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잡지 ‘라이프’의 밀레니엄 특집호에서 지난 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0대 사건 중 수많은 각계각층의 학자들이 뽑아낸 결론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제 1위로 선정됐다.
유럽 인쇄술과 관련해 구텐베르크의 역할에 대한 해답은 동·서양의 서로 다른 재료와 문화적 전통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목판 인쇄는 8세기에 중국에서 시작됐고, 활자 인쇄는 1040년경 중국 필승에 의해 원리가 밝혀졌으며, 금속활자 인쇄는 14세기 조선에서 실용화에 성공했다. 15세기 중반에 활자 인쇄를 시작한 구텐베르크는 보편화에 기여했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패트릭스와 매트릭스를 이용한 활자 주조기 개발과 인쇄기 발명을 들 수 있다. 활자를 주조하는 몰드의 경우 동양에서는 거푸집을 1번 사용해 여러 자를 주조하는 반면, 서양에서는 매트릭스를 핸드 몰드에 반복적으로 사용해 활자를 주조할 수 있었다. 이는 문자가 달랐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알파벳의 경우 26자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단어를 조합하면 되지만, 조선시대 한자로 된 활자의 경우 20~30만자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 그가 하지 않았던 일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쇄를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인쇄는 8세기 중국에서 여러 개의 글자를 한 장의 목판에 파는 기법으로 시작됐다. 그는 활자(새로운 페이지마다 글자를 다시 조판할 수 있는)를 발명하지는 않았다. 1040년경 중국의 인쇄공 필승(畢昇)이 발명한 것이다. 더구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14세기에 한국인이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목판인쇄물의 문서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1400년 초기였고 유럽에서는 아무도 아시아의 더욱 발전한 기술에 대하여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상 글을 쓰는데 10,000개 이상의 글자를 사용하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활자는 그렇게 보편화되지 않았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게 된 이유는 종이와 장정(제본)을 들 수 있다. 동양의 경우 한지는 얇아서 손으로 문질러 인쇄가 가능하나 서양에서는 양피지와 넝마로 만든 종이를 사용했는데, 이는 두꺼워서 손으로 문질러 인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실을 이용해 중간을 꿰매는 형태(양장)의 유럽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본하기 위해서는 양면 인쇄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인쇄를 위해서 일정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장치는 지중해 지역에서 예전부터 와인이나 기름을 짤 때 흔히 사용했던 것을 응용해 인쇄에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Press’가 인쇄라는 용어로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구텐베르크로부터 시작된 활자 인쇄술은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으며, 서적 인쇄가 기계화되면서 보편적인 방법으로 성장하게 됐다. 그 배경은 당시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맞물려 고전번역과 출판사업이 전개됐고, 대학들이 생겨나면서 서적의 수요와 창출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적의 대량생산과 보급으로 인해 종교개혁, 시민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 자본주의,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첫댓글 금속활자를 처음 발명한 건 한국인이겠으나, 한국인이 만든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 등 독일에 전해진 것이라고 볼 근거는 없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금속활자를 오직 한국에서만 발명한 게 아니라 구텐베르크의 독일 지역에서도 별도로 발명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계역사를 바꾼 건 한국의 금속활자기술이 아니라 (그와 별도로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세계역사를 바꾼 직지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직지는 그저 '현존하는 최초' 타이틀에 만족해야 할 듯.... 아쉽지만 그렇네요.
안녕하세요. 미주가효님. 평소에 미주가효님의 논리정연한 댓글을 읽고 저도 모르게 (언제나) 미주가효님의 댓글을 기다리고 있게 된 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카페 검색에다 '미주가효', '미주가효 낙랑', '미주가효 평양'에 대해 검색을 해봤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하늘이다 님께서 작성하신 동이족의 대이동 (제2회) 에 미주가효님의 댓글을 볼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검색한 이유는 미주가효님의 옛 낙랑군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정설을 따르시는지 아니시면 따로 생각이 있으신지 해서요... 예전에 2007년도 미주가효님의 댓글에 "평양에는 고조선의 수도라 할 만한 규모의 도시유적이 없다" 는 이야기지요? " 라는
@피그베이 글로 시작하는 댓글을 찾았는데, 그 외 다른 의견을 찾을수 없어서 이렇게 여기다 댓글을 달게되었습니다. 미주가효님께선 낙랑군 위치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뜬금없는 질문이라;; 송구스럽습니다.)
@피그베이 최근에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여 글을 많이 안 쓰는 편입니다. 게다가 낙랑에 대한 건은 크게 관심갖는 사항이 아니라 예전에도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댓글을 달 때 저 자신이 최소한의 논쟁이 가능할 정도의 준비가 있는 사항에만 주로 댓글을 다는 편이라서 지금 낙랑 쪽에는 별다른 코멘트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모처럼 부탁하셨는데 죄송합니다. ^^
@미주가효 아... 답변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낙랑에 관심을 갖으실때 멋진 글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