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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명
자기혐오(自己嫌惡, self-hatred)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행위다. 자학과 비슷하다. 반대말은 자아도취. 이것이 극대화되면 자해와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외적으로 자뻑을 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자기혐오를 가진 경우도 있다. 열등감이 크면 클수록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내면의 방어기제로 허세를 부리거나 남을 무시하는 것에서 안도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또는 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거나 본인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기를 바라지 않아서 자기혐오를 내색하지 않기 위해 겉치레로 긍정적인 언행을 하거나 자뻑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지 않았거나 깊은 관심이 없는 타인이라면 이런 식으로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의 내면에 대해 알아채기는 어렵다.
자아비판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2. 원인
자기혐오는 어린 시절의 충격 혹은 어떠한 사건에 의한 트라우마로 생겼을 수도 있고, 연속된 실패로 인해 좌절해서 생겼을 수도 있다. 심각한 우울증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기분 나쁘다는 편견을 가지고 대한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완벽주의자나 가정적인 학대를 받은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자신이 목표하는 이상과 자신의 간극이 클 때 보통은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기혐오로 귀결된다.
또 부모로부터 넌 남보다 못하다, 저 자식은 잘하는데 왜 너는 쟤보다 못하냐는 말을 들으며 자라나게 된 악영향도 한몫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부모라는 존재마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고 본인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쉽게 입으면서 자기혐오를 일으키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며 본인 또한 난 남보다 잘 할 수 없다, 남이 나보다 더 잘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자라왔던 인식을 가지면서 이런 경우일수록 본인의 자신감과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분노가 억압된 자녀들도 자기혐오를 하는 성인으로 클 수 있다. 분노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그러나 이를 표출하지 못하고 찢으려고(fragment) 하는 사람들은 분노의 화살을 자신에게 보내어 해소한다. 분노는 식은 후,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죄의식과 공포, 자기혐오로 변질된다.
유전적 요인도 한몫 한다. 미국과 영국 학자들의 연구에서 게으름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는데[1], 이 유전자를 가진 쥐는 움직임이 적었고 그렇지 않은 쥐는 활발했다는 것이 연구 결과이다. 그리고 유전자이기 때문에 유전된다. 근데 이게 쥐만 그런게 아니고 사람도 부모가 게으르면 자식조차도 심지어 평생 못보고 살아도 비슷해질수 있다. 그리고 이걸 인지한 경우 자기혐오에 빠질수 있다.
2.1. 남의 자녀 및 형제자매와의 비교
자기혐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부모라는 사람이 자기 자식보다는 남의 집 자녀들을 보고 과찬을 하거나 칭송을 하며 자기 자식 보고 너도 쟤들 본받아라, 쟤들만도 못하냐, 쟤들처럼 잘나면 얼마나 좋아하는 것이다.
부모들에게서 남의 집 자녀들이 잘하는 것을 보면 과찬하고 칭송하는 성향이 짙어서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저 녀석처럼 되어봐라, 넌 어떻게 쟤보다도 못해, 무슨 애가 옆집 애보다 못한지 답답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될수록 자기혐오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부모들은 답답하고 남의 애들이 잘해서 과찬을 할 수 있겠지만 자아 능력으로 지내는 자식들 본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약할수록 자기혐오에 빠져들며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에 빠져서 자기 부족을 주장하고 결국에는 우울증을 앓게 된다.
지나치게 남의 자식들이 잘하는 것을 너무 내 자식이 못한다고 비교를 할수록 자식의 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자기혐오에 자기부정, 심지어는 우울증과 비극적인 면모를 부를 수 있으며 자존심 또한 약해져서 자기 자체를 부정하게 되어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부모들은 그런 자식의 모습을 보면 "부모가 자식 잘 되라고 이런 소리 하면 넌 쟤를 보고 자극 받아서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어떻게 생각이 틀려먹었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거니?" 라며 오히려 더 안 좋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
또 본인의 자신감을 약하게 만들며 도전하는 데에도 소극적이거나 두려워하고 어차피 나는 남들보다 못할 텐데라는 잘못된 자아인식이 스며들어서 항상 자기는 남보다 못하다는 고정적인 인식에 뿌리박히게 될 수 있다. 특히 남이 아닌 부모가 그렇게 할수록 자기혐오가 팽배해져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되고 남에게 지게 될 것이 뻔하다는 인식을 낳게 해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데 부모라는 이들이 자기 자식을 남보다 못하다며 억압하고 외면하면서 남의 자식을 너무 과찬하거나 남의 자식보다 못하다고 지나친 지적을 해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 자기 자식의 말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남의 집 안 자녀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거나 구별도 없이 긍정적이라고 바로 받아들이며 차별 대우를 하는 일부 부모들의 문제 또한 자기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 자식인 본인의 말은 가치도 없다며 외면하는데도 정작 남의 자녀들이 하는 말은 똑바르다거나 유용하다며 무조건 옹호하고 받아들이는 이중적 태도 또한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기는 남의 자식들보다 못하다는 평생의 고정 인식이 박혀서 자신감을 더욱 잃게 해준다.
현대 사회의 아이들은 상호 간 경쟁의식이 심하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경쟁에 있어서는 스스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서로 이기려는 자존심 대결을 하는 경우도 있고 남의 자녀와 비교하는 것을 불쾌해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내는 경우도 있으므로 되도록 적당한 선에서만 하는 것이 좋다. 또한 현대사회는 입시경쟁은 물론 청년실업과 구직난 등으로 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라 취직 시험이나 공직 시험에 너도나도 뛰어들며 경쟁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남의 집 자식들과 비교하는 것 또한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들을수록 예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격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자신의 형제자매와도 비교받아 자기혐오를 하는 경우도 있다.
Self Hating의 경우 자신과 같은 특징을 지닌 사람에게 확장될 수도 있고 이런 경우엔 동족혐오가 된다.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 집단이 유대인(Self-hating Jews), 흑인(Self-hating Blacks), 게이(Self-hating gays/lesbians) 등이 있다.
유대인 자기혐오는 현대에 이스라엘 관련해서 일어나는 것도 있지만, 기원을 보면 주로 19~20세기 서부/중부 유럽에서 유대인의 사회참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반유대주의와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트겐슈타인이 개인적으로 좋아했다는 오토 바이닝거가 유대인 자기혐오 사상가로 유명하다. 홀로코스트 당시 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경찰들을 자기혐오 유대인에 포함하기도 하는데, 이건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흑인이나 영국 흑인 등 백인 사회에서 사는 흑인들 중에도 백인의 가치관을 내면화해 흑인이란 정체성을 혐오하는 부류가 있다. 흑인이면서 소수자 우대에 반대한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등이 간혹 진보측에서 흑인 자기혐오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성애자 집단의 경우도 자신은 게이지만, 동성애자들의 인권 운동, 거리축제 등은 혐오하면서 '조용히 살자'라고 주장하는 부류들이 많다.
한국의 자국혐오자나 한국계 출신 혐한들의 경우 한국인과 한국의 사회문화에 대해서 혐오하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된다.
4. 문제점
자신의 단점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한 후회나 비하를 반복하다가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지면, 이기적인 언행을 보이거나, 당장 자신의 심적 안정을 위해 겉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쉽다. 겉으로 보기엔 고집이 센 사람과 구분이 어려울 수 있지만, 상담이나 심리검사 등을 하면 차이점이 드러나며, 이런 유형은 자신의 단점을 지적받거나 자각했을 때 자신이나 타인에게 또다시 혐오받고 좌절과 후회, 자책을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지므로 그걸 방어하려는 기제로 공격성을 보이거나 회피한다.
피부색, 외모, 키, 장애, 성별 정체성 등처럼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요소가 자기혐오를 유발하는 원인인 경우, 해결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혐오의 강도가 대단히 높다. 단점은 단점대로 계속 남고 자기혐오는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시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에 여유가 없고 비협조적이게 되기 쉽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은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타인과 적절한 소통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자기애가 너무 부족하면 타인과 멀쩡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심리에 있어 자신의 생각을 많이 투영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혐오를 앓는 이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자신의 멋대로 재단해 부정적 해석을 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을 안 좋게 평가할 거라는 피해의식을 가져, 타인 혐오도 가지고 남에게 피해 주는 유형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도 존재한다.[2] 장기간 동안 자기는 무능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어쩌다가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 급속도로 자존심이 낮아지게 되는 사람 등 그러한 시기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시기를 가정 탓을 한다며 하찮고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 역시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증상을 겪은 이들에게는 중요한 시기이다.
자기혐오가 극에 달하면 자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길 태어나게 했단 이유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자긴 태어나기 싫었는데 태어났다면서 부모를 소송한 사람도 있다. 게다가 극단적일 경우 못죽어서 사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
거울 뉴런세포를 이용한 설명도 있다.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학적으로 자기 자신의 기분이 나빠지며, 이 때문에 인간관계와 연애에서 피해를 입는 것이다.
상대가 관심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때문에 짜증 내는 면도 있을 수 있다. A와 B가 있고 A가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한다고 하자. B 입장에서는 그의 자기혐오 기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무리한 요구이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스스로도 충분히 인지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사색하는 데 사용한다. 자기혐오를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은 오히려 방해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A에게 B가 마냥 다른 주제를 들이밀어도 A 입장에선 거부하게 되기도 한다.
자기혐오를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자기혐오의 궁극적 이유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혐오까지 오게 만드는 원인들은 대부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특정한 원인으로 인한 자기혐오를 시작 → 원인을 해결할 수 없음 → 해결할 수 없기에 다시 자기혐오 순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5. 치료법
섣부른 접근은 자기혐오를 더욱 부추긴다. 자기혐오를 하는 특정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는 되려 무능감을 부추겨 더 큰 자기혐오를 일으킨다. 외부의 사건을 자기혐오자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의 환경이나 문제를 바꾸겠다는 접근보다는, 자기혐오를 하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이 필요하다.
자기혐오는 하나의 증상이지만 증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동은 학대에 대한 잘못을 자신이 사랑하는 부모 대신 자신 탓으로 돌린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날 때린거야." 부모는 아이의 절대적인 안전 기지이기 때문에, 아동은 안전한 장소가 위험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싶지 않아 한다. 중요한 사람에게 불만을 가졌을 때도 자기에 대하여 나쁜 느낌을 갖는다. "아빠는 이렇게나 우리 가정을 위해 헌신하시는데 왜 나는 아빠가 싫은 거지? 난 나쁜 놈이야."
무능감 또한 자기혐오를 일으킨다. "나는 학과가 적성에 안 맞는데 다른 애들은 다 열심히 스펙 쌓고 취직 준비하는구나. 난 뒤쳐졌어." 무능감이 심해지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해지면서 현실로부터 도피하거나 우울에 빠져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또다시 채찍질한다.
역경을 이겨낸 사례의 주인공과 자신을 비교
자신의 처지가 주인공보다 조금이라도 좋다고 생각함, 또는 자신의 처지가 주인공보다 더 나쁨.
"나는 더 좋은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내가 마주한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거지?", 또는 “저 주인공은 나보다 나으니 그나마 저렇게 된 거지만 나는 저보다 훨씬 안 좋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더더욱 혐오스럽다."
자기혐오자에게는 모든 파이팅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릴 빌미로 작용해 악순환을 부추긴다. 운명을 신봉하거나 결정론자일수록 이 정도가 심하다.[3] 당사자로서는 정말 환장할 수밖에 없는 게, 이를 자각하고 진심으로 벗어나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더 심각하게 자기혐오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대상의 주변 사람으로서 그의 증세를 완화시키고자 한다면, 섣불리 칭찬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혐오를 크게 겪고 있는 사람이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반대로 부정적으로 듣는 경우가 꽤 있다. 예를 들어 일 잘한다는 식으로 남들 앞에서 칭찬을 듣더라도 "내가 일 못하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비꼬려고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저러는 건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무엇보다도 서두르면 모든 일을 망친다. 자기혐오자에게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을 토대로 뭔가 큰 변화를 일으키고자 할 경우, 자기혐오자는 현실의 한계로 인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따라서 자의가 다분한 행동을 삼가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고치려 들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심리상담 장면에서는 칭찬하거나 으샤으샤 힘내자고 부추기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라고 등을 떠밀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기혐오를 마음껏 하도록 허용한다. 자기혐오를 하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타당화하고 충분히 그 감정을 깊게 느끼도록 한다. "당신이 스스로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 바뀌고 싶은데 못 바뀌어서 힘들어하는 것, 기껏 힘들게 변화했는데 도로 되돌아가버려서 좌절하는 것 모두 자연스럽고 당연한 감정이에요."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타당화 받는 것을 통하여 스스로를 서서히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이와 더불어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도 함께한다. 이것은 직업재활훈련이 될 수도 있지만, 상담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으로는 정서를 조절하는 안이 있다. 자기혐오자들은 정서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담실에서는 과거 혹은 최근에 있었던 외상 경험을 떠올리게 하여 정서를 끌어올리게 한 뒤, 이를 상담실에서 안정시켜 정서를 조절하는 방법을 체득시킨다. 마음챙김과 같은 요법을 시행할 수도 있다. 정서를 스스로 조절하는 경험을 하면 내담자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갖게 된다.
6. 창작물
창작물에선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상대방이 극복시켜주거나 반대로 주인공이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상대방을 구해주는 전개가 자주 나온다. 또한 작중에서 커플로 이어지기도 하거나 부정적인 경우 흑화 전개로 이어지는 등 꽤 흔한 소재다. 내용 자체가 자기혐오/죄책감을 빠져나오면서 주인공이 바뀌는 것도 클리셰라면 클리셰. 이러한 연관성 때문인지 자기혐오를 갖고 있으면 대개 PTSD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빌런들한테도 이런 모습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 경우에는 대체로 갱생의 기폭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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