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2023. 7. 5. 수)(마태 10,17-22)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이 말씀은, ‘무조건’ 박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고도 아니고
예언도 아닙니다.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을 하다보면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순교를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박해가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의 바로 뒤에,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박해가 일어나면 피하지 말고 받아라.”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피할 수 있으면 피하여라.”, 즉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가라.”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고 박해를 받는 것은,
그래서 신앙생활도 못하고 신앙인으로서 살지도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증언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박해가 오히려 신앙을 증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박해를 받더라도
신앙을 증언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2티모 4,2).”
스테파노 순교 후에 큰 박해가 일어났을 때,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모범이 되고 교훈이 됩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사도 8,1ㄴㄷ).”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4).”
신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박해를 피해서 다른 지방으로
옮겨갔는데,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사도들은 숨어 있었을까?
사도들도 돌아다니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사도 8,14).”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전파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8,25).”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신앙을 증언하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인간적인 말재주’로 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라는 말씀은, 신앙을 증언하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인간적인 말재주로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뜻이기도 하고, ‘말’로만 하지 말고
‘성령으로 가득 찬 삶’으로 증언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했는데,
더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서 깊은 산골 같은 곳으로
옮겨 갔고, 교우촌을 만들어서 생활했습니다.
그때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선교활동을 할 수가 없었는데도,
새 신자가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것은 신자들의 삶을 보고
조선의 백성들이 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박해받고,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기쁨’에 가득 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 자체가 신앙을 증언하는 일이 되었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쁨’ 가득한 모습은 곧 ‘성령’으로 가득 찬 모습입니다.>
가족이 가족을 죽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항상 그렇게 된다는 뜻은 아니고,
박해 때에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고,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신앙을 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가족의 박해는 정말로 참기 힘든 고통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상황도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중요한 말은, ‘내 이름 때문에’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라는 뜻인데,
만일에 신앙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그런 극심한 고통을 참고 견딜 이유가 없지만,
신앙 때문이라면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구원의 은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인내하면서 박해의 고통을 감수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에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박해를 막아 주시겠다는 약속도 아니고,
박해를 받더라도 죽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이 약속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의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약속 덕분에,
박해를 감내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