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이후의 서양사회가 얼마나 살벌했는지는 'Excuse me'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누군가와 살짝 부딪히거나 실수로 발을 밟으면 "Excuse me."라고 정중히 사과한다. 'Excuse me'의 원래 뜻은 '제발 고발하지 마세요'다. 'ex'는 '~에서 빼다'란 뜻이고 'cuse'는 '고발하다'인데 '이유' '원인'이라는 뜻의 'cause'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이 단어는 고발을 통해 범죄의 경유와 원인을 밝혀낸다는 데서 유래한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길에서 돈 많은 사람과 잘못 부딪히면 고의로 밀쳐 싸움을 걸거나 모욕을 주려 했다며 법정에 고발당해 벌금형이나 심한 경우에는 사형선고를 받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Excuse me'는 '제발 법적인 조치에서 빼주세요!'라는 뜻이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부딪힌 것이니 고발하지 말아달라고 무릎꿇고 빌던 데서 유래했다. 결국 남과 부딪히는 순간 빚을 지게 되었으니 그 빚을 탕감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는 면에서 'Thank you'와 비슷한 문화적 의미가 담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사소한 부탁을 할 때도 'please'라는 말을 사용한다. 원래 표현은 이보다 긴 'If you please'였다. 당신이 기분이 내켜서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해달라'는 말이다. 절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니 나중에 빚 받으러 오지 말라는 선제 공격이기도 했다.
프랑스에는 '채찍으로 개를 훈련시키듯 노예는 선물로 훈련시켜라'라는 속담이 있다.
서양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 공격을 일삼는 잔인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매너manner'라는 것을 만들었다. manner는 '손'을 뜻하는 'manus'에서 나온 말인데, '자기 자신을 손에 쥐다', 즉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를 꽉 붙들어 긴장을 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는 서양 사람들을 보고 "와! 매너 좋다."라고 감탄하지만 그들의 매너 있는 말투와 제스처에는 '죽기 싫으면 절대로 이 선은 넘지 마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조승연 지음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 P. 133 ~ 135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