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주에서 대학을 다닐 때 형편이 어려워, 수동 용화사에 1년간 학생법회를 보아주면서 지낸 일이 있다.
당시 함께 계시던 대원스님이 자신이 겪은 영험담을 말해 주었다.
이 스님은 6.25 당시 청주 사직동에 있는 구 용화사에 계셨는데, 미군기가 이 구용화사를 폭격하여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고, 자신은 폭탄의 바람에 날려 뚝을 넘어 무심천 물위로 날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이 별로 많지 않은 곳에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은 기적적으로 다친 데가 없었다.
자기는 늘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는데, 그 영험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내 추측으로는 최소한 50-150m 정도는 날아갔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는 관음경에 있는 대로 불에 들어가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한 경우로 생각되었다.
『현장삼장전』에는 현장법사가 엄빈국이라는 곳에서 노승의 병환을 치료해 주고 노승으로부터 반야심경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 많은 가피력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양사람들 중에도 위급한 경우 Avalokitesvara(아발로키테스바라: 관세음보살)를 염하여 많은 사람들이 위급에서 벗어난 영험을 얻었다고 한다. 이차대전 당시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늘‘관세음보살(아발로키테스바라)를 외웠는데, 기적적으로 죽음에서 면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을 염하여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도움을 받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사실 필자가 이 회보를 지금까지 계속 발간할 수 있었던 것도 관세음보살님을 염불한 가피가 아닐까하고 늘 생각하고 있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 천태종의 교세가 급격이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관세음보살 신앙을 존중함에 있다고 보여진다.
출처: 산림불교(cafe.naver.com/buddhistforest) 제25호 사천왕님글 중에서
경기도 화성 신흥사에 다니는 한 거사님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거사님은 풍랑이 너무 심해 자기 배가 떠내려 갈 것 같아 밧줄을 잡아매는 도중에 밧줄을 파도에 놓쳐버렸다고 합니다. 밧줄을 놓쳐버리고 나자 거사님의 몸이 큰 파도에 휩쓸려 가는데, 그 위급한 순간에 관세음보살님을 정신없이 불렀다고 합니다.
그 거사님의 어머니께서 독실한 불자였기 때문에 늘 입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을 했었는데, 그 거사님도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하시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배웠던 것입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거사님은 얼마나 간절하게 불렀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파도에 떠밀리면서 물에 휩쓸려 들어가기 직전 그 절 부처님이 그 거사님 곁을 휙 스쳐지나가더랍니다. 바로 그 순간 다시 밧줄이 파도에 떠밀려 자기 앞으로 오게 되었는데, 거사님은 순간적으로 그 밧줄을 다시 잡게 되었고 그 거사님은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그 거사님이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 사례와 비슷한 내용이 법화경 제25품인 관세음보살 보문품(관음경)에 있습니다.
"가령 폭풍이 일어 배가 나찰귀들의 나라에 들어갔을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나찰의 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위급한 상황을 나찰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 잡지에는 신도들의 영험록을 정기적으로 싣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18살 된, 한 신도의 딸이 무단히 시름시름 아픈 것이었습니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이 식욕을 잃고 삐쩍 마르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이 사람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으나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용하다는 의사라면 양의·한의를 불문하고 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병의 차도는 보이지 않고 점차 건강이 더 나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죽어가고 있던 중 기왕 죽을 거면 기도나 한 번 해보고 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100일 관음기도였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자면서도 관세음보살, 깨어서도 관세음보살, 걸어가며 관세음보살, 절을 하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모진 게 사람의 목숨이라,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삐쩍 말라 있었지만 용케 100일을 견뎌냈습니다.
100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던 처녀가 잠시 졸았던지 하얀 옷을 입은 귀부인이 한 분 나타났습니다. 그 부인은 옷을 아주 잘 차려입었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전설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천녀들이 입는 하늘거리는 의상이나 한복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양장이나 정장 정도로 기억합니다.
그 귀부인은 약병 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이 약을 먹으면 나을 거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 병에는 영어로 뭔가가 써져 있었는데, 몸이 아픈 그 처녀는 약병에 붙어있는 그 이름을 읽어 기억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녀의 가족들은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으나 그 약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약을 구할 수 없어 깊이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꿈꾼 지 일주일 쯤 지난 날, 몸이 아픈 처녀는 미국에 유학 가 있는 오빠의 소포를 받습니다. 그 소포를 열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처녀가 꿈속에서 받은 그 약이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포에는 오빠의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오빠도 일주일 쯤 전 어느 날 밤늦게 공부하다가 잠이 와서 책상에 앉아 잠시 졸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난 데 없이 하얀 옷을 입은 한 부인이 나타나 말을 하는데, 어느 병원에 가면 이러이러한 이름의 약이 있는데, 그 약을 빨리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주라는 내용이었답니다. 정신을 차렸으나 여느 꿈과 달리 마치 생시를 본 것처럼 선명하였답니다.
다음날 아침, 꿈에서 가르쳐준 병원으로 가서는 이러이러한 약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의사는 깜짝 놀라며 그 약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하더랍니다. 처녀의 오빠는 꿈 이야기를 하고, 한국에 있는 여동생이 이러이러한 증상으로 시름시름 앓아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마지막으로 지금 100일 기도를 하는 중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인 의사가 말하기를, 이 약이 막 개발되어 아직 시중에는 유통이 되지 않고 있고, 이제 처음으로 이 약을 내놓는 것인데 이 약을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여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랍니다. 더구나 이 약은 여동생이 앓는 것과 같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처녀의 오빠는 그 의사의 도움으로 약을 구해서 서둘러 사연을 적어 한국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약을 먹은 처녀는 하루하루 병세가 호전되더니 마침내 병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20년 쯤 전에 본 내용이라 세세한 표현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강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워낙 충격적인 글이어서 오랜시간 제 기억의 바다에 그렇게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한 때 당신의 외아들이 노름에 빠져 제 정신이 아닌 적이 있었다. 초저녁에 십만원을 가지고 가서 몽땅 잃고, 두 번째도 만회를 실패하고, 세 번째 찾아왔길래 노보살님이 아들한테
“ 이제는 나를 죽여도 더 이상 돈을 못 주니 알아서 해라”고 말하고, 워낙 분하고 원통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관음주력을 약 한 시간 반이나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잠에 빠져 들었다고 했다.
이때 꿈에서 고깔 쓴 할머니가 나타나더니 돼지새끼 세 마리를 “옛다!” 하면서 던지는데 한 마리는 치마폭에 싸이고, 한 마리는 무릎에 떨어졌다 방바닥으로 구르고, 마지막 한 마리는 방바닥에 바로 떨어졌다.
이 보살님이 약 두세 시간 잠을 자고 깨어보니 어느덧 새벽인데 조금 있으니까 아들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여기 있소”하면서 십만 원짜리 세 뭉치를 던지는데, 한 뭉치는 치마폭에 떨어지고, 또 한 뭉치는 무릎을 맞고 방바닥에 떨어지고, 마지막 한 뭉치는 바로 방바닥에 떨어지더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