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정수자 편
석야 신웅순
1986년 경인시조 문학회 창립 총회 때였으니 시인과 만난지 족히 30년이 넘었다. 시인은 같은 경인시조 창립동인이었다. 시의 다감한 천재라고나 할까, 시인은 시조를 참 잘 썼다.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필자는 대학에서 주로 시인의 작품을 수업 자료로 활용했다. 그러나 시조 전모를 일별해보지는 못했다.
산 속의 연구실은 적막하다. 춥기도 하지만 눈 내리는 날이면 서둘러야 한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쌓여 아름답기 그지 없는 날은 더욱 긴장을 해야한다. 오늘은 비가 내려 다행이다.
시조 「슬픈 편대」에 눈이 갔다. 『현대시조 300인선』에도 실린 작품이다.
허공을 찢으며 우는 기러기떼 발톱이여
멀건 국물에 뜬 노숙의 눈발들이여
한평생 오금이 저릴 저 강변의 아파트여
-「슬픈 편대」전문
봄이 코 앞이다. 조금 있으면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갈 것이다. 춘향전의 이별요에 “새벽서리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한양성내 가거들랑 도령님께 이내 소식 전해주오.”라는 구절이 있다. V자 편대를 이루며 날아가는, 그렇게 울음이 구슬퍼 예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철새이다. 게다가 신․예․절 다 갖추고 있는 새가 아닌가.
「슬픈 편대」는 순간이 아니면 영원히 사라지고마는 그 정점을 포착해낸 명작이다. 중장의 ‘멀건 국물에 뜬 노숙의 눈발들이여’는 절구 중의 절구이다.
김삿갓이 어느 집에 가 밥 한 그릇을 청했다. 주인이 가난하여 멀건 죽 한 그릇 차려주었다. 다른 것을 대접할 수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하도 고마와 시 한 수를 지어주었다.
내발 달린 소나무 상에 놓인 죽 한 그릇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떠도는구나
주인께서는 부끄럽다는 말 마시오
나는 본디 물에 푸른 산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사랑한다오
-죽 한 그릇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粥一器
멀건 죽이니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떠돌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김삿갓은 본디 물 속에 떠도는 푸른 산을 사랑하다고 했으니 이 따뜻한 마음 하나로도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어 저절로 우러나온 시이다.
멀건 국물은 노숙자들의 삶이다. 이 국물에 눈물겹게 눈발들이 떠있다. 국물에 눈발이 스쳐가도 좋고 비쳐도 좋다, 잠시 떠있다 이내 녹아도 좋다. 이 한 줄의 시구, 노숙자들의 눈발에 눈물 글썽이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김삿갓은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멀건 죽에 비친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를 사랑한다고 했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국물에 노숙의 눈발들이 떠 있고, 강변 아파트는 한평생 오금이 저릴 것이라고 했다. 강변 아파트들은 오금이 저리지 않을 것이다. 저려야할 것을 오히려 역설로 말한 것이리라. 기막힌 대구이다. 노숙자의 눈발은 빈의 상징이요 강변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다. 빈부 양극으로 중․종장에 작금의 현실을 대비해 제시했다. 그것을 바라본 기러기들은 지상에서 그러하지 못하니 허공을 발톱으로 찢으며 북으로 울고 가는 것이다. 기러기보다 못한 사람들! 이런 숨은 독설에 독자들이 시인의 시재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초장은 천상, 중․종장은 지상이다. 빼어난 위치 배열에도 그저 할 말을 잃는다. 중장의 빈, 종장의 부 그리고 이를 바라보고 있는 초장의 기러기 울음, 시조의 절묘한 맛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의 사족이 필요없는 시조, 이것이 단시조이어야하는 이유이다.
시인은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비의 후문』외 4권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시인이면서 학자이기도 하다.
「옛 詩에 기대어」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옛 시에 기대어 겨운 봄을 건너가네
꽃샘이 가끔 일어 꽃술에 볼 붉히듯
그 결에 꽃가지 하나 당신께 휘어지듯
하냥 그린 꽃사태를 다시 이냥 보내고
먼 낙화 그림자에 하염없이 물 고이듯
늑골에 되우 걸리는 시만 홀로 깊어라
- 「옛 詩에 기대어」 전문
초봄이 지난 4월 하순 쯤일 게다. 꽃샘 바람이 물러갈 때가 되었나보다. 창가에 기대어 꽃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 견디기 어려웠을까. 옛시에 기대어 봄은 건너가고 있고 꽃샘 바람은 꽃술에 볼을 붉히며 가고 있다. 그새 꽃가지 하나가 당신에게 휘어지고 있다. 이를 어쩌랴. 올해도 그리운 꽃 사태를 다시 그냥 보내야하는 시인. 먼 꽃잎 지는 그림자에 하염없이 물이 고여 시만 홀로 깊어감을 어쩔 것인가.
옛시에 기대어 겨운 봄을 건너갈 수 밖에 없는 시인. 먼 낙화 그림자에 하염없이 물이 고이는 시인. 결국 시만 홀로 깊어가는 것을 어찌하라는 것인가. 꽃샘바람 결에 꽃가지 하나가 당신에게로 휘어지는 것, 이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누가 시인 보고 천생 시인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꽃이 피고 지는 동안 시인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를 절창이라고 한다. 시는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된다. 그저 참 좋다고 느끼면 그것이 좋은 시이다. 시는 분석하지 않는 것이다.
정수자의 「세한도」가 있다.
외롭고 외로울 제
바다는 더 저승 같고
수선화 목을 빼도 봄소식 감감할 제
꽃인 양 서책을 품고
달려오던 그대여
그립고 그리울 제
집은 한 채 무덤 같고
먹물 나눈 벗조차 황차 무심할 제
생을 건 먼 바닷길에
비단을 펴던 그대여
세한의 매운 그늘
뼛속까지 시려올 제
문자향 문득 피운 송백을 우쭐 세운
더없이
깊은 그대여
푸르도록 기루겠네
-「長毋相忘-세한도 시편․5」 전문
「세한도」는 1844년 완당의 나이 59세 때 그의 유배지 제주도에서 제작되었다. 추사는 제자 우선 이상적에게 감사의 뜻으로 발문과 함께「세한도」를 그려주었다. 발문의 사연인 즉은 이렇다.
지난해에는 『만학』과 『대운』두 문집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우경의 『문편』을 보내주었다.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도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사와야하며,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 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초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주었도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가 여전히 푸 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지금 그대와 나의 관계는 전이라고 더한 것도 아니요 후 라고 줄어든 것도 아니다. ……
아! 쓸쓸한 이 마음이여! 완당 노인이 쓰다.
추사의 친구 권돈인도 이「세한도」를 본으로 하여 또 다른 「세한도」를 그렸다. 송·죽·매 세한삼우에 돌과 집을 곁들여 보다 인간미 넘치는 서화로 바꾸어놓았다. 완당은 이「세한도」에 화제를 써주었다. 늘 완당 곁을 지키고 있었던 소치 또한 완당의 「세한도」를 바탕으로 아담한 산수화 한폭을 그렸다. 조촐하면서도 스산한 서정이 깃든 소림산수이다. 거기에 ‘완당의 필의를 본받았다’라고 적혀있다.
후대의 시인·묵객들도 이 완당의 「세한도」를 토대로 많은 시·서·화들을 창작해냈다. 시인은 이 추사의 세한도에 시조 여러 수를 얹혔놓았다. 세한도에 발문으로 써도 좋을 아름다운 시인의 시구. 말하자면 시의도(詩意圖)이다. 한국화의 화제로, 시의 뜻을 주제로 한 시화일치의 예술이다.
권돈인은 추사보다 세 살 위였으나 추사와는 우정과 예술을 나눈 절친한 사이였다. 세한도 제목 좌측에 둥근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서로 오래 잊지 말자)의 낙관이 찍혀있다. 친구 권돈인과 추사 김정희와의 우정의 정표이다. 둘째수 중장의 ‘먹물 나눈 벗조차 황차 무심할 제’ 여기에서 벗은 바로 권돈인을 가리킨다.
추사가 제주 유배시 권돈인에게 부친 편지 일부이다.
시골의 집을 빌려 합하와 나란히 밭을 갈기로 한 약속이. 평생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이는 귀양 살이 하는자의 망상으로서 항아리 속의 잡생각일 뿐입니다.
권돈인과의 우경지약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인연이란 어쩔 수가 없는가. 그들 간의 아름다운 우정은 예술로 남아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우정은 이리도 영원한 것이다.
시인의 세한도 역시 추사의 세한도에 시조 몇 수를 붙였으니 이 시의도도 추사, 권돈인과 함께 영원하리라.
은자(隱者)같은
꼿꼿한 시간의 표백 같은
혹은
손이 희어서 슬픈 자작 같은
제 안만
오롯이 보다
뼈가 된
고독 같은
그 결에
하늘 못의 심연을 훔친 듯한
장백(長白)의
물보라를 늠연히 세운 듯한
뼈마다
경이 들릴 듯
눈 시리다
은빛
직립
- 「백두산 자작」 전문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조종산(祖宗山)이자 성산이다. 자작나무는 은빛 직립, 여기에서 서슬퍼런 조광조, 조헌, 황현 같은 조선의 선비 정신을 본다. 팔만대장경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으니 천년을 지나도 그 경을 간직하고 있지 않겠는가.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함부로 그 향기를 팔지 않고, 오동은 천년을 묵어도 항상 아름다운 곡조를 간직한다’라 하지 않았는가. 신라의 천마총 그림 또한 그 재료가 자작나무 껍질이니 백두산 자작은 우리 정신사를 오롯이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용희 문학평론가도 백두산 자작을 ‘은빛/직립’ 정신사로 보고 있다.
“백두산 자작”이란 무엇인가? “꼿꼿한 시간의 표백”을 통과하면서 육탈의 “뼈”만 남은 “은 빛 직립”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고독 같은” “뼈”에는 “하늘 못의 심연”과 “경”(팔만대장경)들의 뜻이 체화되어 있다. “제 안만/오롯이 보”던 내적 수행의 공력이 백두산과 천지의 기상과 뜻을 견고하 게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 자작”의 정신세계가 “백두산 자작”과 같이 절제된 언어형 식을 통해 노래되고 있다. 이처럼 어떤 허상도 배제한 채, 겨울나무처럼 견고한 “은빛/직립”의 형 식이 “은빛/직립”의 정신사를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백두산 자작에서 시인은 무엇을 듣고 싶고 무엇을 보고 싶어했을까. 시간의 표백 같고, 희어서 슬프고, 오롯이 뼈가 되고, 물보라를 세운 듯, 경이 들릴 듯 눈시리다고 했다. 시인도 백두산 자작의 이미지들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보고 있다. 이는 곧 세상의 소리를 본다는 ‘관세음’에 다름 아니다.
한 송이 사과꽃이
순순히 명(命)을 받은 뒤
피로 빚은 시간을
지상에 막 놓고 간 저녁
잘 익은
죽음으로 향하는
생이
온통
향기롭다
-「생이 향기롭다 」전문
많은 평자들이 언급한 작품이다. 아무래도 이 시조의 8부 능선은 넘어야할 것 같다. 무언가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엄숙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거룩한 것 같다. 어떻게 이 시조를 읽어야할까. 난감하기 짝이 없다. 죽음이 향기롭다해서 더더욱 그렇다. 문학으로 읽어낼 수 없다면 신학으로 읽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낱말 하나하나가 온통 상징이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 기원을 둔 성찬의 전례 의식 같다. ‘ 피로 빚은 시간을// 지상에 막 놓고 간 저녁// 잘 익은// 죽음으로 향하는// 생이// 온통//향기롭다’는 이 시구는 영성체 의식 같은 것은 아닐까. 그러면 사과꽃은 예수의 몸이 될 것이고 그로부터 맺는 사과는 구원의 어떤 상징물이 될 것이다. 죽음 앞에는 그 어떤 것들도 다 무화된다. 그래서 죽음으로 향하는 생이 향기롭다는 것인가. 여기에 더 좋은 해석의 물음표를 던져본다.
불교의 의식으로 읽어도 어울릴 것 같다. 종교 의식으로 읽어야 제맛이 날 것 같은 시조이다. 누구나다 독자들은 편안한 쪽으로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며칠을 시인을 생각하며 읽었다. 가슴이 뭉클한 시조가 한 두 작품이 아니다. 시인의 시조는 머리맡에 두고 성찰하듯 읽어야 제맛이 난다.
비가 오면 산이 시를 쓰고 강이 시를 읽고, 눈이 오면 강이 시를 쓰고 산이 시를 읽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시를 써야하고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 서예문인화,2017.3,125-129쪽.
[출처] 정수자 편 - 석야 신웅순|작성자 석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