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예산 200억달러
‘Gov2.0’ 실현할 25개 IT 개혁 지표 마련
연방정부 기관 내 100여개 이메일 통합 중
쌍방향 참여형 디지털 정부 구축이 목표
연방정부 보유한 데이터·앱 국민에 개방
일반 시민도 외교문서 열람 가능하게

지난 4월 28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워싱턴 윌라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연방 IT회의’라는 제목 아래 클라우드 컴퓨팅(이하 클라우드) 회의가 열렸다. 연방정부 IT 전문가만을 대상으로 한 회의로 IT 솔루션 회사인 주니퍼(www. juniper.net)가 후원했다.
개인 기업이 후원한 회의에 연방정부 IT 공무원이 모인 것이 다소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워싱턴 상황을 보면 개인 기업 후원 문제쯤은 무시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연방정부가 클라우드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각 부처 내 IT 관계자라면 모두가 클라우드 관련 정보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보다 앞서 이미 클라우드를 돈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민간 기업의 경험과 정보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날 회의 참가자는 200여명으로, 아침 8시30분에 시작해 밤 11시30분까지 클라우드 보안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이 이어졌다. 물론 주니퍼가 워싱턴의 최고급 호텔에서 돈을 들여가며 회의를 후원한 것은 클라우드 보안 시스템과 관련된 정부 계약을 따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올해 안에 사용할 200억달러에 달하는 클라우드 관련 예산은 워싱턴 주변 IT 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클라우드는 올해 미국 연방정부 전체 IT 예산 800억달러 중 25% 정도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서버 능력 면에서, 민간 기업을 100으로 할 때 미국 정부는 27%에 그친다. 유럽의 79%보다 3분의 1 수준이다. 이러한 수치는 앞으로 미국 정부의 서버 수요가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 보안, 데이터 최적화, 테이터 저장에 관한 총체적인 비즈니스가 클라우드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연방정부와의 계약을 선점하면 ‘노다지’라는 인식이 미국 IT 관계자들 사이에서 퍼져 있다.
연방정부 데이터 공유가 기본 개념
2~3년 전부터 본격화된 클라우드는 민간 분야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핫메일(hotmail)이나 구글의 영화음악 서비스에서 보듯,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비디오·오디오·텍스트와 같은 각종 데이터와 관련한 애플리케이션을 수시로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클라우드의 기본 개념이다. 자신의 컴퓨터에 데이터를 저장할 필요 없이 클라우드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쓰는 식의 서비스다. 민간 클라우드의 경우 보통 비용을 지불해야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에 필요한 단말기로는 데스크톱, 랩톱,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유·무선 인터넷에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장치(디바이스)가 포함된다.
미 연방정부 클라우드 사업의 기본 개념은 연방정부가 보유한 각종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을 누구든지 공유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분간 사용자는 연방정부 직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앞으로 일반 시민들도 연방정부 클라우드를 부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정보 공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흘린 외교 정보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 일반 시민이 국무부 클라우드에 들어가 외교문서를 읽는 것도 가능해질지 모른다. 디지털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클라우드 범위에 들어가는 셈이다.
Gov2.0의 핵심 사업
미국은 유·무선 인터넷 시대에 맞는 정부의 개념을 ‘국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투명하고 열린 기관’으로 정의한다. 21세기형 정부는 공공정책에 직접 참여하고 감시·평가하는 국민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 미국식 전자정부의 개념이다. 이른바 Gov2.0이다.
연방정부 클라우드는 쌍방향 참여형 디지털 정부를 구축하기 위한 Gov2.0의 핵심 사업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왔다. 기술적 환경만이 아니라 콘텐츠 환경도 다 다르다. 광범위한 국토와 인종, 문화를 가진 3억 인구를 하나로 묶기가 어려운 곳이 미국이다. 따라서 국민의 목소리를 통일된 인터넷 환경으로 모으는 작업이 원활하지 못했다. 국민 참여만이 아니라, 이질적 IT 환경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도 클라우드가 갖는 중요한 의미다.
현재 미국 내 공공기관은 무려 1만개나 되는 서로 다른 인터넷 환경과 시스템하에서 움직이는 모자이크형 디지털 정부에 속해 있다. 1만개에 이르는 서로 다른 IT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무려 760억달러가 소요됐다. 지난 10년간 연방정부 IT 구축과 관련해 들어간 총비용만도 6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수준에 달한다.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복 투자, 비효율성, 비능률성은 극에 달했다. 예를 들어, 운전에 관련된 범칙금을 내야 하는 인터넷 웹사이트의 운영 시스템이 지방정부와 각 주 카운티마다 다르게 구축돼 있다. 벌금 25달러를 인터넷을 통해 내려면 그 과정에서 ‘공부’를 해야만 하는 곳이 미국이다.
2년 전부터 시작된 연방정부 클라우드는 연방정부 IT 환경을 효율적·능률적으로 만들고, 특히 돈이 적게 드는 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 이질적인 애플리케이션을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한 클라우드로 전환할 경우 지금까지 사용된 예산의 30% 정도가 삭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미국 IT 총예산이 800억달러라고 볼 때 약 240억달러의 예산이 절감되는 셈이다.
클라우드의 두뇌 NIST
연방정부 클라우드는 미래의 계획이 아니라 이미 시행되고 있다. 총사령관은, 오바마 정부 IT 정책의 핵심인 연방정부 최고정보책임자(CIO) 비벡 쿤드라이다. 인도 출신의 37세 총사령관이 가장 먼저 선보인 클라우드는 올해부터 운용되고 있는 정부 내 이메일이다. 핫메일처럼 연방정부 클라우드의 통일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쿤드라는 지난해 12월 ‘클라우드 퍼스트(Cloud First)’라는 이름의 정책 발표를 통해 15개 연방정부 기관 내 100개의 이메일 시스템을 하나의 클라우드로 묶겠다고 공언했다.
이메일 클라우드는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공급 사이트인 ‘Apps.gov’ 안에 들어가 이메일용 소프트웨어(EaaS)를 다운로드 받은 뒤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이 특정 부서에서 일하는 공무원임을 증명하는 신상명세 정보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메일용 소프트웨어는 올해 안으로 연방정부 산하 95만개의 이메일 계좌를 하나의 클라우드로 묶을 계획이다. 이미 조달청(GSA), 재향군인부(DVA), 육군, 농무부 등 4개 부처는 이메일 클라우드를 활용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클라우드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기술적 문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결정하는 곳은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이다. 이메일 클라우드의 애플리케이션(EaaS)을 만들어낸 곳도 NIST이다. 클라우드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각 부처 간의 벽을 없애고,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된 지침서를 연방정부 내 각 기관에 전달한다. 상무부 산하 기관으로 2011년도 예산만 9억2000만달러에 달한다.
2900명에 달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과학자, 기술자,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이들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절반 이상이다. 1400여명의 자문관과 350개에 이르는 각종 단체들도 NIST를 지원하는 외부의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클라우드만이 아닌 Gov2.0에 관련된 연방정부의 IT 정책 전반을 현장에 접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추구하는 Gov2.0의 내일을 가늠할 수 있는 곳이 NIST이다.
부처 간 회의도 텔레미팅으로

# 지난 4월 28일 미국 워싱턴 윌라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연방 IT회의’강연 영상물과 안내문. 200여명의
연방정부 IT전문가들이 모여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해 논의했다.
연방정부 클라우드는 이메일에 이어, 산하기관 내 IT 업무를 하나의 체제로 묶는 사무용 ‘통합 툴(collaboration tools)’ 클라우드를 지향하고 있다. 올 들어 부분적으로 출발한 상태로, 농무부의 경우 서류 정리 작업 업무를, 법무성은 산하 250개 지국의 IT업무를 스토리지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하는 클라우드로 해결하고 있다.
연방정부 클라우드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으로 나아갈지는 전적으로 클라우드 주변의 IT 환경에 달려 있다. 그러나 종극적으로 텍스트만이 아닌, 부처 간 텔레미팅 같은 것이 클라우드의 꽃으로 실용화될 전망이다. 결국 모든 것은 비디오로 통하게 된다.
CIO 쿤드라는 클라우드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해 말, 연방정부가 주도하는 25개의 IT 환경에 대한 내용과 방향을 발표했다. 클라우드를 지탱하는 Gov2.0를 구체화시켜 줄 IT 개혁 지표라고 보면 된다. 25개 IT 지표는 크게 볼 때 기술적 부분과 관리적 부분으로 이원화된다. 구체적으로는 5개 분야로 나뉘어 각각의 관련 부처에서 담당한다. 예를 들어 25개 지표 가운데 첫 번째인 ‘2015년까지 적어도 800개의 데이터 센터를 통합 운영하기 위한 세부 계획’에 관한 문제는 회계관리국(OMB) 소관으로, “늦어도 다음달까지 완수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CIO 쿤드라에 따르면 올해 2월 초 기준으로 25개 IT 개혁 지표 가운데 7개가 계획대로 완수됐다. 클라우드의 윤곽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쿤드라는 앞으로 기술적인 문제보다 각 부처의 업무 특성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관리적 분야에 한층 주목하겠다고 밝혔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나간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 볼 때 구체적인 시한을 설정해서 진행되는 25개 IT 개혁 지표는 정부와의 비즈니스 플랜으로 해석될 수 있다.
클라우드와 관련해 미국 정부는 올해 안에 적어도 한 개, 내년까지는 적어도 세 개 분야의 클라우드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클라우드의 구체적인 분야는 부처 간 협의를 통해 개발해 나가겠지만, 25개의 IT 개혁 지표가 얼마나 빨리 달성될지 여부가 클라우드 개발의 관건이다.
연방정부 클라우드와 관련해 앞으로 관심을 끌 부분은 민간 기업과의 관계다. 클라우드 비즈니스의 선구자인 ‘아마존닷컴 클라우드’를 연방정부가 이용하고, 연방정부 클라우드에 아마존닷컴이 들어가는 식이다. 클라우드에서 활용될 정보의 내용과 보안 시스템이 관건이겠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협조 관계를 구축할지에 대한 논의는 오는 가을부터 시작할 전망이다. ‘공개 정부(Open Gov.)’를 목표로 하는 오바마 정부의 IT 정책 기조에 비춰보면 정부와 기업 간 클라우드 공유로 생길 비즈니스 확대는 곧 닥칠 현실이다.
“한국형 클라우드는 무뇌 상태”
인터넷 스피드, 모바일 디바이스 보유자, 무선 인터넷 보급량과 같은 문제에 주목하는 한국 입장에서 볼 때 클라우드는 아직 멀고도 먼 얘기다. 2009년 한국 정부가 발표한 ‘클라우드 컴퓨팅 활성화 종합 계획’을 보면, 무엇을 위한 클라우드인지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하다. 미국의 경우 ‘Data.gov’에서 보듯, 먼저 공신력 있는 데이터를 구축한 뒤 정보의 공유라는 차원에서 클라우드를 필요로 하는 데 비해, 한국의 경우 먼저 클라우드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후에 공유할 정보를 만들어 클라우드에 집어넣는 식으로 일이 추진되고 있다. 공유할 정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식구가 몇 명인지, 자동차 크기와 집에 들어갈 살림도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해서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무조건 큰 집을 산 뒤 살림 도구와 사람들을 억지로 맞추는 격이다. 애플에서 보듯, 세련된 앱과 아이튠즈를 통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최고의 하드웨어로 구성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만든 뒤 콘텐츠를 추가하자는 발상과 똑같다. 하드웨어는 최첨단인데 소프트가 없는 무뇌(無腦) 상태로, 철저히 ‘Gov1.0’ 수준에 머문 사고다.
미국 정부의 클라우드는 인터넷을 통해 호적등본을 취득하는 것과 같은 ‘빨리 빨리’ 행정 서비스 개념과는 다르다.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나온 것일 뿐이다. 앞으로 계속 터져 나올 연방정부의 각종 클라우드는 기술이 아닌,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철학’ 속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새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