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영화 - 포레스트 검프
1994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를 난 14살 때 처음 접했다. 그리곤 지금까지 적어도 5번은 넘게 본것 같다. 포레스트 검프는 아이큐가 75이다. 그러나 그의 엄마는 아들의 교육에 대단히 열성적이며 다리마저 불편했던 포레스트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위해 무엇이든 희생하는 남부의 여인이다. 포레스트는 부족한 자기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또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 제니를 만나 학교를 무사히 다닌다. 어느날 악동들의 장난을 피해 도망치던 포레스트는 바람처럼 달릴 수 있는 소질을 보이게 된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도 미식축구 선수로 가게 되고 급기야 대학에까지 축구 선수로서 입학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온 제니는 언제나 자신의 꿈인 포크송 가수가 되기 위해 애쓰다가 대학까지 제적당하고 소위 히피 그룹에 끼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닌다.
한편 청년이 된 포레스트는 대학 졸업 후 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에서 빠른 다리 덕분에 전우들을 구하는 공로를 세운다. 그 공로로 훈장까지 받고 제대한 포레스트는 전장에서 죽은 동료의 꿈을 쫓아 새우잡이 어선의 선주가 되어 군대 상관이었던 댄 중위와 함께 새우를 잡아 큰 돈을 모으게 된다.
그 즈음 어머니의 위독 사실을 알게 된 포레스트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댄 중위가 애플사(포레스트 자신은 과일 회사로 알고 있음)에 투자해 큰 돈을 벌게 되자 병원과 교회 그리고 죽은 전우의 유가족에게 돈을 나눠주고 혼자 살며 제니를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를 찾아온 제니, 그러나 제니는 다시 떠나고 과거를 청산하려는 듯 포레스트는 전국 방방곡곡을 3년동안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TV에서 포레스트를 본 제니는 그에게 연락해 아들이 있다는 것과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알리고 둘은 결혼을 한다. 제니가 죽은 뒤 아들과 함께 사는 포레스트, 정상인 어느 남자보다 제니를 감싸주고 사랑했던 그는 각박한 세상에 사는 현대 사람들에게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사랑이란 의미를 다시 찾게 한다. 영화속 시대를 상징하는 음악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가장 남는 장면은 포레스트가 대위가 되어 연설을 하고 내려오는데 우연히 히피가 되어있는 제니를 만나 대사관인가 ?
거기서 포옹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 마음이 더 벅차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포레스트의 엄마가 난 참 존경스럽다.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에 든 초콜릿과 같은거야 , 어떤 것을 가질지는 아무도 알수 없단다 ’ 라는 대사가 참 명대사 인것 같다. 영화 줄거리가 어쩌면 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는 영화 인 것 같다.
내인생의 배우 - 네오나르도 디카프리오
1993 제19회 LA 비평가 협회상 신인상
1997 베를린국제영화제 우수 연기자상
1998 제7회 MTV영화제 남우연기상
2005 제6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
2005 제14회 MTV영화제 남우연기상
2005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
74년생 183cm의 키 B형인 이 남자는 내 인생의 배우이다. 내 인생의 배우가 여자였으면 하는 바램도 있지만 내가 여자인지라 기억에 남는 배우가 어쩔 수 없이 남자 배우뿐이다.
디카프리오는 강인한 이미지는 조금 부족하지만 부드럽고 매력 있는 꽃미남이다.
외모 뿐만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난 배우이다. 출연한 영화 작품 모두다 흥행 몰이를 할 정도로 헐리우드계의 톱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이 배우를 인간적으로 알 수 없지만 내가 본 영화를 통하여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에비에이터(2004), 캐치미 이프 유캔(2002), 비치(2000), 아이언마스크(1998), 타이타닉(1997), 로미오와 줄리엣(1996), 바스켓 볼 다이어리(1995) 내가 본 이 8편의 영화를 통해 난 디카프리오라는 사람의 여러 캐릭터를 보며 감탄하고 동경할 수 밖에 없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아이언 마스크인데 이 영화 속 디카프리오는 1인 2역을 맡게 된다. 한 얼굴은 아주 악덕하며 비열한 얼굴을 가진데 비해 한 얼굴은 가장 순수하고 선한 얼굴을 가지고 나오게 된다. 아마도 이 영화 때문에 내 뇌리 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남자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요즘 불룩 틔어나온 배와 헝크러진 머리와 함께 떠도는 스캔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조금 언짢긴 하지만 나이 들어도 잘생긴 외모 때문에 디카프리오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곤 한다.
내인생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개봉된 영화만 100편에 다다른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 감독이자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신시내티에서 태어나 뉴저지 근교와 아리조나에서 성장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진과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이미 여러 편의 아마츄어 영화를 제작한 바 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재학시절부터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그의 단편 [Amblin]이 1969년 아틀란타 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을 계기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메가폰을 잡게 된다. 그후 1974년 [슈가랜드 특급]으로 본격적인 극영화 감독으로 데뷔를 하고 죠스, E.T, 쉰틀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게이샤의 추억, 가장 최근의 영화 몬스터 하우스 등등 많은 영화로 흥행을 일삼았다. 영국영화잡지 <엠파이어> 편집장은 스필버그를 비틀즈에 비유하며 그가 만든 영화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고 모든 세대의 영화 관람 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 했다. 내가 이 감독을 존경하게 된 이유는 스필버그의 한 일화를 통해서였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꿈 , 즉 영화에 미쳐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미쳐야 미친다’ 라는 말처럼 그는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에 미쳐 지금의 스필버그에 미칠 수 있지 않았는가.
이 사람에게서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꿈에 미치는 것 이것이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꿈을 꾸는 것, 그리고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앞으로도 이 감독은 죽을 때까지 많은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때 마다 그 영화에 쏟아 부은 스필버그의 미친 듯한 열정과 영화에 대한 사랑을 기억한다면 영화를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