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안치소에서 시체 관람을 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리 벽으로 만들어진 시체 관람소는 파리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 명소였다.
실제 그런 식으로 시체를 찾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었다.
관광 명소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왕창 몰려 들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대부분 한가지,
죽은 자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구경하기 위한 것이었다.
죽은 자의 사인이 극적이거나 수수께끼일수록 더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언론사들은 시체가 발견될 때마다 대서특필하며 온갖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고 이틀 뒤 세느강 가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 시체가 발견되자
어떤 프랑스 일간지는 두 소녀를 엮어서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자매'라는 소설을 기사로 내보기도 했다.
이 기사가 나가고 소녀들의 시체를 보려는 구경꾼은 한층 더 늘었다.
1885년, 미국인 기자가 묘사한 파리 시체 안치소의 정경을 쓰자면,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치켜세운 신사들은 시체를 구경하며 히히덕거렸다.
노인들은 장터에서 물건을 흥정하듯 큰소리로 시체의 사연을 떠들었다.
창백한 안색의 귀부인이 동정어린 어투로 죽은 자의 명복을 빌었으나 시체 구경을 그만두지 않았다.
아이들은 시체가 옮겨질 때마다 양팔을 휘두르며 환성을 내질렀다.
오로지 시체 구경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방문객 숫자가 늘어나자, 파리 시청은 시체 안치소의 관람 구역을 확장했다.
노점상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시체 안치소 주위에 몰려들었다.
시체 안치소는 일주일 내내 아침 9시부터 새벽까지 개장했으며, 시체를 보기 위한 관광객은 더욱더 늘어났다.
어떤 시기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하는 관광객보다 시체 안치소를 구경하려는 사람 숫자가 더 많은 경우도 있었다.
시체 안치소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면서 시체의 유류품 역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이에 따라 시체 안치소는 마치 백화점 쇼윈도 같은 형태로 재개장되었다.
첫댓글 시체를 보려고 저렇게 사람들이 모인다는거 전 이해하기 어려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