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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이 섬은 군사적 요충지.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곳이고 또한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이고
서해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자리잡아 있으면서 관문의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오고
갈 수도 없는 군사적 긴장감으로 감돌아 동쪽 한강 하류와 만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가 바로 교동도다.
모르고 한 일이긴 하나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교동도는 고려시대의는 중국과 무역을 할 때 삼남지방에서 쌀을 싣고 개성으로 가던
조운선과 수송선이 반드시 통과해야 했던 중간기착지이라
왜구들이 교동도는 황해도 연안과 개경 주변을 약탈하기에 딱 좋은 중간기지였다고 한다
이에 고려 공민왕에는 왜구들의 선박 213척이 교동에 정박했으며
우왕에는 왜구의 침입을 피해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등 피해가 극심해 관방체계를 잘 구축하기
위해 고려 조정에서는 수군을 양성하여 교동과 인근 연안을 방어했고
조선 태조 때는 육군과 수군을 겸하는 절제사를 파견했고 이후에도 교동에 주둔하는 수군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다.
이런 노력의 하나로, 그 시절 남산포에는 경기수군의 배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정박했을 것이고
이 배들을 묶어두었던 계류석은 세월따라 모두 사라지고 이제 단 하나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계류석은 어느 집 담벼락에 버려진 듯 홀로 서 있다.
계류석은 미물이지만 제 자리를 찾고 싶어 지금도 혼자 외롭게 울고 잇지나 않은지...
진골님 감사합니다.
무너진 흙벽을 담쟁이 잎이 넘치도록 벽을 덮고 있다. 싱그러운지고 ...
난 이곳에 오자 마자 느낀 것은 물에 둘러 쌓인 이곳이 볼 것이 물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막상 와보니 푸름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푸르고 너무나 기름지고 풍요롭고 넉넉한 모습을 ... 영국님 감사합니다
사람도 안 보이고 바다 건너 산에는 운무가 춤추고 새들만 날아 다니는 한적하고 고즈넉하기
이룰데 없는 이 향토색 짙은 소박한 셤에는 어찌 이리도 푸름이 풍성한지 ...
물론 비도 와 빗물에 젖은 더욱 짙은 색깔을 드러내는 녹음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넘쳐나는 푸름은
딴 곳과는 확실히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현일님 사진 감사합니다.
평지에 잡초
들에 곡식
산에 숲이 우거진 모습은 어딜 가나 장관을 이루고
연초록에서 짙은 초록으로 수천 수많은 형형 색색의 푸른 빛깔들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난 고구마잎이 칠칠하게 잘 자라는 시뻘건 흙을 보고
오오! 땅이구나
해풍이구나
바닷물이 실어다 준 퇴적물이구나
사람이 적은 탓으로 영국님 감사합니다
오직 하늘과 바닷물그리고 바람이 키우고 있는 자연의 순박함이구나
저리도 진초록을 뿜어 낼수 있는 것은 ...
잘 정리되어 깨끗하고 넉넉한 이 넉넉한 푸름에 반했다 바위솔님 감사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논의 모
쭉쭉 잘자라고 있는 옥수수
흙담을 기어 올라가는 힘찬 담쟁이들
언덕에 비에 적시고 있는 억새풀
그 모습
그 색깔
그 향기를 어디서 맡을 수 있으랴
소박하고 외진곳에서 투정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영혼은 이리 기름지도록 윤택항 것이다,
우린 그 현장을 대륭시장에서 발견 할 수 있었지만...
영국님 감사합니다
'성은 허물어저 빈터인데 월색만 고요해 글 사진 인테넷 복사
폐허에 서룬회포를 맣하여주노라 '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약 400년된 교동 읍성의 남문.
인천시 기념물이며 한 도읍을 둘러싸아 외부의 칩입을 막던 곳이다
인조 7년에 쌓았고 영조와 고종때 고쳐 쌓은 곳으로 3개의 문이 있었으나 동문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흔적도 없고 그나마도 1921년에 무너져 홍예분만 남은 남문인 유랑루만 남았다한다 .
강화도의 청일 전쟁때 을사보호조약 현장으로만 알고 있었던 곳.
교동도의 아픈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현일님 감사합니다.
천장에는 어찌 이 돌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잇어 있을까?
내려 앉으려는 힘과 떠 받히는 허공의 힘의 절묘하게 맞아 천장의 돌이 원을 지탱하고 있겠지
요철처럼 규격에 따라 짜 맞춘 돌의 맞물림이 정교한 것을 볼 수 있다.
영국님 감사합니다
성벽 안쪽 벽에는 南樓(남루) 바같벽에는 삼도통문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나 사실을 알수가 없다
아마 강원도 충청도 황해도의 삼군을 통괄하는 수군을 설치하는 것인가? 인터넷도 잘 모르겠다 하네요
그나마 남아있는 성곽은 민가의 담장으로 쓰이고 있거나 잡초에 묻혀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난 역사의 산실인 문화유적이나 유물을 대하며 반가움과 추억의 술회를 풀어보지만
그보다 더 首丘初心으로 역탐방을 찾는가 고향의 벗보다 더 정겨운 회원님들을 봅니다.
아마도 우린 조상으로 부터 혈육과도 같은 비슷한 유전자물질을 갖고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반가운 분들
멋진 분들
돈, 고향, 학벌, 나이도 필요없고 오직 사랑과 우정으로 뭉쳐진 우리회원님들
반기는 미소들이 우중에도 환한 꽃을 피우십니다
진골님 감사합니다.
푸른 갈대가 멋떨어지게 자라는 곳을 찾아 올라가니 연산군 거적지가...
교동은 연산군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아니더라도 유독 많은 왕족들의 유배지.
교동이 왕족 전용 유배지가 된 것은 늘 대규모 군대가 주둔해 있고 왕도인 송도나 한양과가까운 섬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함.
특히고려 무신정권 하에서 21대 왕 희종이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발각되어 교동으로 유배되었고
조선 시대 들어서는 세종의 아들이자 수양대군의 동생인 안평대군이 그의 아들 우직과 함께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살해됐다.
광해군의 형이었던 임해군 또한
진도로 유배되었다가 교동으로 이배된 뒤 죽임을 당했다.
광해군 7년에는 인조의 동생인 능창대군이 교동으로 유배된 뒤 불태워져 죽었고
그 외에도 광해군과 광해군의 왕비였던 유씨와 왕족이었던 은언군, 익평군, 영선군 등이
교동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 온 조부 은언군을 따라왔던 철종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교동도에 살았다.
하지만 이 땅 어느 곳처럼 교동 또한 역사 유적은 거의 자취도 없다.
과거 관청이 있었던 읍내리에는 교동읍성 성문 한 곳의 홍예문만이 간신히 남아 있다.
이 읍내리에 조선 10대 왕 연산군의 유배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사진은 연산군 적거지(燕山君 謫居址)
쫓겨온지 6개월? 이라 하던 가요
어자피 돌아가셨지만 딴 곳도 아닌 이곳에 오신 것은 얼마나 잘한 일인가요
하늘의 구름을 보며 사람의 인심 변하는 것이 구름보다 더한 것을 느꼈을 것이고
바람을 보며 수시로 스쳐가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너른 바다를 보며 호연지기의 꿈이 하나의 물거품인 것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
영욕과 오욕으로 얼룩져 평생을 보내느니 잠깐이나마 圍籬安置는 되었을망정
자연을 벗하며 맑은 공기을 마시며 푸근한 푸름 속에 묻혀있는 것도 좋았으리
연산군이 엄마 없이 외롭게 자라는 손주를 제발 곱게 봐 달라고 인수대비에게 눈물로 부탁하던 성종의
부성과 엄마의 정이 그리워 눈물이 흘리며 궁궐이 있는 서울을 바라볼 수 있고
햇살이 따듯하게 비치는 곳에 집터가 있었다 하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철종임금님도 이곳에서 살던 곳이고 보면 많은 쫓겨온 분들의 한스런 눈물로 인해
이 교동도 바닷물은 더 짜지지 않았는지...
멈춰진 시계앞에 아기자기한 옛 이야기가 전설처럼 절로 흘러다니는 대륭시장 진골님 감사합니다
대룡시장은 6.25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온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 따 만든 골목시장이다.
우리가 옛날에 겪었던 이층 다락방
그래도 이층 다락방문을 열면
하늘의 구름이 보이고 운무 춤추는 산이 보며 옛날 고향 산천을 보며 꿈속에서나마 그리던
고향식구들을 만났으리라.
영국님 감사합니다
지금은 1960년 영화세트장 같은 모습의 대룡시장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한다.
또한 이곳에서 제비들의 나는 모습도 영국님 감사합니다
헙수레한 집 추녀끝에 제비집도 볼수 있었으니
실향민들의 설움을 서로 보듬어주고 달래주고 있구나 한는 생각으로 바로 고향이 바로 이곳
영국님 감사합니다
이곳에는 내가 의자 타고 앉아 깍아주시던 이발관, 동산약방, 신발가게 허술한 식당 거북당 빵집
잡동사니 파는 구멍가게 다방등등 얼마나 재미있는곳이든지
.
뻥이요 강낸이 튀기는 구수한 냄새가 나는 벽화옆에서 ... 갑용님 감사합니다.
난 이런 시장이 있구나 하며 탄식이 나온다
내 아버지와 오빠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정겨운 이곳
작고 초라하고 소박하고 겸손의 이곳 가게와 주민들을 보면서 그림에서 저 꼬마 아이들 중 하나가
나란 사실을 것을 ...
어디가서 이보다 더한 느림의 미학을 찾을 것이며
이 청정 지역
이 소박한 사람들의 낮은 삶을 두고 우린 어디서 힐링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둘러보고 있엇다.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리면서 형성된 교동도
아나로그 시대의 예것의 소중함을 그대로 우리들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텐데...
이제 생각도 못할 근사한 연육교가 놓여 이같은 청청지역이 얼마나 변하지 않을까
오늘 와 본 깨끗하고 잘 정리된 내 기억속에 자리잡은 추억이 또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 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인 교동향교. 글 인터넷 참조
이 곳은 약백 년 전 그러니까 고려시대에 축조됐다고 함
무학대사, 낙공선사, 지공선사 등 공력 높은 큰 스님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으며고려 때 목은 이색이 교동을 좋아했고, 교동에 오면 화개사에 머물며 수양도 하고
글도 썼다는 기록도 있음
이곳에 들어가면 엄청난 작품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데 아쉽게도 보지를 못했으니
명륜당 뒤에 위치한 대성전, 이곳엔 수백 년 된 공자상이 모셔져 있는데
충렬왕 12년에 유학자인 안유가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또 박사 김문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공자의 화상과 제기 등을 이곳에 봉안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개경과 전국에 문묘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영국님 감사합니다.
영국님 감사합니다.
연미정에서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수 없음
고려 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조선 중종 5년 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한다.
인조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안과 밖의 평화로운 연미정 갑용님 감사합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날이 맑으면 이곳에서는 이북도 보일 것이고 ...
서 있으니 북녘 구름도 바람도 천천히 몰려 와 인사를 하길래 나도 안부를 전했다.
그 어느 누구도 이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인사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아서 ...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함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으며 과거에
민간인통제구역이어서 2008년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었다고 한다.
식후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잇었으니 ..
이 여유 한가로움이 영혼을 한 껒 살찌게 하고 있다.
갑용님 감사합니다.
하늘은 바다를 삼키려 으르렁 거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바다는 하늘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뒤척이는
하늘과 바다가 한몸이 되어 뒹굴어 싸우는 모습이 흡사 泥戰鬪狗를 하느 ㄴ모습이라면 너무 할까????
저 배들도 숨죽여 이 싸움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나니...
지금 물만 소용돌이 속에 같이 미쳐 갈곳을 몰라 이리 저리 같이 펄펄 뛰고 있으니
어디로 몰리는 것일까 땅 끝일까? 하늘 끝일까?
정선의 그림집을 보면 양천현감?이 되어 이름 새벽에 마루 끝에 앉아 있으면 한강의 흐르는 물과
밀고 올라오는 바닷물이 서로 밀며 싸우느라 "쏴~아 쏴~아" 하고 거친 솔바람 소리로 매일 싸우는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 않은가 난 지금 하늘과 바다가 서로 머리를 들어밀며
물어 뜯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한 끝에서 이 환상적인 풍경이 바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바닷가에 서서 갑용님 감사합니다.
말이 아닌
글이 아닌
경계가 지워진 하늘끝을 바다끝이 표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난 지금 어느 곳으로 잦아들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우측에 있는 산이 화개산이라고 한다.
시간이 되면 이곳에서 올라가 하늘이 되어 구름이 되어 운무와 같이 춤추며 내려 보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비오는 날 바닷가의 운치를 증기고 잇다.
동해안처럼 맑고 푸른 물이 아니라도
파란 하늘 흰구름이 두둥실 떠 다니는 하늘이 아니라도
넓고 반짝이는 모래가 아니라도
오늘 우리 이 고적하고 고요한 바닷가를 우산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묘미 또한 달라 이 비오는 날 여행의 흥취는귀한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다.
끝으로 잍터넷을 뒤져 강화십경을 적어보니
말 그대로 자연 그 자체인 것을
내 생애에 이 아름다움만 제대로 느끼며 살아도
우주의 아름다움 진솔함을 다 찾을 수 있으리
어디가서 무엇을 더 보려하나 하는 생각으로
별안간 교동도의 애착이가 발걸움이 안 떨어진다.
그래도 서울서 가까우니 혼자 자주 찾아오지 하는 위로감으로 아쉬운 내 마음을 토닥인다.
1.南臺霽月 ;남산대에서의 비개인 날에 뜨는 달 ---강화산성 남장대를 뜻합니다.
2.北場春牧 ;북장에서 몸에 기르는 말 -- 강화읍 북산 - 다른말로는 송악산 입니다.
3.鎭江歸雲 ; 진강산으로 돌아오는 구름
4.積石落照 ; 적석사에서 바라다 보는 낙조
5.鰲頭漁火 ; 오두돈대에서의 고기잡이 불
6.燕尾漕帆 ; 연미조범 ; 연미정의 조운선 -- 마포로 밀물때 올라가려고 기다리는 전라도에서 올라오는 조공배
7.甲城列焦 ; 갑곶 성에 벌려 있는 초루
8.普門疊濤 ; 보문사에 밀려오는 파도
9.船坪晩稼 ; 선두평에서의 늦 농사
10 .星壇淸眺 ; 참성단의 맑은 조망
1경에서 10경까지의 절경을 훑어보면 '다 하나같이 우리 민족의 서정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환상의 그림이 그려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글을 마친다.
오늘 같이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며 교동도 여행의 편집을 마칩니다.
사진 회원님들, 사진 글 인터넷 참조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 2일밤 12시에 낭만 씀
첫댓글 새역사를 재조명해보는 숨결을
잠시나마 명상에 잠겨봅니다 ^^
올려주신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구름이 잔뜩
아마 장마권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ㅡ
휴일 잘보내세요 ?
낭만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교동도 강화도를 한바퀴
도는 감명깊은 기분입니다
선배님과 함께한 역탐이 새삼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나 함께 할수있기를 바라며
건안하십시요 ^^
아고~~낭만님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가슴으로 강화도를 돌아보셨군요.
닮고 싶어요.
와, 대단하신 낭만님!
정성스레 올려주신 글, 감사히 마음에 담아 갑니다.
항상 행복함이 가득하시길. ^^
낭만선배님의 가슴으로 보시는 눈빛이 부럽,부럽입니다
후기 글 읽는 감동, 아실랑가요?ㅎ
감사합니다~~^^*
선배님 글은 항상 정성 만점 !!
제가 즐기는 [ 강화 나들길 ] 정말 아름다운길 강화 입니다
긴글 읽으며 머리로 다시 탐방 합니다. 감사
우리동행에보배같은 낭만님에 글은 우리동행에자긍심을 높여줍니다 낭만님에잘정리된 글을읽으면서 다시금 그날에 역탐을 회상해봅니다~~~
이번에도 자기만의 감성과 탁월한 재능 솜씨로 교동도를
여러분들께 다시금 재확인시키는데 큰 성과를 거두신것 같습니다 우리도 보람찬 시간을 갖게되어 마음 뿌듯하네요 감탄하며 배우며
수고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역탐방은 낭만님 참석하셔야 한다니까요..ㅎ.
후기 사진과 설명 잘 보고 읽고 공부했습니다.
감사 드려요.
선배님의 역.탐방설명... 어릴적 순정 만화에 빠져 읽어내리듯이 숨 한번 안쉬고(뻥) 읽었습니다 . 마치 소설에빠져든듯 넘 재밌고 우찌 이렇게 글을 잘표현하시고 잘 쓰시는지 정말부럽고 존경합니다 . 갈켜주삼 ....ㅋㅋ선배님 ...물놀이날 뵙겠습니다 . ㅋㅋ
섬세하게 올려주신 역사 다시 한번 교동에 가있는 느낌이 드네요 수고 하심에 감사 드림니다 낭만 선배님 화이팅 입니다 역사공부 다시한번 하고 갑니다 꾸 뻑 ^*^
강화 교동의 나들이 글 수고하셨습니다. 시간이나면 찾아가고싶은 곳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