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황혼기에 자전거와 동행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자전거를 타게 된 동기는 절친한 고교 동문인 바이크 손대장으로부터 적극적인 권유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적극 사양했지만 자전거 예찬론을 펼치면서 몇년 동안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그 당시 나는 어지럼증으로 치료 중 이었다. 그러다가 sd 16 바이콜릭스(Bikeholics) 동호회가 창단된지 10년으로 접어든 시기인 2015년 12월에 바이크랜드(중랑구)에서 라이더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 구입을 바이크손대장에게 위임하였다.
이 때 내 나이가 고희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MTB인 SEVEN 자전거에 배낭, 계절별 상하의 옷, 내복, 아크테릭스, 헬멧, 장갑, 선글라스(오클리고글), 자전거 신발, 공기주입기, 예비튜브, 자전거 전조등, 후미등, 속도계, 물병, 자전거 목줄, 비품 휴대주머니 등 비용이 만만치않았다. 내가 최초로 자전거 탄 것은 우리나라가 IMF 시절인 1998년 이었다. 그 당시 정부에서 유류를 절약하기 위하여 자전거 출퇴근을 적극 권장하던 때였다. 사단장님이 부사단장과 참모들에게 10-15만원 상당의 자전거를 구입하여 선사하였다.
자전거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언감생심이었다. 그 당시는 초근목피 시절이라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였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비교적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하디 흔한 것이 자전거다. 요즘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여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나는 IMF 때 잠깐 타고 그만두었다. 자전거 보다는 테니스와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골프는 내 생애에 가장 멋진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골프없는 인생은 한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예찬론자였다.
나의 마지막 인생은 골프와 함께 즐기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기도 하였다.그러나 내자가 콩팥이 정상 이하 수치로 떨어져 병원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이 수없이 왕래하였지만 차도가 없고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병원이 인천 카톨릭대 성모병원 신장내과였다. 신장내과에서도 치료가 불가하여 감염내과로 추천해 주었다. 감염내과에서 치료한 결과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날아갈 듯 하였다. 내자의 마음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항생제를 계속 복용한 것이 병세를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두다리 종아리 부근에 붉은 기를 띄고 붓고 진물나는 피부질환이 겹쳤다. 지금은 상태가 호전되었으나 안심할 수 가 없다. 콩팥이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콩팥수치가 더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관리하고 있다. 나는 5분대기조 식으로 늘 집안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렇다보니 좋아하는 골프를 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주말은 내자를 돌볼 수 있는 딸과 사위가 동일한 아파트단지 내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는 가능하다.
그래서 주말마다 동기생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즐기고 있다. 올해가 벌써 6년이 지나고 내년에는 7년째로 접어든다.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자전거 타기는 일종의 스포츠 운동으로 힘, 스피드, 기술이 요구된다. 나는 자전거 타기에 앞서 어떻게 타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자전거는 안장 높이가 중심이다. 안장 높이는 걸터 앉아 다리를 쭉 뻗었을 때 양발이 지면에 닿을 정도의 높이가 좋다. 올바른 자세는 욋몸을 약간 앞으로 숙일 정도의 자세가 좋고, 페달을 밟을 때는 앞발꿈치와 무릎이 일직선 상에 있어야 하며, 페달은 앞발꿈치로 잘 밟아주어야 한다.
그 다음 관심사항은 안전이다. 신체 손상없이 안전하게 타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자전거 타기 전에는 브레이크와 핸들, 기어 등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부상방지를 위해 헬멧, 무릎보호대, 보호안경 등은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나는 신출내기로 자전거를 다루는 솜씨가 미숙하여 조심스럽게 탔다. 자전거는 팀단위로 타기 때문에 앞 뒤 안전거리는 최소한 5m는 이격하여야 하며 전방을 항시 주시해야 한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팀원이 사고가 나면 본인 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각자 조심해서 탈 수밖에 없다.
우리 팀의 유일한 닥터인 바이크 손대장은 항상 안전을 제일주의로 한다. 위기의 민감성은 리더의 필수 덕목이다. 예고없는 사고는 없다. 초윤장산처럼 기지를 발휘해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나는 자전거 타는 날이면 소풍가는 어린아이 처럼 무척 기다려지고 가슴이 설레이면서 마음이 들뜬 기분이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도 있지만 두바퀴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기 때문이다. 인류의 두 발을 제외하면 자전거 만큼 널리 쓰이는 운송수단은 없다. 자전거 타기는 모든 연령대에서도 가능하다.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이만한 운동은 없다. 자전거길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없는 모든 길을 간다'. 그렇다. 자전거는 길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유오산수 무원부지이다. 적은 비용으로도 여행할 수 있다. 단지 들어가는 비용은 식비와 리프레쉬먼트 뿐이다. 노년에 스포츠를 즐기면서 노는 기회가 흔치않다. 동기생들과 여인동락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바이콜 전사들은 광일이구한 브로맨스들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한다. 놀랍게도 건강하고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우정' 이라고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마음 고생이 심하고, 쉽게 병에 걸리고, 노화가 빨라지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주위에 많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고 훨씬 건강한 삶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친구가 바로 보약인 셈이다. 생각이 같고 눈빛 하나로 마음을 읽어주는 좋은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더니 나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일로매진하였다. 10년 늦게 배운 나로서는 동료 베테랑에 비해 일천하여 창해일속에 불과하지만 청출어람할 정도로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배가 고프고 일모도원이다. 16년 내공을 쌓은 베테랑들은 4대강 종주에 이어 제주도및 대마도까지 그 범위를 넓혀 그랜드슬램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울릉도만 제외되었다. 우리나라 자전거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1,857km(울릉도 제외)를 달려야 한다. 나는 언제 그러한 곳으로 갈지 기약이 없다.
가자고 보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노부지둔해지면 가자고 해도 갈 수가 없다. 비록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해도 친구들과 함께 두바퀴에 몸을 싣고 어디든 달려가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두바퀴는 언제나 건강과 행복을 가득 싣고 달리기 때문이다. 행복하면 마음이 늙지 않는다. 솔로몬은 마음의 평화가 곧 행복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인간의 최고의 선이라고 했다. 나는 칠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언제나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라이딩에 임한다.
그래야 흥미와 매력을 느끼며 라이딩을 재미있게 펼칠 수 있다. 열정과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쉽게 늙는다. 라이딩하다 보면 길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가파른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여유로운 내리막이 있고, 활주로 같은 곧은 길이 있는가 하면 굽은 길이 있으며, 평탄한 길이 있는 가 하면 울퉁불퉁한 길이 있다. 몸소 체험하면서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 철따라 자연환경이 천변만화한다. 봄에는 온갖 꽃이 백화만발하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지며 가을에는 온 산야를 홍엽으로 아름답게 수놓고 겨울에는 설국으로 변한다.
눈이 호강하고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명수려하여 여행의 지루함을 떨쳐버릴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은 격열한 운동이기 때문에 참참하는 동안에는 카보로딩을 하는 것이 좋다. 간식을 서로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고 훈훈한 정과 인간미가 넘쳐흐른다. 우리나라는 어딜가나 먹거리가 즐비하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먹는 재미다. 식시시간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런 재미로 여행하는지 모른다. 지난 6년간 두바퀴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추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라이딩을 꼽으라면 1박2일간의 선자령, 안반데기 동강 라이딩, 경북 불영계곡및 구주령 동해안 라이딩, 충남 안면도및 원산도 라이딩, 2박3일간의 남해안 여수, 통영, 거제도 라이딩, 양평 금왕산, 홍천 가리산및 대학산 임도 라이딩은 기억에 박제된 가장 인상깊은 라이딩이었다. 특히 선자령 라이딩은 라이딩 중 백미였다. 사방이 안개로 자욱하고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여 마치 선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등산로는 진흙길과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들바, 밀바하면서 올라가다가 정상 100m 못미쳐서 라이딩하면서 올라가는데 마치 신선이 구름 속을 달리는 황홀한 분위기였다.
젊은 남녀 등산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장면을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난데없이 노당익장들이 험한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불현듯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경찰공무원 출신인 이성우씨(97세)가 롤모델(Role Model)이다. 이성우씨는 싸이클 자체가 삶이다. 이씨는 시속 30-40km로 달릴 정도로 수준급이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 한강싸이클클럽 회원들과 함께 40-50km를 달리고 있다. 20-30km 갔다 그 지역에서 점심 먹고 다시 돌아오는 4-5시간 코스다. 업힐 라이딩은 하지않고 평탄한 길을 달리고 있다.
97세에 탄다는 것은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상근(86세) 대한싸이클 원로회회장도 주 5일 이상 탄다. 그는 20년 전 서울에서 전남 해안 땅끝마을까지 19시간30분만에 질주했다. 생활싸이클에선 전설로 불리는 기록이다. 자전거를 타려면 근력과 밸런스, 운동신경 등을 조화시키는 협응력이 좋아야 한다. 나이 들면 무릎이 안좋은데 싸이클을 타면 오히려 무릎이 좋아진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연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 자전거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자전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자전거는 내 인생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신의 한수였다. 바이크 손대장 덕분이었다. 바이크손대장이 아니었더라면 영영 묻혀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건강을 유지하면서 경찰공무원 출신 이성우씨(97세) 처럼 자전거를 타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다. 만약 목표가 달성된다면 나는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 될 것이다. 물론 동기생들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허락하는한 두바퀴는 건강과 행복을 싣고 보석같은 동기생들과 함께 생세지락하며 계속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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