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가. ‘어락도’. 종이에 연한 색. 26.7×33.7㎝. 개인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말해 줄 수 없다는 뜻으로 중국 고사 '장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가장 크고, 알고 있는 세상이 가장 위대하고, 뛰고 있는 시간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우물 속에서 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하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개구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여름만 살다 가는 여름 곤충에게는 찬 얼음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道)의 세계를 설명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이 고사를 통해 3 가지의 집착과 한계를 파괴하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을 파괴하라! 둘째,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파괴하라! 셋째,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파괴하라!
즉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공간에 구속되어 있고,
여름 벌레는 시간에 걸려 있고, 지식인은 지식의 그물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세 가지 그물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량한 학벌과 지식으로 어느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지식의 그물, 좁은 회사와 연줄에 얽혀 있는 공간의 그물,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 줄 모르는 시간의 그물.
이런 그물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진정한 승자로 남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가 보는 하늘만이 옳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보는 하늘도 인정해 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오늘도 귀하에게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출처:김영호 동기 카톡방 게재 글 사진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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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들 부모님 그 어떤 분이라도 가시나무새 같은 삶 살지 않은분 계셨겠습니까?
또 한세상 사노라면 감사할것 지천에 깔려있는데도, 감사는 커녕 욕심만 부리는
삶에 남의 가슴에 못박고,손가락질 받는이 많고 많으니 안타깝습니다.
상보형 올려주신 글에서 다시금 내삶 되돌아봅니다.
갑중 형의 "井底之蛙"?, 보충설명이 있어야 이해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