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를 두다
심전도 그래프를 본 닥터는 "부정맥이 보입니다, 빨리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니 스트레스 데스트 등 몇 가지 첵크를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위급한 상항이라지만 이번 여행을 갖다와서 정밀 체크를 받으면 되겠지 하면서 데스크로 나오니, 그곳 직원은 병원에 내일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으니 보호자를 대동하고 가야만 한다고 한다.
내일? 나는 내일 처형 부부와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니 내일 이 시간이면 워싱톤 디시 근처에 있어야 하는데! 맨하튼에 있는 병원에 있으라고?..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마음이 급해져 3, 4일 이후로 미룰 수 없느냐고 닥터에게 되돌아가 물으니 두 말할 필요없이 무조건 내일 병원에 가라고 은산철벽같은 메아리가 울린다.
망설임을 그치지 않는 나를 본 한인 간호사가 "여행은 다음에도 갈 수 있지만, 건강을 해치면 영원히 못 갈 수도 있어요." 하며 한마디 거든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내일 병원에 간다는 페이퍼에 싸인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노오란 하늘이 빙글 돈다.
부정맥이 그렇게 무서운 증상이란 말이지.. 어떻게 하나?..
여행사에 연락해 처형이 꼭 가고 싶어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만이라도 하도록 방법을 취해야 하나..
만일 나 없이 간다면 아무래도 세단을 렌트해야겠지..
오랜만에 처형 부부가 온다고 멋지 호텔을 예약했는데 취소는 안 되겠지..
...
일단 하나 밖에 없는 짝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욕 시내를 관광하고 있던 일행은 당연히 난리가 났으리라. 내일 출발하기로 한 여행에 라이드와 가이드할 사람이 사고가 생기면 그 여행이 어떻게 되는가.
이런 저런 의견이 나왔겠지.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자책에 몹씨 미안하고 후회가 밀어 닥친다.
진작에 건강을 챙기며 정기 검사를 받을걸..
어지러운 몸과 마음이다 보니 잘 알던 길도 헷갈려 몇 번의 실수 끝에 집에 도착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속을 젓고 다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여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의 순간으로 정리 된다.
순간의 결정이 평생을 좌우한다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 된 것이다.
무지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처럼 부정맥이 얼마나 위험한 증상인지를 모르는 나는 닥터의 말을 무시하고 여행하기로 작정했다. 그것은 분명 무리수처럼 보였지만 설사 여행 도중 내 몸에 어떤 헤프닝이 생겨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게 사람 사는 도리라 여기면서.
해서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디세우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워싱톤 디시와 나이아가라 폭포 2박3일 여행은 나를 될 수 있는 한 피로하지 않게 하려는 내 짝과 처형과 여 조카의 배려 속에 즐겁게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라이드와 가이드를 담당한 자가 이곳에 낯선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는 조금 이상한 여행이 되었지만. 가족과 가까운 친척의 고마움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실감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 여행이 되었다.
이번 여행은 영리한 조카 덕에 워싱톤 디시를 관광할 때 꼭 보아야만 하는 박물관이 곳곳에 있음을 알았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우리 일행은 일생 처음 서울 구경온 촌사람처럼 팬스 밖에서 백악관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어느 곳인가를 지나는데 태극기가 걸린 한국 영사관 앞을 지나게 되니 사진 한 장 박고 가잖다.
맞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인이 아닌가.
디시에서 북쪽으로 15번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풍광은 산과 크지 않은 강이 흐르고 있어 서울서 온 처형부부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고 한다. 그래, 70년대 서울서 소양강 댐으로 가는 길이 이랬던 것 같다..^^
마지막 서울을 떠나던 그해 겨울 개운사 청년 회장과 소양강 댐을 찾았을 때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왜 둘이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버팔로에서는 다른 볼 것도 없다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만 배를 타고 달랑 구경했다.
수 년 전에 배를 탔었지만 내 마음이 달라져서인지 배를 타고 폭포의 빗물같은 물에 젖는 감흥이 아주 짜릿했다.
여행지를 꼼꼼이 사진과 비데오에 담는 형님도 이곳의 빗물은 겁이 나는지 카메라를 우비 속에 집어 넣고, 가족과 감탄 속에 폭포의 맛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나이아 가라의 뜻은 네 개(=나이아)의 강(=가라)이란 뜻으로 아메리카 인디언 말인데, 인디언의 조상은 한인과 같기에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몽고와 한국의 언어를 연구하는 어느 목사가 그랬다.
가까운 사람들과 여행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에전엔 정말 몰랐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한국 운전면허증 밖에 없는 형님과 어린 조카에게 운전을 맡기는 게 미안했지만, 짝이 고집을 세우는 바람에 난 편하게 차 안에서 대화를 즐기며 여행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아주 편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난 심장 전문 닥터의 진찰을 받았다.
부정맥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 스트레스 테스트 등 몇가지 검사 받을 계획을 짜 주었다.
전문의는 한시라도 빨리 정밀 테스트 받으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2박3일 장거리 여행을 갖다 왔다고 하는 데도 별 놀라운 기색도 없다.
그럼 내 여행은 무리수가 아니었다는 게 아닌가. 괜히 나만 호들갑을 떤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사실이 무엇이든 그 당시 나로는 서는 아주 위험한 결정을 했고, 그것을 알고 있는 일행은 솔선하여 아니 스트레스를 참아가면서 즐거운 여행을 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번 여행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를 깨워준 잊지 못할 여행이 되었다.
첫댓글 이런 내용을 벗에게 말하니.. 그가 하는 말..
- 의사 말을 아직도 그대로 믿나?.^^ 철따구니 없긴..
해서 말했습니다.
- 내가 잘못 살아와서 인지는 모르지만, 환자가 의사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 말을 믿어야 하지?..
근본불교를 공부하겠다는 자가 경전을 의심하면서 공부할 수 있나?..
그러자 친구가 말합니다.
- 내 말 뜻은 경전은 진실만을 담고 있지만, 의사 가운데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환자에게 공갈치는 자들이 있다는 거야. 그 의사가 그런 의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중요한 결정을 할때는 반드시 second opinion을 받아야만 하는 거 아닌가.
의사의 오진이라기 보다는 즐거운 여행과 자연 속에서의 생활이
질병에 대한 자기면역력을 회복시킨 것은 아닐까요..... ......... (()) .........
ㅎㅎㅎ..
님의 말이 정답이라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