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된 전투기가 4대중 1대… 부품 단종돼 돌려막기 급급
전투기 잇단 추락사고, 왜?
《올 들어 노후 전투기의 잇단 추락 사고로 조종사가 순직하거나 비상 탈출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공군 전투기 전력의 총체적 점검과 재정비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수명이 한참 지난 노후 전투기를 무리하게 운영하다 조종사가 목숨을 잃는 사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막대한 전력 손실은 물론이고 군 사기 저하로 직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전투기 4대 중 1대가 도입 40년 안팎
올해 1월 심정민 소령(공사 63기·순직 당시 28세)이 조종간을 잡은 KF-5E 전투기는 기지에서 이륙 후 54초 만에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졌다. 엔진 내 연료도관에 미세한 구멍 틈새로 연료가 새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 불이 수평꼬리 날개를 작동시키는 케이블까지 번지면서 기체는 순식간에 조종 불능 상태가 됐다. 심 소령이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기체는 경기 화성시 정남면 인근 야산에 추락했다. 심 소령은 민가를 피해 끝까지 조종간을 잡은 채 순직했다.
공군은 사고 조사 결과 부식 등으로 인해 구멍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추락한 전투기는 심 소령보다 나이가 많은 노후 기종이었다. 통상 전투기의 수명연한은 30년이다.
지난달 11일 비행 중 엔진 화재로 서해상에 추락한 F-4E 전투기의 기령(機齡)도 43년이나 된다. 조종사 2명은 비상탈출로 목숨을 건졌지만 ‘고철덩어리’에 가까운 노후 기체의 결함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군은 사고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 F-4E 비행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공군이 현재 운용 중인 F-4·5 계열 전투기는 100여 대(F-5 80여 대, F-4 20여 대)에 이른다. 전체 전투기 대수(410여 대)의 약 24%에 해당하는 수치다. 도입한 지 40년 안팎이 거의 대부분이다. 현재 세계에서 F-4 기종을 운용 중인 국가는 우리나라와 터키, 그리스, 이란 등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F-4·5를 합쳐서 20대가 비행 중 추락했고, 조종사 19명이 순직했다. 10년 전까지는 사출장치 불량이 주요 사고 원인이었지만 최근에는 기체 노후화가 ‘마지노선’을 넘어서면서 엔진 계통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공군 조종사는 “F-4·5 계열 전투기는 이미 운용 한계에 봉착한 지 오래”라면서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전투기 ‘적정대수’ 유지 둘러싼 논란
F-4·5 계열 전투기의 추락 사고 때마다 해당 기종을 하루라도 빨리 퇴역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선 나온다. 하지만 전력 공백 등 현실적 제약이 크다는 것이 공군의 입장이다. 북한의 군사위협을 비롯한 전시 대비 핵심전력 유지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수호 임무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적정대수(430여 대)를 유지하려면 퇴역 시기를 넘겨서 노후 기종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형전투기(KFX) 보라매(KF-21)의 개발 사업이 늦어지면서 군은 2015년 F-4·5 계열 전투기의 퇴역 시기를 각각 2024년과 2030년으로 5년씩 연장한 바 있다. 이후 두 기종은 부품이 단종돼 ‘동류전환’(동일 기종 부품 돌려막기)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두 기종의 운영 유지에 매년 14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전투기 적정대수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공군이 산정한 전투기 적정대수의 기종별 대수는 F-35A 스텔스기·F-15K와 같은 고성능(high) 100대, KF-16급의 중간성능(Medium) 200대, F-4·5급의 하위성능(Low) 130대 등이다. 공군 관계자는 “전투기의 항법장비와 무장능력에 따라 맡은 임무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성능의 전투기를 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북한군의 전투기(810대) 대부분이 전투임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노후 기종인 데다 한국 공군이 5세대 전투기(F-35A) 등 북한보다 몇 세대나 앞선 최신 기종을 100여 대나 보유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종사 출신의 한 공군 예비역 장성 A 씨는 “F-4·5 계열 전투기를 조기에 퇴출시켜 적정대수를 320대로 줄이고, 조종사의 임무·훈련 방식을 개선하면 전투력 유지와 사고 예방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1명을 양성하는 데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전투기 조종사의 희생을 담보로 수명연한이 한참 지난 노후 기종을 운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얘기다.
○ KF-21 양산 확대 등 대책 서둘러야
올 들어 도입된 지 40년 안팎의 공군 노후 전투기들이 잇따라 추락해 조종사가 순직하거나 비상탈출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총체적 점검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공군의 대표적 노후 전투기인 F-5E. 사진 출처 공군 홈페이지
올 들어 추락 사고가 잇따르자 공군은 F-4·5 전투기의 도태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후 전투기를 최대한 빨리 신형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군 당국이 7월 F-35A 스텔스전투기 20대의 추가 구매를 결정한 것도 노후 전투기의 조기 퇴출로 인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일환이다. 군은 차세대전투기(FX) 1차 사업으로 들여온 F-35A 40대를 운용 중이다. 2028년경까지 20대를 추가로 도입하면 60대로 늘어나게 된다. 또 2016년에 개발이 완료되는 한국형전투기 KF-21의 초도 양산물량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32년경까지 블록(유형)-Ⅰ 40대, 블록-Ⅱ 80대 순으로 총 120대를 양산하는 계획을 블록-Ⅰ 60대, 블록-Ⅱ 60대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KF-21의 전체 양산물량을 150대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울러 국산 경공격기인 FA-50 20대를 추가로 도입하는 한편 공군이 운영 중인 FA-50 60대의 성능 개량을 조기에 착수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방안도 1, 2년 안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통상 전투기의 개발 및 도입, 성능 개량은 최소 3, 4년 이상이 소요되고 시행착오로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군으로서는 향후 수년간 F-4·5 전투기를 최대한 고쳐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얘기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현 성우회장)은 “과거 공군 전투기 도입 사업이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목표보다 축소되고 지연된 것이 현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북한과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 등 미래 전장 환경을 고려해 적기에 필요충분 수준의 전투기 전력이 갖춰질 수 있도록 범정부 및 전군 차원의 전략적 판단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