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 Ⅱ
대중가요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삶속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제일 먼저 본능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많은이들이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 하는 단어가 바로 엄마입니다.
<내가 태어나서 첫 번째로 배운 이름 어머니/언제라도 불러보면 눈물 나는 그 이름/기쁠 때나 슬플 때나 먼저 찾는 그 이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울 엄마
내가 엄마 뱃속에 열 달 동안 있을 땐/ 예쁜 것만 보고 고운 말만 했다지
내가 오래간만에 친정집에 가면/ 버선발로 뛰어오던 울 엄마
내가 시집가던 날 내 어깨를 꼭 안고/ 잘 살아라 하시던 울 엄마
사랑합니다 엄마 엄마 울 엄마>(아버지와 울 엄마 2절, 노래: 유지나)
십 여년 전 8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던 모친께서 가신 뒤로 제게는 엄마라는 이름은 꿈속에서나 부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농촌교회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가지는 생각은 교회내의 어르신들 모두가 엄마 같을 때가 많음을 가끔 경험합니다.
간혹 강원도 전통 음식을 가정에서 만드신 어르신들 중에는 목회자 가정을 생각해 주시며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눠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먹거리가 귀하던 한 세대 앞선 교우들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에는 시골에도 마트에만 가면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세태입니다.
그럼에도 시골교회 어르신들이 간혹 주시는 음식들은 먹거리가 풍부한 현재에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별미들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음식들을 나눠주실 때 개인적 느낌은 음식이기 전에 그분들의 마음이고
더 주고 싶어하시는 사랑으로 여겨집니다.
이른 아침! 할머니 교우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인근에 있는 딸이 열무 김치를 해 왔는데 좀 갖고 가서 드세요.”라시는데 저는 열무를 다듬어서 김치를 담그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저녁때까지 연락이 없으시기에 김치를 담그지 않으셨나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저녁 무렵 그분이 다시금 연락하시며 김치를 가지러 왜 오지 않느냐 하시는 겁니다. 통화를 마치면서 자택으로 가 열무김치를 가져왔습니다.
주신 김치통을 열어보면서 놀랐던 것은, 짐작건대 따님이 담가 주신 김치의 절반은 저희 가정에 주셨지 않나 싶어집니다.
한 통의 김치 속에 담겨 있는 모정(母情)같은 마음을 느끼며, 역시 사랑은 내리 사랑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시던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붓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흥미로운 점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정죄하던 옥합을 부은 그 여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지만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를 받았다. 그것은 이 여자가 나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누가복음 7:47, 현대인의 성경)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품사로는 명사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관념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한 이에게 구체적으로 손 내미는 동사임을 보여주십니다.
사랑없는 세태이지만, 지고지순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깊이와 넓이가 크나큰 사람만이 세상을 품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십니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가복음 7:47)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