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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짐을 나눠 지라
갈라디아서 6: 2
어느덧 12월의 첫 번째 수요 예배를드립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이제 2024년, 한 달 정도 남았는데 … 마무리를 잘하셔서 끝까지 청결한 삶과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살았으니 감사하고 하루하루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제 마음이 지금 힘들지만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1. 사람에게는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거울 때 ‘짐’이라고 표현하지요. 어떤 분에게는 자녀가 ‘버거운 짐’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부모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직장이, 어떤 분에게는 배움이, 어떤 분에게는 건강이, 목회하는 저도 지고 가야 하는 / 지고 살아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밤 10시30분쯤 갑자기 국가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불발이 되면서 국회 야당 주도하에 탄핵 위기에 처했습니다. 북한 핵문제, 불확실한 국제정세, 사회 양극화 문제 등 당면한 현안이 첩첩인데 대한민국이 대통령이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민의 희망’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안 지려 하고, 꼭 져야 한다면 가볍게 지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짐을 남에게 떠넘기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도 합니다. 암튼, 짐을 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짐을 언제 벗나, 어차피 지고 가야 한다면 가벼워질 수는 없나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1,28~1688.8.31.) 영국의 침례교 목사인데, 그가 쓴 유명한 소설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기독교 고전입니다. 책의 첫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의 광야를 헤매다가 동굴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천로역정 책의 주인공 이름은 ‘크리스천(Christian)’입니다. 즉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비유합니다. 그의 손에는 한 권의 책, 성경이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등에는 커다란 짐을 짊어졌습니다. 그렇게 ‘크리스천’은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얼마나 마음이 힘드셨는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값을 치루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으면 예수님이“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쉬운성경)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셨겠습니까? 예수님도 져야 할 짐 십자가 때문에 힘드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해서 삶의 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영접하고 세례받는 순간 세상이 / 삶이 / 모든 것이 바뀌던가요?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고, 병든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공부 못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1등하고, 어렵던 사업에 ‘대박’이 터지던가요? 예수 믿고 살아도 삶의 짐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져야 할 짐이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이해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포기해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그렇다고 그만두어야 하나요? 그래도 우리는 그 짐, 부담을 지고 가야 합니다. 끝까지 그 짐을 잘 지고 가는 일에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깁시다
예수님이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셨지만,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제 생각과 다른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 뜻 좀 들어 주세요. 제 생각대로 좀 이루어 주세요. 내 기도 좀 들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가정, 자녀, 부모, 일터, 건강 그리고 교회에서까지 짐 때문에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 짐, 피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짐이 있다고 불평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짐과 비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짐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겁니다. 살아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간혹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계시지요. “그게 뭐가 힘들어. 내가 그 정도면 행복에 겨워 춤추겠다.” “나 같으면 그 정도 십자가는 웃으면서 지겠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남의 신발을 신어보고 남의 신을 신고 살아보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짐이 가볍고, 어떤 사람은 무겁습니다. 이것은 몹시 불공평한 처사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에 그를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저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의 무게를 달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십자가나, 작은 십자가나 그 무게가 똑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줄 때 누구한테나 똑같은 십자가를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지고 살고,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워하면서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짊어지고 산다. 내가 늘 똑같이 공평하게 주지만 이렇게 저마다 다르게 받는 것이 삶이라는 십자가다.” 내가 지고 있는 것은 크고 무겁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이 지고 있는 것은 작아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은 인생 짐을 지고 사는 우리에게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 초청을 받아들이면 참된 평안/참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무겁다고 생각되는 짐이라도 예수님께 맡기며 사셔야 합니다. 선교 초기에 선교사들 사이에서 주고받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떤 선교사가 머리에 짐을 이고 가는 아주머니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운전하던 선교사가 거울로 보니까 아주머니가 짐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흔들리는 차에서 머리에 짐을 올린 채 쩔쩔매고 앉아 있더랍니다. 그래서 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하니까 그 아주머니는 “차 태워 준 것만도 고마운데 짐까지 내려놓을 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성도들 중에도 그 아주머니 같은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맡기라고 하셨는데도 맡기지 않고 쩔쩔매며 끙끙 앓고 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시편 68편 19절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시 68:19)
3.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무거운 짐이 나옵니다.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 (찬송가 369장 1절)
♪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 (찬송가 301장 3절)
♪ 능치 못한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찬송가 406장 4절) 이렇게 말씀 의지하고 찬송하며 산다면 우리의 짐은 가벼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하셨습니다. 짐을 하나님께 맡기기도 해야 하지만, 주 안에서 예수님 믿음으로 하나 된 우리는 서로 짐을 나누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4. 짐을 나누어지라
본문에 나온 ‘짐’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사람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질병의 짐, 물질의 짐, 영적인 짐 … 중에는 혼자 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짐을 서로 지라”는 것은 ‘힘이 되어 주라’는 뜻입니다. 지게를 져보신 적 있으십니까? 지게를 져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짐을 얹은 지게를 지고 처음에 일어나려고 하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막대기(제 고향에서는 ‘작대기’라고 했음)를 지탱하여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조금만 힘을 보태 뒤에서 살짝이라도 지게를 들어 올려주면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게는 일어나기만 하면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짐을 나눠진다는 것은 지게를 살짝 들어 주는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을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 즉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도의 선다 싱(Sundar Singh:1889~1929)이 어느 추운 겨울 동료 수도사와 함께 산을 넘어 수도원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길 위에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료 수도사는 “저렇게 죽는 것은 저 사람의 운명이니까 우리는 갈 길을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다 싱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이 길을 지나가게 하신 것은 저 사람을 도우라고 하는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등에 쓰러진 사람을 업었습니다. 선다 싱은 혼자 가기도 힘든 산을 죽을 고생을 다해 올랐고, 수도원 가까이 이르자 ‘이젠 살았구나~’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무엇인가가 발에 걸렸는데, 자세히 보니 앞서갔던 동료 수도사였습니다. 혼자 가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얼어 죽었던 것입니다. 그 후 선다 싱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 나는 가장 어려웠습니다.” 라고 답했답니다. 선다 싱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에서 등에 업고 갔지만, 사실은 그 사람 때문에 추위를 견디며 살 수 있었고, 선다 싱 때문에 그 사람도 살 수 있었습니다. 남의 짐을 져주면 하나님은 더 큰 상으로 갚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찬양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449장 3절)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복 내려 주시리라♬시편 66편 10~11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시 66:10~11)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 66:12) 했습니다. 어려운 짐을 졌다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으로 남을 돕는다면 풍족한 곳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짐이 있습니까? 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짐을 벗어 던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아주 깊은 물은 모르지만 낮은 냇가는 장마로 인해 물살이 셀 때 건너가려면 자기가 들고 가기에 어려울 만큼 무거운 돌을 품에 안고 건너야 됩니다. 그래야 물살에 자빠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는 짐, 우리가 안고 있는 짐, 무겁지만 그걸 끌어안고 살아야, 끌어안고 승리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많은 짐을 지고 있습니다. 협력교회, 기관, 선교지 도와야 할 선교사도 많습니다. 어떨 때는 버겁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짐을 졌기에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흘렀습니다. 연말이 되니 이제는 내년에는 봉사를 쉬고 싶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물론 각자의 사정과 형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봉사의 자리를 지키면 감사의 조건을 더 많이 주시고 더 많은 은총을 허락하시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 자리를 지키며, 짐을 서로 졌기에 하나님은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생명 있는 동안 자리를 잘 지키셔야 합니다. 우리는 짐을 나눠 질 교회와 성도들이 있음을, 짐을 나눠질 만큼의 힘이 있음을, 짐을 함께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짐을 서로 져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사명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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