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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유로 탈락,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
1.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패배와 탈락
“USELESS, pathetic, insipid, spineless, desperate, rubbish and all those other words we are not allowed to print in the nation’s favourite newspaper.”
크로아티아와의 유로 예선 마지막 홈 경기에서 2-3으로 패배하여 본선 진출 탈락이 확정된 후,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기로 유명한 영국의 ‘The Sun’지의 축구 메인란을 장식한 사진과 글귀다. “쓸모없었던, 애처로웠던, 멍청했던, 쓰레기 같았던 잉글랜드. 이것보다 더 심한 말은 차마 이 나라 최고 인기의 언론 입장으로서 입 밖으로 내지 못하기에 접어둔다”는 더 선의 논평은 언뜻 보면 지나친 듯 싶지만, 그만큼 형편없었던 잉글랜드의 모습을 실감나게 전달해 주고 있다. BBC나 타임즈같이 보다 점잖은 편인 언론들도 약간 더 격식을 차렸을 뿐, 자국의 축구대표팀에 느끼는 감정은 다를 바 없다. 평소 점잖게 글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BBC의 앨런 한센은 “abysmal(구제불능의)”라는 표현을 썼고, 전 아스날 스타 이언 라이트는 경기 후 충격이 무척 컸던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망연자실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스티븐 제라드의 사진이 이 경기에서의 잉글랜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심정적으로는 9만 명에 이르는 관중 바로 앞에서 꿈이 꺾인 선수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을 지 몰라도, 냉정히 살펴볼 경우 패하지 않는 것이 훨씬 이상했을 경기였다. 전반 초반에 어이없는 실점을 하기 전까지의 몇 분과 후반에 동점골을 기록할 때를 제외하고는 선수들 전체는 무기력하고 두서 없는 플레이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유로 데뷔전을 치른 카슨을 포함하여 4백 전체의 플레이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고, 중앙을 두텁게 쌓을 목적으로 내보낸 3명의 미드필더 – 제라드, 램파드, 베리 – 의 움직임은 차라리 호흡 좋은 2명이 보여주는 것보다 못했다. 경기 후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이 지적한 것처럼, 고립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볼을 따내오려 힘쓴 크라우치를 제외하고는 ‘평균’ 수준의 활약을 보여준 선수조차 아무도 없었다.
본선 진출로 인해 잉글랜드 언론들은 TV회사의 광고 수입, 도박 회사와 소매상들의 수입 감소 등을 합하여 10억 파운드(대략 1조 9천억원)의 경제 손실이 닥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잉글랜드 축구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제2, 제3의 유로 탈락이나 월드컵 본선 탈락이 빈말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 잉글랜드의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월드컵이나 중요 메이저 대회가 임박할 때마다 사상 최고의 팀, 우승후보 0순위라는 화려한 명패를 붙였던 잉글랜드. 결과는 어떤가? 60년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 번 우승한 이후로는 기껏해야 가뭄에 콩 나듯 진출하는 4강이 고작이고, 평균 성적은 8강에서 16강 사이에 가깝다. 이번 유로 예선에도 초반에는 조 편성 등을 고려했을 때 무난히 본선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 낙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1) 맥클라렌의 역량 부족?
- 일부 전문가들이나 대다수의 자국 팬들에게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부진의 원인 중 하나이다. 실제로 맥클라렌은 크로아티아와의 유로예선전에서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감수하는 3-5-2 시스템을 구사하여, 경기 후 상대팀으로부터 “우린 맥클라렌이 그 전술을 사용하여 우리가 공격할 공간이 더 많아지길 바랬는데, 진짜로 그렇게 하더라”는 실소를 머금게 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부임 초기에 고집스럽게 데이빗 베컴 기용을 고사하다 후에 태도를 바꾼 것, 한 타이밍 늦고 부적절한 선수 교체 등도 종종 지적되어 온 사안이다.
하지만 눈여겨 볼 만한 사실은 90년대 이후 잉글랜드를 맡은 감독들은 맥클라렌까지 총 8명이었는데, 이 중 대부분의 감독은 20경기 안팎을 지휘하는 데 그치고 물러났다는 사실이다. 특히 94년부터 96년까지 감독을 맡은 테리 베너블스 감독은 23경기 11승 11무 1패, 유로96 4강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경질되었고, 글렌 호들 역시 17승6무5패를 기록했음에도 98년 월드컵 16강 탈락 이후 99년에 경질되었다. 에릭손은 90년대 이후 가장 오랜 기간동안 잉글랜드를 지휘한 감독이고 성적 역시 나쁘지 않지만, 동시에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가장 많이 욕을 먹은 감독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의 이러한 감독에 대한 적대적인 전통, 점점 높아져만 가는 팬들의 기대와 유로 예선의 성공을 강요하는 언론의 압력이 맥클라렌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보다 여유있게 풀어볼 기회와 자신감을 앗아가 버린 것은 아닐까?
(2) 창의적인 플레이의 결여
감독 문제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거론되곤 하는 사안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오랜 기간 동안 고수해온 소위 ‘뻥축구’, 단조로운 킥 앤 러쉬 전술을 여전히 크게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전술적인 유연성이 떨어져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지적의 핵심이다. 잉글랜드를 맡았던 감독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전술을 바꾸지 못해 비난받았던 점을 생각해 보면, (1)번 항목과 별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The English Plan
The Italian Plan
The Brazilian Plan
위 사진은 반은 장난삼아 그린 유럽 주요 팀들의 전술 개괄도이지만, 다른 나라의 전술과 비교한 잉글랜드 축구의 특성을 극단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핵심을 잘 잡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맥클라렌이 지휘봉을 맡은 후 보여준 잉글랜드의 전술도 이전과 그리 달라진 바 없었다. 이태리나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팀처럼 중앙 미드필더들이 팀의 중심을 잡는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볼을 좀 더 오래 소유하고 있으면서 유기적인 움직임과 패싱으로 게임을 풀어가지 않고, 거의 대부분은 양쪽 윙이나 윙백들의 사이드 침투 – 크로스 – 헤딩 혹은 세컨볼을 노리는 식으로 귀결된다. 가끔씩 조 콜 같은 선수들이 이런 식의 플레이를 탈피하기 위해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시도는 다음 번 혹은 다다음 번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치 한 가지 공식만을 외웠기 때문에 그것밖에 적용할 줄 모르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템포 자체는 빠른 편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압박이 미진한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중원에서부터 강한 프레셔가 들어가는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이러한 단조로운 움직임이 거의 먹히지 않고, 결국 주도권을 내주는 결과로 귀결된다.(06월드컵 잉글랜드VS포르투갈 전에서 잉글랜드가 결정적으로 힘들어진 것은 루니의 퇴장 때문이지만, 행간을 좀 더 읽어 본다면 당시 최전방 원톱격으로 나선 루니가 공격을 전개하기 위해 씩씩거리면서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거친 태클로 공을 일부러 뺏으려 할 수밖에 없었던 잉글랜드의 참담한 플레이 전개력이 분명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3) 세계적 수준에 달한 선수들이 충분한가?
- (2)번 항목과 연결지어 볼 수 있는 포인트다. 단정지어 말하자면 잉글랜드에는 “월드컵이나 유로 대회에서 우승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능력있는 선수들”, 소위 월드 클래스 플레이어들이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그간 툭하면 이번 국대가 역대 최고, 세계 최고를 외쳐왔던 것은 그저 부풀리고 이슈화하기 좋아하는 잉글랜드 언론들의 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가? 쉽게 ‘그렇다’고 답하긴 힘들지만, 쉽게 ‘아니다’라고 말하기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영국 Telegraph지의 풋볼 칼럼니스트 헨리 윈터는 자신의 한 칼럼에서 영국의 주전급 대표 선수들에 대해 나름의 급을 매긴 바 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잉글랜드에는 “세계적 수준의 선수 두 명(웨인 루니, 스티븐 제라드)과 ‘괜찮은’ 수준의 선수들(프랭크 램파드, 컨디션이 좋고 집중력이 있을 때의 애쉴리 콜, 오웬 하그리브스), 그 외에 좋은 수비 자원 몇 명”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한 명의 개인 의견일 뿐이지만, 사실 ‘잉글랜드 국가대표들 대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월드 클래스 플레이어들이 아니다’라는 의견은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주장이다.
하지만 보통 EPL 내에서도 최고 수준의 선수라고 인정받는 루니, 램파드, 제라드, 퍼디난드, 테리 같은 선수들은 분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리버풀과 같은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팀들의 중핵을 맡고 있지 않는가?(실제로 위의 선수들은 5만 명이 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최고의 선수에 대해 설문하여 순위를 매긴 자료에서도 모두 30위 안에 랭크되었다) 5명 가량의 세계적 레벨의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서 제 역할을 보여준다면 힘을 발휘하여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져보면 또 딱히 명쾌한 반론이 곤궁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월드 클래스 논쟁은 명확한 기준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합의점을 찾기 힘든 주제다.(재미있는 사실은 잉글랜드 국대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이 탑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잉글랜드 선수들이 오히려 자국에서는 자조 섞인 비웃음으로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4) 그릇된 축구교육 방침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논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이며, (2)번과 (3)번 항목 모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보다 쉽게 포인트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잉글랜드 유소년 육성과 관련한 문제점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두꺼운 책 한 권이 완성된다. 재정적, 조직적,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문화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데이비드 위너스의 저서 <Those Feet : An Intimate History of English Football>는 잉글랜드 축구가 남성성을 증명하려는 욕망을 통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축구가 본질적으로 거칠고 둔탁한 스포츠이며 얌전 빼는 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고, 피와 땀은 필수 조건이었다. 150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역사적으로 잉글랜드 축구는 창의성, 섬세함, 개성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 2007년 한국판 포포투 8월호, “영국의 유스 발전” 기사 중
비단 150년 먹은 지배적인 문화 경향을 뒤적거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잉글랜드 축구교육이 볼을 다루는 개인 기술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전 리버풀 스타이자 포츠머스 감독 해리 레드냅의 아들, 프랭크 램파드의 사촌이기도 한 제이미 레드냅도 “이 나라는 공을 오래 소유하고 있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발언을 한 적 있고, BBC 포럼 같은 곳을 가 봐도 유소년들에게 왜 허구헌날 태클과 달리기 연습만 시키느냐고 불평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전문가들이 흔히 지적하는 것처럼 7~9세 쯤에 교육을 통해 형성된 축구 습관은 나중에 10대 중/후반에 고치고 싶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즉, 공을 좀 더 오래 소유하는 법, 공간을 읽는 법, 기술적인 패스를 하는 방법은 시기를 놓치면 절대로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습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한 번이라도 잉글랜드 경기를 유심히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볼을 오래 소유하려고 들지 않는다. 여기서 ‘소유’의 의미란 단순히 선수들끼리 후방과 중원에서 공을 돌리면서 물리적인 시간을 늘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격 전개시에 상대 중원의 견제를 이겨내면서 주도권을 쥐고, 동시에 상대편 수비들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어 다양하고 파괴력 있는 공격 루트를 파생시킬 수 있는 소유를 뜻한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유소년 시절에 공을 오래 간수하는 교육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치열한 중원 싸움에서 기술과 몸놀림으로 공을 뺏기지 않는 키핑력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사이드로 내 주거나, 롱볼로 전방의 아군 공격수의 포스트플레이를 노리는 플레이가 잦아진다. 그렇다고 잉글랜드에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콰레스마, 스페인의 호아킨처럼 발군의 돌파 능력을 가진 사이드 플레이어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SWP는 탄력과 스피드가 좋지만 기복이 있고, 정상급 윙백을 능란하게 제칠 수 있는 돌파력이 모자라다. 아론 레논은 기술적이고 미래가 기대되지만, 아직은 완성형 선수가 아니다). 이것 역시 어렸을 때 발재간 능력을 충분히 기르려 하지 않는 잘못된 교육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최근 급격히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EPL의 외국선수 제한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 제한 법안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보다 많은 잉글랜드 선수들에게 EPL 구단에서 정기적으로 뛸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애초에 왜 잉글랜드의 젊은 선수들은 점점 외국 선수들에 설 자리를 내 주고 있는 것일까? 경쟁을 통해 극복하면 되지 않는가? 답은 세스크 파브레가스나 엘라누, 베르바토프 같은 선수들이 배출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부족한 기술 교육을 10대가 훌쩍 넘어 싹 고쳐 받으려고 해 봤자 한계는 명확하고, 결국 우수한 수입 선수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처음부터 어느 정도 결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5) 선수들의 열의, 동기 부족
위 세 항목에 비하면 다소 약해 보이지만, 현지 팬들의 생각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에서는 결코 무시되지 않고 한번씩 언급되는 부분이다. 당장 크로아티아 전만 하더라도 두 번째와 네 번째 실점에서 골키퍼 캇슨의 느린 대처와 우측풀백 마키 리처즈의 형편없는 수비가담, 위기의식이 결여된 듯한 4백의 움직임을 비난하는 글들이 빗발쳤다. 안도라와의 원정경기에서 상대 수비의 의례적인 신경전에 쓸데 없이 민감하게 반응하여 경고를 받고, 퇴장을 염려하여 결국 교체당할 수밖에 없었던 웨인 루니의 프로답지 못한 태도도 당시에 도마 위에 올랐던 부분이다. 쉽게 요약해 국가 대표라는 것의 무게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뛴다는 지적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국내에서 연예인과 같은 대접을 받는 잉글랜드의 축구 풍토도 선수들의 경기 집중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 힘들다. 조이 바튼 말마따나 “뭔가를 이루어내지도 못한” 선수들마저도 한번씩은 고액의 계약금에 자서
<잉글랜드 외 유럽 탑5리그의 주급액 비교>
전을 출판하고, 다른 리그에 비해 EPL의 주급액 역시 심하게 높은 편이다. 이런 것들이 선수들로 하여금 마치 자신이 슈퍼스타인양 착각을 하게 만들고, 정신적인 측면에 있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6) 극성 팬들과 언론에 의한 부담감
영국 축구 팬들과 언론의 야단법석은 그 명성이 이미 최고 수준이다.(06월드컵 루니 퇴장사건 이후 언론에 의해 거의 매장을 당하고, 한 시즌 내내 원정경기 때마다 야유를 받았던 호날두를 생각해 보자. 그를 팀에 붙잡아둘 수 있었던 퍼거슨 감독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경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기 일쑤고, 팬들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램파드는 최근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크로아티아전 팬들이 쏟아부을지도 모를 야유가 두렵다’고 언급하면서, 안도라 원정 당시 벤치에 앉아 있었음에도 신나게 얻어맞은 비방 세례가 끔찍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한창 잉글랜드가 이번 유로 예선 원정경기에서 졸전을 펼칠 때는 대표팀 버스를 가로막기도 했으니 할말 다했지 않은가. 선수나 감독들이 이것들에 지장을 안 받을 수 없다.
(7) 부족한 운
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꺼내놓는 의견이다. 98년도 월드컵 16강전 베컴의 ‘불운한’ 행위로 인한 퇴장, 유로04 8강전 PK’운’이 없어서 실패, 06월드컵 8강전 역시 PK’운’이 없어서 실패 – 이것들이 주된 근거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번 유로08 예선에서 그나마 크로아티아 전까지 희망을 남겨놓을 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가 이스라엘에 패배하고, 마케도니아가 크로아티아를 잡아준 ‘행운’ 덕이 아니었나? 개인적으로는 좋게 봐줘도 ‘그럴듯한 변명’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 해결책은 없는가?
대충 조명해 본 잉글랜드의 현재 산재한 문제점들도 이처럼 상당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고 개인, 팀 차원에서 보다 강력한 국가대표를 구축하여 이태리나 독일, 브라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1) 감독을 좀 더 내버려 두라
에릭손 감독은 06월드컵을 끝으로 잉글랜드 감독직에서 사퇴하면서 “세계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바 있다. 그만큼 잉글랜드 대표팀의 감독직 자리는 유혹만큼이나 리스크도 크다. 출중한 성과(유로든 월드컵이든 우승을 해야 ‘출중’하다고 인정받을 것이다)를 내면 열렬한 환호와 보상을 받게 되지만, 반대로 기대에 못 미치면 상상 이상의 괴롭힘을 각오해야 한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 외에도 각종 언론들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조명되는 것도 부담스럽다. 90년대 이후로 잉글랜드를 맡은 인물들 중 최장 기간 장수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재직 시절동안 거의 줄곧 이런저런 비난에 시달린 에릭손이다.(56경기 소화. 덧붙여 역대 감독들 중 승률도 2번째다.). 잉글랜드가 장기적으로 더 바람직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의 국가대표는 세계 정상급 전력에 전혀 미치지 못함을 팬들이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매번 새 감독에 거는 비상식적인 기대와 과도한 미움도 상당 부분 사그라들 것이며, 능력있는 감독들이 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잉글랜드는 축구종가라는 자부심에서 오는 고집 때문인지 에릭손 이전까지 한번도 외국인 감독을 쓰지 않았다. 이러한 쓸데없는(!) 고집을 오래 전에 꺾었더라면 지금 상황이 조금이라도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2) 선수들은 보다 활발히 해외진출을 시도하라
잉글랜드 축구계에 대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점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왜 선수들이 좀처럼 외국에 나가 뛰지 않으려 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잉글랜드 선수들의 해외 빅리그 진출률은 거의 제로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반면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127명, 리그 1에 27명, 스페인에 35명, 세리에a에 41명 등 총 유럽 7개국에 300명에 이르는 선수들이 진출해 있다. 왜 잉글랜드 선수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을까? 이것에 대한 이유로는 보다 고소득이 가능한 영국 국내의 축구환경, 필요 이상으로 거품이 낀 영국 선수들의 몸값, 해외리그의 선수들을 압도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선수들 등이 꼽힌다. 하지만 잉글랜드 선수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런저런 요인들을 핑계 삼아 모험을 하지 않으려 드는 자신을 합리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잉글랜드의 교육 인프라에 비해 확실히 더 나은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같은 국가들로 축구 유학을 가야 한다. 물론 자국의 유소년 교육 시스템이 다른 교육 선진국 수준만큼 올라와 있다면 굳이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축구협회도 허울밖에 남지 않은 ‘축구종가의 자존심’은 곱게 접어두고, 다른 나라 구단들이나 유소년 아카데미들과 제휴 협약을 체결한다거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우수한 어린 재능들을 해외로 수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다양한 리그에서 성장하여 다양한 스타일로 자라난 잉글랜드 선수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의 국가대표 자원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3) 적당한 수준의 EPL 외국인선수 쿼터제를 도입하라
이 제안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리그보다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현재 웬만한 EPL 구단들은 팀이 요구하는 수준의 선수를 자체 육성하기보다는 스카우트를 각지에 파견하여 사 오는 것이 거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경향과 모자라는 유소년 교육 수준이 합쳐져 어린 잉글랜드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설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60% 안팎에 달하는 용병 점유율을 강제로라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는 정책이 시행되면 구단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1군 선수를 자국인으로 채울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보다 제대로 유소년 교육을 개혁하고자 하는 유인이 생긴다.(쉽게 말해 수입되고 있는 외국 선수들의 다양하고 기술적인 스타일을 자기들 손으로 길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당장 구단들은 성적에 목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은 높은 클래스의 자국선수들이 엄청난 고가에 자금력이 있는 구단으로 집중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는 FA가 이것들과 관련하여 각종 규제안을 마련함으로써 상당 부분 완화시킬 수 있다. 일단 부작용이 최소화될 경우, 제고된 유소년 교육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질 높은 자국의 어린 선수들을 다수 배출하는 결과를 끌어낼 것이고, 높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낮은 공급으로 자연스레 몸값이 인플레될 수밖에 없었던 현상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4) 남성성 중심의 축구 문화와 이로 인해 편향된 유소년 교육을 제고하라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성취되기 힘든 답안이다. 일단 아르헨티나, 브라질, 포르투갈과 같은 나라들처럼 공으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자연시하는 축구 훈련과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학과 교육에 밀려 전문 축구교육을 받는 유소년들조차 하루에 2~3시간씩밖에 훈련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프랑스나 브라질은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훈련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각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 시설에 외국 출신의 기술 전담 코치를 더 많이 배치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지난 3년 사이 유소년 팀을 마친 후, 해당 클럽에 남아있는 23세 이하 자국 선수들의 숫자는 어떻게 될까? 최다는 미들스브로로 12명을 기록했으며, 아스톤 빌라와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뉴캐슬이 5명으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 구단들은 대부분 3명 이하에 불과하며, 아예 한 명도 없는 구단도 5개나 된다. 해외 빅리그에 잉글랜드 선수들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해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하위 리그에 뛴다는 결론이 나온다. 잉글랜드 유소년 교육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동시에 제시하는 데이터다.
4. 맺으면서
지금까지 부족하게나마 잉글랜드의 현실과 부진의 원인, 그리고 가능한 해결책에 대해 짚어보았다. 개인적으로 잉글랜드 팬으로서, 지금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팬들, FA와 선수들 모두가 허울밖에 남지 않은 “우리는 세계 최강급 전력이다”라는 명패를 싹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본다. 진정한 개혁 의지는 자신의 현실을 겸허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나온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만큼,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끈기와 인내를 갖고 천천히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껍데기뿐인’ 축구 종가가 아닌, 축구 역사와 전통에 걸맞는 성적을 자랑할 잉글랜드가 올 날을 기다려 본다.
작성 : Chi37
##운영자님이 잉글랜드에 관해서 글을 한 번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이번 탈락을 계기로 왜 국대 성적이 항상 전반적으로 그간 저조했는지와, 해결책에 관해 나름대로 한번 써봤습니다.(사실 다 제 손에서 나온 것도 절대 아니고...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칼럼이나 해외 사이트, 포럼란에서 얻은 자료를 정리+주관적으로 요약했다고 봐야죠). 이런 글 써보는 건 처음인 데다, 주제 자체가 좀 진부하기도 하고...글이 많이 모자랍니다. 편하게 읽어 주시고, 의견 있으시면 감사히 리플로 받겠습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Chi37님 예전부터 좋게봤는데 정말 좋은글이네요, 공감되는부분도 많구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와우! 정말 좋은 글이네요 ^^ 저도 이렇게 쓸 때까지 노력 좀 해야겠어요 ^^
잘읽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참 요약 잘되있고 읽기 쉬운글이었습니다
ㄷㄷㄷ 잘 읽었습니다...자료 쩌네요
Chi37님 ㄳ합니다
역시 미들에는 스콜스가 필요해..
일단 수비라인이 주전들은 진짜 무난함을 넘어 벽수준입니다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브릿지나 쇼레이나 크로스가 날카롭다고는 하지만 탑급은 아니고, 센터백은 킹의 유리몸에다가 캐러거까지 은퇴함으로써 레스콧-캠밸 라인을 세우게되어 한 숨을 자아냈죠. 오른쪽 윙백이야 그나마 미카 리차즈가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얘는 너무 오버래핑이 활발합니다.
중요한 건 미드필드라인 이후부터죠. 사실 제라드는 진짜 잉글랜드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유의 투박한 플레이에 빠른 스피드, 그리고 찔러주는 패스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죠. 근데 중요한 건 제라드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선수들이 되겠죠. 오른쪽에 라이티는 말씀대로 정상급 윙백 하나 제치기 힘들며, 베컴은 미국에 간 이후 데드볼을 제외하고는 딱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왼쪽에 조 콜은 테크니션과 창조성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하지만 먹히지 않고, 다우닝은 그런 조 콜보다도 기량이 떨어지죠. 제라드와 같이 중앙에 서는 베리나 램파드, 캐릭은 무난함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공격진에서는 이 단점들이 더욱 극대화 됩니다. 좌 우로 활발히 벌려주면서 2선들이 침투할 수 있는 기회를 내 줄 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건 딱 루니의 역할인데 그렇다고 그걸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2선 침투하는 선수가 없거나 기량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또 옆에서는 오웬은 자기 폼조차 제대로 못찾고 있고, 크라우치는 소속팀에서도 로테이션 or 서브입니다. 헤스키는 왜 나왔는지 조차 잘 모르겠고요.
뭐랄까.. 글이 좀 두서가 없어졌는데. 솔직히 말해 잉글랜드는 강팀이라 불리우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개인적으로 수비라인 하나는 진짜 쳐주고 싶은데, 이것도 주전들을 제외하고는 답이 안나오는 수준이니까요. 좋은 선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공격진에서 좋은 선수가 누가 있나요? 양 윙라인은? 물론 예선 탈락할 만큼의 그건 아니지만, 월드컵이나 유로 4강에 올라갈 실력은 절대로 아니라고 봅니다.
뭐 어쨌건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선 침투하는 선수가 없거나 기량이 떨어진다고 하셨는데, 제라드나 램파드는 2선침투 면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선수들로 알고있는데..
제라드와 람파드의 2선 침투가 막히는 것은 그들은 분명 2선침투를 할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선수가 할지 안할지 혹은 2선침투를 유도하는 플레이가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면 2선침투가 먹히겠지만 분명 크로스같이 2선침투를 유도할테고 그들은 여지없이 2선침투를 한다면 충분히 방어할수 있죠. 그게 약팀과 강팀의 차이. 아는걸 막을수 있는 능력과 알고도 막지 못하는 능력. 잘 읽었습니다. 특히 특별히 이룬것도 없는 선수가 고액의 연봉을 요구한다는 점은 현 K리그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저도 확실히 수비라인은 게리네빌-리오-테리-애슐리콜..이렇게 나오면 완전 벽 수준인건 확실한데 대체자원이 미흡하고 미들 이후부터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닌거 같다는...어떻게든 유소년 교육을 뜯어고쳐서 스콜스처럼 공소유 확실하고 공수조율해주면서 경기 풀어주는 선수가 좀 많이 나와야 할텐데...아무튼 글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거 우리나라 국대랑 연결해도 잘 맞을것 같은글이네요 ㅋㅋ 2002년 이후 높아진 국민들눈 , 키핑+조율력없는 중앙미들, 감독에대한 압박도, 리그경쟁에서 밀린 토종공격수
스페인이나 남미 쪽 감독을 영입하는게..
잘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번 유로에서 잉글랜드를 볼 수 없다니.. 상당히 안타깝네요, 이번 실패를 계기로 삼아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