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3: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황무케 하였느니라 -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가 제시된다. 그러나 이 도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두로의 파멸이 앗수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가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그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과도한 본문 수정을 요구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갈대아 사람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 이때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갈대아 사람(바벨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벨론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의 거주자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 언급된 '망대'는 고대 사회에서 포위 공격할 때 사용된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 왕 치하의 두로를 13년간이나 포위했으며 요세푸스부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국 바벨론으로 귀환할 때 수 많은 페니키아의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
[사 23:14]"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 1절의 반복이다. 슬피 부르짖는 이유도 앞과 유사하다. 즉,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4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두로가 견고하 요새로 묘사된다. 수미 쌍관의 형식으로 두로에 대한 비극적인 예언은 종결된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두로의 회복을 노래한다.
[사 23:15]"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그 날부터 두로가...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 본문에서 선지자는 두로를 기생에 비유하니, 이는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 도시의 면모가 노래와 몸을 파는 기생과 비슷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손님으로부터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70년이 지난 뒤, 다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언급된 70이란 숫자는, '7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키는 수X10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도대로 일을 성취시켜 나가는 충만한 때를 상징하는 말로 봄이 무난하다. 실제로 70년이란 기간은 바벨론 유수의 시한과 일치한다.
[사 23:16]"잊어버린바 되었던 기생 너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행하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케 하라 하였느니라..."
잊어버린 바 되었던 기생 너여...다시 기억케 하라 - '기생 노래'의 가사가 일부 소개 된다. 이는 선지자의 예언을 보다 생생하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노래의 내용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한 기생이 다시금 옛 명성을 되찾고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기묘한 곡조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항간에 유행하던 소곡에서 따온 표현인 듯하다.
[사 23:17]"칠십년이 필한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그가 다시 취리하여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두로를 방문하실 것이니'이다. 두로의 멸망이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회복 또한 여호와의 은총으로부터 기인됨을 말하는 것이다.
[사 23:18]"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거하는 자의 배불리 먹을 자료, 잘 입을 자료가 되리라..."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 직역하면 ' 소득과 보수가 여호와께 거룩히 여김이 될 것이며'이다. '하나님께 거룩히 여김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뜻이다. 이때 '열방과 음란한 행위를 해서 번 돈이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두로에게 적용된 '기생'이라는 말이 상업 활동에 종사하는 두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상행위 자체는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다. 다만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