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루왁 / 안귀순
막내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밤, 오붓하게 가족끼리 티 파티를 열었다. 해외 주재원으로 있는 큰아들이 귀한 차라며 가져온 ‘커피 루왁’으로.
새 며느리를 환영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안방에는 부드러운 레드카펫을 깔았다. 조명등도 켜고, 분쇄기에 원두를 갈고 차를 우려내는 동안 둥근 상에 매화 무늬가 고운 찻잔을 올렸다. 커피메이커에서 보글보글 김이 피어오르면서 감미로운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주인공 ‘사치에’가 원두를 내릴 때마다 커피 드리퍼에 손을 얹고 ‘커피 루왁!’ 하며 최면을 걸듯 차를 우려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 평범한 원두도 루왁처럼 맛을 즐길 수 있다나. 영화 ‘버킷 리스트’에선 억만장자 ‘에드워드’가 암으로 입원한 병실에 비서들이 커피메이커를 들고 분주히 움직인다. 세상 모두를 다 가진 주인공의 유일한 낙이란 ‘루왁’의 향기를 즐기는 것이라니. 암 환자가 병원 입원실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루왁을 들고 행복해 하던 영상을 떠올리니 가슴이 설렌다. 대체 무슨 맛이기에.
새애기가 목련 같은 고운 손으로 조심스레 차를 따른다. 입맛을 보기 전에 야릇한 향기가 먼저 후각을 자극한다. 흔히 마시는 커피가 쌉싸래하니 자극적인 향이라면 이것은 찔레꽃처럼 은은하면서 달콤한 미향이다. 폐부 깊숙이 스며오는 향도 좋지만 뽀얀 찻잔에 담긴 황금빛이 너무 곱다며 가족들이 탄성을 지른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천년을 버티어낸 호박 빛이랄까.
두 손으로 찻잔을 받쳐 들고 향을 음미하는 순간, 갑자기 “우웩! 똥차?” 하더니 도영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커피 겉봉에 있는 사진과 깨알 같은 설명서를 번역해가면서 외삼촌이 자상하게 일러주었으니 아이로선 그럴만도 하다며 모두 깔깔 웃는다.
커피 루왁에 있는 사진을 보면 붉은 열매가 달린 커피나무 가지에 긴 꼬리 사향고양이가 걸터앉았고, 옆에는 원두 콩 그대로인 똥이 한 무더기 있다. 지금 우리가 마시려는 차가 바로 그 짐승이 배출한 똥에서 추출한 것이라니 똥차가 맞다. 어른들은 왜 하필 고양이 똥을 마시며 좋아하는지. 11살 어린 것이 어찌 알겠는가.
‘루왁’이란 것은 사향고양이 이름으로 인도네시아 섬에서만 자생하는 야생동물이다. 이들은 아예 커피농장에 빌붙어 건강한 열매들만 골라 먹으며 얄밉게 무전취식 해 왔다. 그 게으른 고양이가 먹고 사는 배설물이 농장주들에겐 바로 황금이다. 아무리 사람이 영악하기로서니 어찌 짐승의 똥을 먹을 생각을 했는지. 수상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좀 게으른 편인데 커피열매를 따고 원두를 추출하려면 상당한 노동을 요구한다. 하여 열매를 먹고 단단한 원두는 그대로 배설하는 고양이들의 생리를 알고는 똥을 거두어 씻고 볶아서 먹어보니 향기도 맛도 훨씬 더 좋더라는 얘기다.
똥차라는 선입견으로 약간은 찜찜하던 차에 아이가 소리를 질러버리니 차 맛이 달아나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는 예술이다. 향기도 좋지만 하얀 찻잔에 찰랑대는 그윽한 액체는 가히 유혹의 화신이다. 당나라 임금 현종을 유혹했던 양귀비가 저리 고왔을까. 그냥 입으로 마셔버리기가 아까워 혀 끝에 굴리면서 오래 향을 음미한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짐승의 똥이 아니라 신성한 열매를 뱃속에 삼킨 혼신을 다해 창조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빨갛게 잘 익은 열매들 중에 영악한 짐승은 가장 건강한 것들만 골라먹는다. 고양이는 그것을 침과 위액을 쏟아 부어 혼신을 다해 버무리면 살이 녹아내린다. 그 속에서 바글바글 발효된 열매는 아미노산이 분해되어 독특한 향기와 맛으로 변형시킨다. 열매로 보면 짐승의 뱃속에서 과육을 빼앗기고 뼈다귀만 살아남은 꼴이고, 고양이로 보면 자신의 피와 액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실제로 이 루왁 커피는 짐승의 장에서 숙성되면서 사람에게 해로운 카페인은 무두 삭혀내고 순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형상화되었으니 커피를 못 마시는 임산부나 환자가 먹어도 탈이 없다고 한다.
차를 야금야금 마시다보니 커피 루왁이야말로 고양이가 쓰는 수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뒤집어보면 수필가가 쓰는 글이 똥이라는 얘기다. 작가의 오장육부와 뇌관을 관통하여 흐르는 배설물이 수필이다. 쓰는 이의 마음이 맑고 투명하다면 글에도 맑은 향이 날 것이요, 이기와 모순으로 가득하면 악취만 풍길 것이다. 사랑 한줌, 욕심 한 사발, 선과 악을 분류할 틈도 없이 무작정 받아들인 소재들이 내 안에서 부대끼며 바글대다가 수필이란 이름으로 드러나기까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도 걸린다. 잘 숙성하여 작품이 되는 것도 있지만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면 뒤엉키어 소통이 안 된다. 그럴 땐 변비증 환자처럼 답답하다.
고양이 똥차라는 루왁은 커피 마니아들의 광적인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 세계의 유명백화점에서 한 잔에 오만 원, 심만 원에 팔리지만 매물이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짐승이 배출하는 똥은 나날이 몸값이 치솟는데 어찌 사람의 정신을 녹여낸 내 문학은 매양 푸대접만 받는지.
새롭게 출발하는 막내 내외도 커피 루왁처럼 귀한 대접을 받고 살아주기를 바라며 그들의 빈 잔에 슬며시 차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