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내일 일은커녕 당장 눈앞의 벌어질 일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이지만
주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에 초점을 맞춥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주신 새날, 이 하루도 주관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갑니다.
그곳으로 나아가 창세전 함께 하신 삼위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옵소서.
오늘도 영생의 하루를 살기를 원하오니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3. 동방 해 돋는 쪽에 진 칠 자는 그 진영별로 유다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4.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칠만 사천육백 명이며
5. 그 곁에 진 칠 자는 잇사갈 지파라 잇사갈 자손의 지휘관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
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사천사백 명이라
7. 그리고 스불론 지파라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
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칠천사백 명이니
9. 유다 진영에 속한 군대로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팔만 육천사백 명이라 그들은 제일대로 행진할지니라
10. 남쪽에는 르우벤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르우벤 자손의 지휘관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1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육천오백 명이며
12. 그 곁에 진 칠 자는 시므온 지파라 시므온 자손의 지휘관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
1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구천삼백 명이며
14. 또 갓 지파라 갓 자손의 지휘관은 르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
15.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오천육백오십 명이니
16. 르우벤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오만 천사백오십 명이라 그들은 제이대로 행진할지니라
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
18. 서쪽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19.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오백 명이며
20. 그 곁에는 므낫세 지파가 있을 것이라 므낫세 자손의 지휘관은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
2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삼만 이천이백 명이며
22. 또 베냐민 지파라 베냐민 자손의 지휘관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
2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삼만 오천사백 명이니
24. 에브라임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만 팔천백 명이라 그들은 제삼대로 행진할지니라
25. 북쪽에는 단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2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육만 이천칠백 명이며
27. 그 곁에 진 칠 자는 아셀 지파라 아셀 자손의 지휘관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2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천오백 명이며
29. 또 납달리 지파라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요
30.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삼천사백 명이니
31. 단의 진영에 속하여 계수함을 받은 군인의 총계는 십오만 칠천육백 명이라 그들은 기를 따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 하시니라
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며
33.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3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본문 주해)
1~2절 :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도록 하신다.
그것은 회막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진을 치라는 말씀이다.
이러한 진의 모습은 결국 천성의 모형이며 자기 백성들 안에 하나님께서 사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각적으로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처 삼으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3~9절 : 성막 동쪽에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가 진을 친다. 이 세 지파의 총수는 186,400명이다.
행진할 때에도 이 지파가 가장 앞장서서 행진한다.
더구나 성막과 성전의 동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입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유다 지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장차 유다의 지파로 오실 메시아를 미리 보여준다.
10~16절 : 남쪽은 르우벤 지파를 대표하여 시므온과 갓 지파로 한 부대를 형성한다.
르우벤이 장자이지만 장자의 자격을 상실함으로 일 순위가 되지 못한 것이다.
르우벤 지파 부대의 총수는 151,450명이다.
17절 : 레위인은 진을 치고 있을 때에는 회막 둘레에 진을 친다.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민1:53)
동쪽은(회막과 유다 지파 부대 사이에) 아론 자손 제사장들이, 남쪽은(회막과 르우벤 지파 부대 사이에)고핫 자손들이, 서쪽은(회막과 에브라임 지파 부대 사이에) 게르손 자손들이, 북쪽은(회막과 단 지파 부대 사이에) 므라리 자손 레위인들이 배치된다.
그리고 행진할 때에는 제일 앞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가고, 그다음에 유다 지파에 속한 자들이 가며, 그다음에 성막의 부품을 멘 자들(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가고, 그다음에는 르우벤 지파에 속한 자들이 가고, 그다음에 성막의 기구를 멘 자들(고핫 자손들)이 가고, 그다음에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자들과 제일 마지막에 단 지파에 속한 자들이 행진하게 된다.
18~24절 : 서쪽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 지파가 한 부대를 형성하여 진을 친다.
이들의 총수는 108,100명이다.
25~31절 : 북쪽은 단 지파와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이다.
이들의 총수는 157,600명으로서 행진할 때에도 제일 뒤편이 된다.
32~34절 : 이상 이스라엘 12지파 총 603,550명이 진을 치고 행진하였다.
이러한 구약의 모습들은 하늘의 있는 것의 모형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거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회막(성막)의 주변에 네 부대가 장막을 치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진영 한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진영 중심이 아니라, 회막 중심임을 뜻한다.
그것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모이고(예배하고) 흩어지는(행진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성막(회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진을 치고 행진 하는 모습이다.
열두 지파는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군대이다.
이들이 진을 친 진영의 한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이 있다는 것은 그들 가운데 사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성막을 중심으로 모이고(예배하고), 흩어지는(행진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또한 이것은 내 삶이 성막 중심의 삶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복음을 몰랐을 때 이 ‘성막’을 ‘교회’라고 철저히 생각했었다.
그때도 교회가 그렇게 좋았다.
건물로서의 교회도 좋았고, 지체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도 좋았다.
그 옛날 퇴근 길 버스를 타는 곳이 교회 근처라 자주 교회를 들러 혼자 조용히 기도하곤 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행사에도 열심을 내어 근무 중에도 시간을 내어 참석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모든 열심이 바로 성막 중심의 삶이고, 이것이 성도로서 바른 모습이라고 자부했었다.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던 그 모습들을 지금 돌아보면 아주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중심을 들여다보면 결국 ‘나의 만족’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주님을 알아간다기보다는, 점점 종교생활의 달인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말씀 없는 자기 열심만 가득했기에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이 아니라, 나 중심의 삶이었다.
그런 나를 긍휼히 여기신 주님께서 참된 성막 중심의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셨다.
그것은 복음을 듣게 하셔서, 나를 거처 삼으시겠다는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만물 위의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영생을 주고자 하시는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다는 것도 알게 하셨다.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영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영생을 아버지와 아들을 알아가는 것(요17:3)이니,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가 주님을 점점 더 알아가게 되었다.
그 생명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거처 삼으시겠다는 것을 깨달으니,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 된다.
단순히 교회 중심의 삶을 자랑하고 만족했던 자가,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관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너무도 기쁘기에 두 손 들고 나아가기를 원하는 자가 된다.
먹고 마시며, 자고 일어나며, 걷고 멈추며, 입을 열고 닫음....이 모든 행보가 얼마나 자주 교회를 들락거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아버지 품속에 안겨서 생활하느냐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는 것이 아버지 품속의 안겨서 사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하는 나의 삶이다.
(묵상 기도)
주님,
이 땅에서 진을 치고 행진하는 삶입니다.
그 한가운데 주님 계시니 이런 평강이 어디 있을까요?
주님이 딱~~ 계셔주시니
어디든 머물고, 어디든 가는 인생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자,
어떤 곳,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 품속에 거합니다.
이 땅의 행진이 끝날 때까지 이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