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8일(화)
* 시작 기도
(요 8:56-59)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50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주님...
주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기뻐하였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네가 지금 50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묻자,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하자 그들은 돌을 들어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예수님께서 선재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야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육신으로 나기 전 곧 창세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턱이 없는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으로만 취급하기에 돌을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마 내가 거기 있었다면 나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주님을 보지 못하고 육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는 돌에 맞아 죽기에 합당한 자임을 고백합니다.
허나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오늘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1:47-54
제목 :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하라.
47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48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50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51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54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의 명령으로 모세는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휘관들과 함께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들의 수를 계수하였다.
그 수는 603,550명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에 레위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고 그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것을 명하신다.
그것은 증거의 성막과 그 기구와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는 임무였다.
또한 그 성막과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고 특별히 레위인은 성막 사방에 진을 쳐야한다.
성막을 걷거나 세울 때는 오직 레위인만이 그것을 해야 할 것이며 만약 이방인이나 레위인 외의 다른 지파 사람들까지라도 그 가까이 오면 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치고 나머지 12지파는 레위인의 진 바깥에 그 진영별로 막사를 치고 그 진영의 기를 세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외인이 성막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레위인이 막아 그들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도록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에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또한 그들은 특별한 보화와 같은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레위인들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장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도록 할 것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책임이 레위인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레위인은 광야시대를 비롯한 구약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레위인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곧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들이 바로 레위인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신약 시대에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하신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말씀하신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증거의 성막을 세우고 그 사방에 레위인의 천막을 친다.
그리고 그 사방에 이스라엘 12지파들의 천막을 쳐서 진영을 이루도록 하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제대로 복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신 것이다.
(히 8:9b)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오늘날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와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된 나는 원래 이방인이며 구원과는 거리가 아주 먼 외인 중의 외인이었다.
(엡 2:11-12)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처럼 무할례자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던 자이며 언약에 대해서는 외인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소망도 없던 자였다.
그런데 이런 나를 주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도대체 나의 무엇이 예뻐서 그랬단 말인가?
내 안에 도대체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 그러셨는가?
전혀 아니다.
나에게 선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구약 시대에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 구원시키신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선함이나 義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언약을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으로 하신 것이다.
(출 6: 5-7)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ㅏ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지키시기 위하여 행하신 언약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그 언약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전 아들과 맺은 언약이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창세기 15장에 나온다.
(창 15:5) 그(아브라함)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그리고 그보다 앞선 창세전 언약은 디도서에 나온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사람은 불의하되 끝없이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으시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언약을 깨트릴지라도 불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은 언약을 깨트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 언약을 지키신다.
비록 사람이 불의하여 언약을 어겨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질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그 관계를 끊지 않으신다.
그래서 오래 참으시되 언약 안에 머물지 않고 나간 백성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이다.
뿐만 아니라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무화과 옷으로 치장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품을 떠난 아담의 동선을 추적하여 그를 찾아가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죄로 범벅이 되어 죽었던 나와 우리를 살려주신 은혜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언약으로는 외인이요 이방인인 나를 온전히 주의 소유로 삼으신 것은 나의 선함이나 의가 걀코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인함이다.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래서 이제 영적 이스라엘 백성으로, 레위인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하나님의 언약을 전혀 모르던 자였다.
그저 교회에 나가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인 줄 알고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였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찬양을 하였고 기도도 나름 열심히 하였으며 빠지지 않고 거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였다.
나는 나름대로 예수를 잘 믿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언약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심지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서도 언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나는 나의 뜻과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사역하는 자에 지나지 않았다.
사역의 중심도, 예수를 믿는 목적도 오직 나였다.
내가 없으면 예수도, 믿음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여 철저히 나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자였다.
나는 예수를 믿되 나를 위하여 예수를 이용하는 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나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의 신앙, 내가 아니라 말씀, 내가 사는 이 세상 만물 안에 있는 ‘존재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존재’를 사모하는 믿음, 그리고 영생을 알게 되었다.
영생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다.
그 사귐이 있을 때 참된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서 이제는 날마다 말씀으로 주님과 사귐을 갖는다.
그 사귐이 나를 살리는 생수요 생명의 양식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이 주시는 생수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목이 마른 것은 복음을 생명으로 누리지 못하고 그저 복음으로 끝나는 또 하나의 야곱의 우물이라 하셨습니다.
제 안에 타는 목마름이 있나이다.
주여, 이 복음이 주께서 주시는 완전한 생수가 되게 하소서.
더 이상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는 주님의 살과 피가 되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으로 자꾸만 넘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의 보혈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소서.
나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요 주님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그 언약 안에 머무르게 하시고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 안에서 기쁨으로 살게 하소서.
그 안에 영생의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오늘도 하늘의 기쁨이 나를 삼키게 하소서.
그것은 말씀이신 주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