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타령
김 상 립
나는 한 때 좋은 글 세상에 빠져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 라인상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좋은 글에 몸을 뒹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 메일과 카카오 톡을 통해 들어오는 양이 자꾸 늘어나 나를 덮치니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에는 숨이 가빠졌다. 더구나 사방에서 ‘내가 더 좋은 글이오’ 하고 얼굴을
내미니, 누굴 먼저 만나야 할지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엔 누군가가 애써 보내주는 내용이라 관심을 가지고 정말 열심히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좋다고 보내주는 글의 내용이 상당부분 서로 겹쳐지거나, 문양만 살짝 바꾸었지 엇비슷한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또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알맹이가 별 것 아닌 것도 부지기수였고, 새로 받은 내용이 이미 수 차례 읽은 것도
적지 않았다. 특히 건강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면 지켜야 할 것도, 피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읽기조차 힘 들었다. 또 병에 대한 주장이 서로 다르고 상충되는 내용도 적지 않아서, 어떤 것이 옳은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사실 건강에 대한 이런저런
상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요즈음 나는 그런 글들을 자주 열어보지 않는다. 어쩌다가 읽고 싶은 경우에도 보낸 사람이나 제목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열어본다.
그래도 내 컴퓨터에는 아직 열지 않은 메일이 50여 통 쌓여 있다. 매일 새로 들어오는 것과 내가 확인해보는 숫자가 비슷한지 늘 그만큼의 수량이 미확인 상태다. 카카오 톡에 저장된 자료도 마찬가지다. 제목에 따라붙는 길지 않은
문장은 대충 보지만, 별도로 첨부된 내용을 클맄해서 읽어보는 경우는 드물다.
IT시대에서는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다수에게 보내주는 것이 강자의 지위를
확보하는 방도가 되는 것인지, 또는 봉사하는 일로 여겨 만족도가 높아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글과 그림을 퍼 나르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심지어는
꼭 읽어보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라든지, 받은 내용을 최소한 스무 사람 이상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마치
어떤 불운이라도 만나게 될 것처럼 말미에 적어놓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그런 메시지도 있다. 덕분에
인터넷상에 좋은 글귀는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여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묘책은 없는 모양이다. 오직 각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을 보면 짐작된다.
그래도 풍성한 글 덕분인가? 입으로는
청산유수같이 좋은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많기도 한 세상이다. 모임 같은 데 가보면 옛날에 비해 유식해진
사람이 엄청 늘었다. 어떤 분야의 얘기가 나오든 막히는 게 없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그의 지식이고 지혜일까? 그들이 생각하고 깨달아서 말하기보다는 주입식으로 입력된 정보가
하도 많으니까, 차고 넘쳐서 나오는 소리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씁쓸하다. 물론 그 상황을 삐딱하게 보는 내가 도리어 문제일 수는 있겠지만, 인터넷에서
읽은 것을 단순히 옮기는 것 보다야, 진솔한 제 자신의 의견을 더 많이 말해야 한다는 내 바람마저 매도
당하고 싶지는 않다.
만일에 사람들이 입으로 쏟아내는 좋은 말과는 달리 일상에서는 전혀 아닌
행동을 한다면,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대량 정보시대의
모순된 측면이 확산된 결과라 해야 하리라. 세상에 말로는
뭘 못할까? 옛 속담에 ‘입이 저자면 서방님 밥상다리 부러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우리네 처지를 절묘하게 경고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안톤슈낙은 의정연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썼다. 정보가 많은
정치인들이 그럴듯한 허풍을 잘 칠 수가 있다는 또 다른 말일 터이다.
사람이 좋은 글귀를 읽고 나면 조용히 반추도해보고,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치열한 사색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책을
몇 페이지쯤 읽고 나면, 누구나 읽은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게 순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대인들은 여유가 없단다. 새로운 정보 읽기도 벅찬 판에
사색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좋은 글이 과거 어느 때보다 차고 넘치는데 세상은
더 추악하고, 더 위험하고, 더 힘들어 졌다. 결국 좋은 글과 사람 사는 일이 따로 논다는 얘기가 된다. 말하자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글들이 이제는 저들끼리 세력을 만들고, 저들 세상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좋은 글귀를 받았다고 얼른 퍼 나르지도 않거니와 그 내용을 깊이
신봉하지도 않는 편이다. 트위터를 검색하거나 SNS(Social
Network Service)같은 온라인 소통수단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남들이 날보고 시대에
뒤쳐지는 아날로그적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않을 각오로 버티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 동안 여러 사람이 보내주는 글을 계속해서 받기만 하고, 화답을 못했으니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여러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만일 내 생각이 바뀌어 어느 날부터 나도 남들에게 글을 보내게 된다면, 힘이
들더라도 다음 몇 가지를 꼭 지킬 생각이다.
비록 좋은 글이 입수되어도 내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있는 주소대로
한꺼번에 다 보내지는 않고, 글의 내용 따라 각기 나누어서 발송할 것이다. 예를 들면 젊은 이들에게, 장년들에게, 노인들에게 보내질 내용들이 각각 다를 수가 있을 것이고, 필요에
따라 성별도 구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으로 어려운 사정이 생겼을 경우나, 불행을 당한 사람은 그 정황을 참고하여 위안과 용기를 주는 글을 찾아 보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받은 글의 5프로 이내에서만 밖으로 내보낼 심산이다. 그래서 좋은 글이란 꼬리표를 단 문장들이 온 라인을 순환하며, 서로
비슷한 것끼리는 상쇄되고 점차 순치(馴致)되어 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그 어떤 것이 되었던 차고 넘치면 소중한 줄도 모르고 건성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좋은 글이 그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면, 우리
모두가 불필요하게 나도는 정보를 줄여가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더하여 개개인은 스스로 글을 보는 안목을
길러 여과(濾過)의 기능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하리라 본다. 솔직히 말해 나는 메시지전달자로 살기보다는, IT시대를 한 발 비껴나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살고 싶다. 그래도 꼭 한 마디는 해야겠다. 좋은
글 너무 좋아하지 마시라고요.
첫댓글 남 평 선생님 ! 정말 인생을 살아 오신 년륜이 묻은 사람에께 공감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IT시대라 하지만 메일이나 쪽지며 사이퍼 공간에 무수한 정보가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쩌다가 글은 열어 볼 망정 무조건 삭제하는 습관이 생활화 되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열어 볼 마음의 여유와 시간도 빡빡한지 모르지요. 송학.
송학선생님 오랫만입니다
스스로 좋은글중에서라는 꼬리표를 단 글이 너무 많아서요 그리고 그런 글들이 정작 우리 삶과는 아무 관계도 없이 버릇처럼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답답해서
그냥 한번 해본 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