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고등학교/윤병국
얼마 전에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다시 가보았습니다. 1982년에 졸업한 이후 처음 가본 것이니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고향을 떠나 하숙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터라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들를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들러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학교 건물이 낡아서 허물고 새로 지을 것이라는 소식을 동창회로부터 들은 탓에 작정을 하고 들른 것입니다.
새로 지을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지 논의가 분분하더니 결국은 새로 짓는 것으로 결론났나 봅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몇 년 전 이전 논의가 한창일 때, 신도시가 형성된 부자 동네로 이사하면 학교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을 보고는 격분해서 반박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마저도 배금주의에 지배당해야 하냐고, 학교 뒤에 버텨서서 매일같이 우리를 품어주던 비봉산을 떠난 학교는 더 이상 우리 학교가 아니라고 썼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교정에 우람하게 솟아 있는 히말라야시타가 없다면 거기를 ‘아빠가 다닌 학교’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가지는 못했지만 30년만에 찾은 교정은 옛 기억을 새록새록 불러 일으켰습니다. 아들 또래의 새까만 후배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차고 있었습니다. 체육수업을 하느라 아이들이 자리를 비운 교실을 살짝 엿봤습니다. 커다란 모니터가 달려있기는 했지만 교실은 옛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자랑스런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매 시험마다 100등까지 이름을 적어주던 게시판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저의 모교는 제가 입학하던 해를 마지막으로 선발고사가 없어지긴 했지만 일대에서 명문고로 꼽히던 학교였습니다. 절반쯤의 학생들이 인근 지역에서 유학을 와서 하숙을 하며 학교를 다녔을 정도입니다. 학생들은 자부심에 넘치고 주변에서도 그것을 당연시 했던 것 같습니다. 평준화가 되어 연합고사를 치르고 들어 온 후배들은 동창회에 받아주어서는 안된다는 말도 사실인 양 오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지역에서는 고입 선발고사를 부활해야한다는 논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방명문고를 살려야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7~8년전에 부천에도 고교평준화가 시작됐는데, 당시 지역 명문고로 꼽히던 학교에서 동창회를 중심으로 평준화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저는 부천지역 고교평준화 논의 당시 지역신문 기자 비슷한 일을 했는데, 평준화를 지지하는 글을 썼습니다. 고교입시는 공공연하게 학교서열을 만들고 중학생 때부터 입시전쟁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모아놓으면 명문대학 입학 실적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명문고에 다니는 소수 학생의 자부심을 위해 대다수의 아이들이 주눅들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명문고에는 선생님도 엄선하여 보낸다는 것이 공공연한 이야기였습니다. 특별 배려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이 선배이기도 한 엄선된 선생님들은 사회에 나가면 훌륭한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명문고가 좋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연의 덕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 같아 이런 이야기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명문학교 동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입시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관계없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의견에 동조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이런 논의가 특목고 유치로 옮아갔습니다만, 자신의 아이들도 전부 명문고 동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또는 그런 학교가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목고는 입시명문고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학교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변질된 것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모두가 그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목고 정원보다 몇 배나 되는 학생들이 특목고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전쟁에 매달립니다. 특목고에는 많은 학교에 골고루 나누어져야 할 교육예산이 집중투입됩니다. 경기예고에 부천시 예산이 100억 이상 투입된 것이 그런 예입니다. 물론 매년 200명이 넘는 부천 아이들이 특목고에 진학을 하고 원거리 통학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특목고 신설이 절대선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서울에서는 내년부터 고교선택제가 시행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당선된 교육감의 결정인가요? 자신이 희망하는 고등학교를 지망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대학진학률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호가 집중되고, 그러다보면 고교서열화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바람을 타고 서울의 자치구들이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에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대학입시에 지방자치단체까지 매달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미친 바람이 경기도, 그리고 부천에까지는 몰아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일 때문에 지난번 교육감 선거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교육감 선거는 내년에도 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