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건 퍼온거에요 길면 굵은것만 읽어보세요[여기는 굵은게 안되니까 괄호친것만 읽어보세요]
김두한이 백야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우익 깡패의 아구에서 나온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순진한 것이지요
(김두한은 해방이후 좌익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잠자고 있던 천 삼백명을 기습 하룻밤 사이에 죽인 인물입니다.
김두한 자신의 회고록에는 자랑스런운 업적으로 나오지요)
김두한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출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좌진 장군이 서울 근교 야산에서 동지들과 회합을 갖었다가 일본 경찰에게 쫒기는 신세가 됩니다. 사직동 어느 양반 동네로 내빼다가 담을 훌쩍 넘었는데 그 집은 궁정 상궁의 집이었고 그 상궁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김좌진 장군은 그 딸 방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위기의 상황에서도 정분이 오갔고 김좌진 장군이 나중에 만주로 떠나면서 "아들을 낳으면 두한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두옥이라 해라" 그랬다는 것이죠. 그래서 김두한은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상궁이 누구고 상궁의 딸이 누구인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김두한은 여기에 대해 이런 구라를 칩니다.
"내가 일곱 살 때 (청산리 대첩으로) 일본 경찰이 외조부님과 모친을 투옥했다. 그래서 나는 천애 고아가 되었다. 열살 되던 해 독립군 대장인 부친의 별세를 듣고 울었다. 그래서 혁명아가 되게겠다고 서울로 600백리 길을 걸어왔다"
[청산리 대첩은 1920년 9월의 일이고, 김좌진이 고려 공산청년회에 의해 암살 당한 것은 1930년 1월의 일입니다. 두 사건의 시간적 간격이 10년의 차이가 있는데 김두한의 아구에는 3년의 차이 밖에 안납니다. 게다가 1920년은 김두한이 2살되던해이고, 김두한이 열살되던 해는 1927년입니다. 그는 3년 뒤에 일어날 김좌진 장군의 죽음을 타임머신을 통해 미리 들은 것입니다.
여기다 김두한는 한 술 더 뜹니다. "우리 아빠는 백야 김좌진 장군, 우리 할배는 고균 김옥균이다"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조선후기의 정치가 김옥균이 지 할배라는 것입니다. 김옥균이 지 할배면, 김옥균의 아들은 김좌진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웃기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
김옥균은 친손이 없었습니다. 이게 뒤에 알려지자 김두한이는 입에 침하나 안바르고 이런 애길 합니다.
"우리 아부지는 김옥균 할배의 양자로 들어갔거덩"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들은 '우리 엄마 아빠는 엄청난 갑부인데 어릴 때 공원에 날 데리고 놀러갔다가 나를 잃어버린 거야.
언젠가는 날 찾아 오겠지' 이런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깡패 시키들은 감옥에 들어가면 온갖 희안한 소릴 다 듣습니다. 그 대부분이 힘의 상징인 인물과 관련된 얘기들이죠. 최근까지 감옥 생활 했다는 어깨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오사카의 대부는 한국인으로서 불패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조금씩 과장되면서 전해진 것으로 압니다.
김두한도 마찬가지지요. 일제의 검속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감옥에서 김좌진 장군의 얘기를 들은 김두한은 그 얘길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권력을 잡을 때, 씨종자도 모르는 자신의 혈통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입니다. 최근에 김두한의 아들이 <야인시대>에서 자기 아버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바로 잡아 달라고 방송국에
요청한 일이 있은 줄 압니다. 웃기는 소리죠. 저거 아버지가 우리 현대사에 왜곡한 김좌진 장군 아들 날조 얘기나 좌익 세력을 무조건 주적으로 왜곡한 것에 비하면 방송국에서 뭘 왜곡했는지 모르겠지만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퍼온거에요
다음 김두한 김두한을 협객이니 하는 데 웃기는 소립니다. 일본인 몇 사람 두들겨 패주었다고 독립운동이 됩니까? 겉멋들어서 양복에 트렌치 코트입고 중절모 쓰고 번쩍거리는 구두신고 다방에 가서 맥주 마시는 게 독립운동입니까? 조선 상인들을 일본인 야쿠자에게서 보호해 주었다고요? 개가 웃습니다. 일본인이 뺏어가면 나쁘고 조선 건달들에게 주면 사례비가 됩니까? "당신은 전라도 사람이니께 경상도 깡패들말고 우리 전라도 깡패한네 자릿세 냇쇼, 잉? 안아깝제라잉?" 도대체 다를 게 뭐가 있나요? 김두한도 결국은 조선인들로부터 자릿세를 뜯어 먹고 산 깡패 두목에 불과합니다. 마치 의적인 양 왜곡되고 의리의 사나이로 묘사되는 걸 보면 화가 치밉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으로 우리가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허술한 김두한의 날조마저 눈감아주고 치켜세워주면서
국민들을 속여야만 했던 이승만 · 박정희정권(일본이나 중국만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역사왜곡을 실컷 해먹고 또 해먹은 나라다)의 추악한 실상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김두한의 삶을 날조하는데 공범자노릇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고작 그를 정치깡패로써 이용해먹어 국민들을 때려잡고 반대세력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이승만노망여우, 박정희대일본제국육군소위의 명맥을 이어받아 전두환대머리새끼가 광주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러한 아픈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일뿐이며─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아픔이란 겪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역사도 발전하는 것이다.
북의 경우 그러한 아픔을 겪지 않고 너무도 빨리 훌륭하게 친일세력들을 청산했다는 데에 오늘날의 경직된 모습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에 당선되자 마자 전두환이나 찾아가서 알랑방귀나 뀌고 앉아있는 놈이 경제대통령이라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확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외세에만 의존해야만 했던 명분없는 그들의 독재정권의 실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김두한이라는 한 가련한 고아 · 거지 · 깡패의 삶을 산 인물만을 보아도 그 대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ㅋㅋㅋㅋ김을동비호감
우왕 몰랐던 사실이당 그냥 김을동 자체가 무지 싫었는뎅 ㅋㅋ 더싫어짐 주몽이도 비호감
김을똥.. 구린내가 넘 나네... 그 아들넘도 꼴보기싫고..
김을동 아들 나온 드라마는 절대보지 않음..... 그녀는 깡패 딸에 불과 ...... 언제부터 깡패 딸이 국캐의원이라고 참 어이상실...
김두한이 1918년에 태어나고 1918년까지 김좌진 장군이 감옥에 있었다고 해서 친자가 아니란 말은 좀 그렇습니다. 감옥에서 출소를 언제하였고 김두한이 언제 태어 났느냐를 따져야 할것 같아요...임신 기간이 10달이 안되잖아요.............
음 저도 처음알았는대ㅜㅜ 몰랐어요ㅜㅜ
몰랐던 사실이네요 ~ 김을동씨가 친박연대 간건 좀 의아했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