
"예? 저는 배달한 거 밖에 없는데요. 아들이랑, 딸한테 고마워해야죠."
"고마워, 증말로…고마워."
달푼은 몰랐다.
할머니의 남편과 딸, 아들은 오래전에 화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는 걸.
또한 이름도 ‘갑돌’, 또한 ‘갑순’도 아니였다.
그저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신 것 뿐이지….
그러나, 할머니는 진심으로 달푼에게 고마워하고 있었고
달푼도 해가 저물 때동안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께 말벗이 되어드리느라 시간을 보내야했다.
원래 일정 시간이 되면 우체국으로 돌아가야하나 이번에는 석현이 협조를 해줬다.
그 할머니께 다녀오라고 하며 말이다.
뭐든 자기에게만 맡기고 가라는 것이였다.
시루떡 먹은 값을 한다나….
"어휴. 벌써 이렇게 어두워졌네요. 어서 주무셔야죠, 저도 이제 집으로 가야겠어요."
"그려, 가봐…잘가유."
달푼은 할머니의 집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끌었다는 것을 느끼곤 지원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손톱을 깨물어야 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좀 놀아주고, 재워주고 오려 달푼은 자전거에 올라 속력을 내어 지원의 집으로
페달을 밟았다.
동네의 바닷바람이 또한번 달푼의 콧구멍을 찔렀다.
달푼은 어느 유명한 나라의 값 좋은 향수보다도, 동네에서 나는 바닷바람이 제일 좋았다.
마음껏 바다내음을 들이마시다 지원의 집 앞에 자전거를 '끼익' 세운 달푼은 지원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대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지원아~"
순간 먹을거라도 잔뜩 사오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달푼은 대문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다시 발을 거두워야만 했다.
오랜만에 광탄에 일을 하러 가신 지원의 아버지가 돌아오신 듯 해서였다.
마루에서 지원이는 아빠의 팔베개에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달푼이 대문을 닫는다.
자전거에 막 오르는데….
우체통엔 뜻밖의 카드가 들어있었다.
[아자시, 내이 오세오. 오느은 아빠랑 놀아야해오.]
삐뚤삐뚤, 맞춤법도 다 틀려먹은 글씨였지만 달푼은 그 카드를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웃음을 감출 줄 몰랐다.
그러면서도 한쪽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거 같기도 했다.
아마 그것은 맨 마지막에 지원이 한 말 때문이였을 것이다.
[나도 크면 우체부가 될래요.]
…….
집으로 그냥 돌아가려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움직이던
달푼이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고달프게 살아라고 지어주신 이름처럼, ‘고달푼’처럼 살고 싶었지만 인정 좋은 이 마을
에서는 도저히 고달프게 사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
.
우체부를 하기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바다에 지는 붉으스름한 태양이 달푼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작은
… 세상에서 제일 큰 행복이구나.’
세상에는 자기 일에 쫓기어, 시간에 쫓기어 사람과 사회, 정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일은 우리가 조금만 긍정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면 누구나 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여러 일 때문에 피곤하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내 일 때문에
작은 행복을 누리고 있노라고.
말부터 해보는 건 어떨까 ….
‘우체부 고달푼 씨를 통해 펑키할멈’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단편]
[펑키할멈] ※섬마을 우체부※
펑키할멈
추천 0
조회 62
06.07.19 20:06
댓글 4
다음검색
첫댓글 재미 있게 잘읽었어요. 다음에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 부탁합니다.
으아으아재밌게읽었어여~ 신선한데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